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 파졸리니 특별전]
지난 5월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되었다. 이것은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창립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시네마테크 시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소중한 출발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시네마테크나 필름 아카이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4년 1월 한국영상자료원의 전신인 필름보관소가 설립되어 우리의 소중한 영상자료를 국가적 차원에서 수집, 보관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은 1920년대의 한국영화부터 12,571벌의 영화필름을 비롯한 많은 영화관련자료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좋은영화감상회'나 '찾아가는 영화관' 등을 기획해서 상영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영상자료원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필름 아카이브의 역할을 해오지는 못했다. 이는 이사장의 선임이라는 문제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한국영상자료원의 이사장이 정말 외국의 시네마테크나 필름 아카이브처럼 전문적이거나 혹은 필름의 복원과 수집에 의욕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의 이사장인 정홍택씨만 보더라도 국제영상자료원연맹의 부회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영상자료원의 이사장으로서의 역할보다는 한국최초의 연예부기자라는 이름 하에 모 방송사 아침방송 프로그램에서 그 날의 스포츠신문 헤드라인을 보여주는 아르바이트에 치중하는 듯이 보인다.
한국에서 시네마테크의 역할은 공적 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 보다는 비영리 사설 시네마테크들에서 담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 비디오로 영화사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영화들을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한 사설 시네마테크의 역사는 1990년대 중반 영화탄생 100주년을 맞아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었다. 전국씨네마떼끄연합의 창설을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시네마테크단체들이 활동하였으며, 이들의 활동은 영화담론의 확장 안에서 건전한 영화담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영화상영은 필름이 아닌 비디오 상영이었으며, 반복 녹화된 조악한 화질의 작품을 상영하는 등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조악한 화질을 문제삼아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다"라는 식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문화학교 서울 등으로 대표되는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은 한국의 시네마테크 운동은 물론 독립영화 운동 안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설 시네마테크의 한계는 비단 조악한 상영의 화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비디오상영은 저작권법, 공연법, 음반, 비디오 및 게임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하면 불법적인 활동이었다. 이러한 불법성은 건전한 영화문화를 위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으며, 많은 사설 시네마테크들이 법적인 한계 속에서 폐쇄되기도 했다. 이러한 법적인 제약과 더불어 이들의 활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열악한 경제사정이었다. 불법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어떠한 정책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운영자 개인들의 희생에 가까운 노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사설 시네마테크의 꿈은 비디오로 상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국제영화제들이 생겨나면서 기존의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했던 많은 영화들이 공식적으로 필름이란 매체를 통해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기존의 사설 시네마테크들도 해외에서 필름을 수급해 상영하는 기회들을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여전히 지원은 부족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지만 한국 시네마테크 역사가 한발을 더 내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전용관까지 확보하게 된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개관한 '시네마테크 부산'에 이어 시네마테크 공간으로 설립된 두 번째 공간이다. 이 공간의 개관은 단순히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세워졌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 운동적으로 사고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시네마테크가 드디어 공간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활동은 안정적 공간을 통해서 가능한 것인데 전용관의 개관은 시네마테크 공간 확보의 논의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시네마테크 활동이 반쪽에 머무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시네마테크의 기본적인 활동이 필름의 수집과 복원, 그리고 상영이라면 필름의 수집과 복원의 문제는(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의 수집과 복원의 역할을 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공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과 부산이라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문화적 혜택이 지역으로 파급되지 못하는 상황이 시네마테크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역의 시네마테크는 여전히 열악하고 탈법적인 지대에 노출되어 있으며, 지역의 영화문화는 상업적인 배급/극장문화에만 노출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서울에 개관된 서울아트시네마 역시도 1년간의 공간 임대만 지원받았을 뿐 안정적인 공간확보나 지원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영화산업은 해외영화계에서 각광받으며 많은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하지만 문화적인 인프라의 부문에서는 여전히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드러나는 몇편의 영화의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해외판매실적은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영화문화의 저변 확대는 정부의 공적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원은 문화산업에 지원되는 예산의 반만, 아니 사분의 일로도 시작할 수 있지만 여전히 지원은 없으며, 공허한 말잔치만이 계속될 뿐이다. 미디어시티를 표방하는 서울시는 '미디어시티 서울'이라는 사업에 80억, 혹은 20억(2002년)의 돈을 지원하며 일회성 행사들을 이끌어내지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업에 대한 지원은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지역자치단체들도 소프트웨어산업 혹은 영상산업에 대한 욕심만이 있을 뿐 문화로서의 영화나 영상에 대한 접근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글을 쓰다보니 혼자만 감정이 격양되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고 정부의 지원만 외치는 것 같아 쪽팔리기도 하고, "최근 개관한 서울아트시네마와 관련해서 시네마테크 전용관, 영화공간에 대한 글을 부탁"한 편집진의 원고청탁의도에도 빗나간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은 상업적인 배급망(메이저배급사-멀티플렉스)에 대한 고민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극장문화에 대한 매우 작은 문제제기에 불과하다. 나는 전용관의 시작이 다양한 영화를 유통, 배급할 수 있는 시스템과 공간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키는 소중한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이 이런 기회를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강제하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원승환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amenic@kif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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