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순/민주노동당 기획위원장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된 미술 작품 중에 대표적인 것이 마네의 <올랭피아>이다.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파리의 부르주아 관객들이 훼손시키려 했기 때문에 손이 닿지 않게 높이 전시했다고 한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당시 부르주아 관객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화의 옷을 입지 않고 당대의 여성을 전라 상태로 그렸기 때문이었다. 서양미술에서 여성의 누드는 중요한 소재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신화나 성경의 내용을 빌리지 않고는 여성이 전라로 그림에 나타날 수 없었다. <올랭피아>는 이상화된 비너스나 다이아나와 같은 신화 속의 여인이 아니라 창녀였다. 이상적인 체구가 아닌 흔히 볼 수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등장시켰다.
또한 그 전까지 누드화에서 여성의 시선은 수줍은 듯 아래나 옆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든가 르느와르의 <나부> 등이 다 그러했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예외적으로 비교적 정면을 응시하는 편인데 대신 이 여인은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올랭피아>에서 여인의 몸과 시선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로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고대에서 근대까지 그림 속에 나타난 남성의 나체는 매우 공격적이고 당당한 표현 일색이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아예 성기까지 노골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동작 역시도 역동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최후의 심판>을 비롯해 성당의 벽화, 천장화로 그려진 작품들에서도 자랑스럽게 성기를 노출하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최후의 심판>은 ‘팬티’를 입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작업을 할 때 교황이 성기만은 가려달라고 미켈란젤로에게 여러차례 부탁과 협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를 거부했고 모든 등장 인물을 완전 나체로 완성했다.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 교황은 다른 화가를 고용해서 팬티를 그리게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대신 그 화가는 미술사에서 ‘팬티 그리는 화가’라는 오명을 남겨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미술 작품에 나타난 남성과 여성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몸과 시선에 떳떳하고 당당한 남성, 수동적이고 수줍어해야 하는 여성…. 마네가 무너뜨린 것이 바로 이 왜곡된 상식이었고 때문에 당시 남성들의 극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여성의 몸을 수동적이게 하는 것은 그림에서만은 아니다. 일상의 거의 모든 곳에서 강요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브레지어이다. 브래지어는 사실 인간이 만든 가장 쓸모 없는 개발품의 하나이다. 브래지어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최근에야 생긴 물건이다.
서양에서는 중세시대나 비잔틴시대에 기독교적 금욕주의 영향으로 가슴을 옷 속 깊이 감추는 기능으로 사용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가슴을 세우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브래지어가 유방암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의학인류학자인 시드니 로스 싱어에 의하면 24시간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여성과 전혀 착용하지 않는 여성과의 유방암 발병율 차이는 1백25배나 된다고 한다.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여성의 몸을 신화 속에 가려버리는 것이나 현대 여성을 브래지어 속에 가려버리는 것이나 그 근저에 깔린 것은 비슷하다.
여성의 몸을 수동적이게 하는 것, 부끄럽게 하는 것.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수동적이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는 것 역시 여성에게 채워진 족쇄를 벗기는 일 중에 하나이리라.
[ 91호] 6.10 ~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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