백일자(노동자의 힘 선전위원)
"열심히 한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나에요?" 보건의료 노조 고대병원 지부의 파업 종료 3일이 지난 5월28일, 취재를 위해 만난 이상희 동지의 첫 반응이었다. "저는 애매한 것은 싫어하는 편이에요. 인터뷰 하는데 노동자의 힘이 어떤 건지는 알아야죠"라며 노동자의 힘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본다.
간호사가 된 사연
올해 나이 서른의 이상희 동지. 진주의 농가에서 2남6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왜 간호사가 되었을까. "어릴적 꿈인 과학선생님이 되기 위해 지원한 교대를 떨어지고 나서, 언니들이 '결혼하고도 간호사는 직장다닐 수 있다'고 하자 아버지가 원서를 집어넣었죠. 간호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것은 농활 가서였어요. 부녀반을 맡았는데 모성보호에 관련된 것들을 알려주었죠. 약 하나에도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좀더 알았더라면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맘이 생기더라구요."
졸업 후 보따리 들고 무작정 상경해서 영등포역 근처, 한 평 남짓한 무허가 건물에 터를 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겁 없는 행동이었단다. 원래 고집이 쎄서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한다는 그녀. "첫 근무지는 보라매 병원의 행려병동이었어요. 서울에 행려자들이 많더라구요. 행려자들은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보호자 역할까지 해내야 해요. 몸은 힘들었지만, 간호사라는 나의 역할이 환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 내가 간호사란 걸 실감했죠."
그러나 노조가 없던 보라매 병원에서는 불공평한 처우들을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노조가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고 싶었고, 고대 병원에 지원했다. 고대병원에서 처음 배치된 곳은 내시경실로 '외래 부서'였다. 제일 어린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선배들 꼬임(?)에 입사 1년쯤부터 대의원 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내시경실에서 병동으로 배치전환 되었다. "병동 간호사들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어요."
흰옷의 천사, 찢겨진 날개
"병동에서는 오래 입원한 장기환자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런 환자들은 대부분 암환자라서 많이 죽었어요. 처음에는 보호자랑 함께 많이 울었죠. 그럴 때 간호사는 '냉철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다 소용없더라구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까 참 무서운게 눈물도 없어져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둔해지는 거죠. 사람이 죽으면 한 사람이 이세상을 떠났다는 슬픔보다도 어떻게 잘 처리해야 할지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눈물이 잘 안 나오더라구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시. '백의의 천사'라는 간호사들은 실제로 과부하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 근무자 중 3교대 근무자인 여성노동자는 일반사업장 보다 유산율이 9.8배나 된다. "저도 한 달에 나이트 근무를 보통 8-9일 했어요. 임산부들도 예전에는 똑같이 했죠." 모성보호법이 실시됐으나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이 '쟤네들은 하루종일 전화와 컴퓨터 앞에만 있다'고 불평하는데, 간호사들은 부족한 인력 때문에 환자에게 가 있기 보다 끊임없이 전화받고 처방 내리기 위해 컴퓨터 앞에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평균 5-6년 정도만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도 그만둘까 생각하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자신의 생명을 믿고 맡기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데 내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보람 때문이죠."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남편이다. "7년 연애 끝에 결혼했어요. 97년 노개투 때 고대 병원으로 남편이 와서 같이 연대했어요. 잘 이해해주고… 집회도 꼭 같이 다녀요." 남편의 회사에는 노조가 없지만, 함께 실천하려고 집회 때마다 고대병원 깃발아래 함께 서주는 남편은 가장 힘 되는 동지다.
투쟁은 즐겁고 힘차게
보건의료 노조 고대병원 지부는 5월23일부터 2박3일간 파업투쟁을 벌여냈다. 이번 임단투에서 그녀는 교섭전임, 노래패원, 의료부장의 1인 3역을 맡았다. 한 마디로 '투쟁은 즐겁게, 힘차게'라고 조합원들이 자주 외치던 구호를 몸으로 보여준 장본인인 셈이다. 문화패라곤 노래패 밖에 없어서 파업 기간 동안 율동패의 몫까지 해냈다고 한다. 연신 '깔깔깔' 웃으시던 아줌마 조합원들의 열광적인 호응도 받았다. 이상희 동지는 노래패 활동 3년차의 왕고참으로 패원들에게는 '잔소리꾼'으로 통한다. 노래패로서 노래도 잘하고, 연대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은 그녀의 열정 때문이다. 파업기간 동안 낮에는 조합원들과 함께 노래하고, 구호 외치고, 율동하고 밤에는 병동 순회와 분임토론, 파업대책본부 활동에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다. 그녀는 이번 투쟁에서 '간호사 조직화'에 힘을 쏟았다. 그녀의 정성이 간호사들에게도 전해 졌던 것일까. 파업 마지막
날에는 많은 수의 간호사들이 파업 대오에 합류했다. "간호사 조직력이 약한 것을 '조합원들이 계속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몰고 가면 안 되는 거죠. 이런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거니까. 간부들과 활동하는 사람들은 조합원들의 고민에 대해 끊임없이 함께 하고 감싸 안아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활동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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