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한국에서 선거를 맞이하게 된 게 30년 저쪽의 일이다. 월드컵의 광기 속에서 정책 대결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진보정당의 현실적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라 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거철이어서인지 우선 낯선 모습들이 눈에 띈다. 지하철, 시내 버스정류장 길목에서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X번, OOO 입니다”를 합창하는 아줌마 부대를 만나면 서글픔이 앞선다. “하루 일당을 얼마씩이나 받을까”, “저 분들도 결국 비정규직인 셈이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거리가 온통 내 것 인양 소리질러대고 노래 불러대는 확성기의 소음 공해를 겪어야 하고 전화까지 동원된 선거운동에 사생활을 침해 당하면서는 그렇게 차차 한국사회에 적응해 가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 서로 상대방에게 더 부패한 정당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민주당, 한나라당의 모습은 꼴불견 그 자체였다. 미래 청사진은 없고 상대방의 과거 캐기가 주안점이다.
그러나 이런 선거의 와중에서 나에게 쓸쓸함을 안겨준 것은 각종 선거 공해나 꼴불견이 아니었다. 본디 자칭이건 아니건 보수들에게서 다른 모습을 기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쓸쓸하게 하고 무겁게 만든 것은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녹색평화당-민주노동당-사회당의 선거 벽보였다. 진보정당들이 기성 정당들과 나란히 자기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면 오히려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느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 나란히 붙어있는 벽보가 진보정당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배반한 듯한 ‘여유’로 느껴짐은 왜일까?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련다. 3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하며 실로 처연해 했던 적이 있었다. “과연 나는 살아 생전에 합법화된 진보정당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또 그 일원이 되어 활동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 뒤 수많은 운동가들과 활동가들의 희생과 피땀으로 그 꿈은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그 옛날의 처절함과 치열성은 사라진 게 아닐까? 오늘날 특히 젊은 층에게서 진보정당에 대한 열의는 많이 식어 있는 듯한 것이, 특히 대중을 획득하지 못한 진보세력이 서로 차별성을 내세우며 쪼개져있는 현실이 쓸쓸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설령 이념에 차이가 있다손 쳐도,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이론 투쟁을 치열하게 한다고 해도, 대중 앞에 나설 때엔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요구 아니었을까?
단언컨대, 그보다 더 중요한 당위는 없다. 진정 사회 변화와 진보를 갈구한다면 말이다. 과연 진보 세력은 한국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갈구하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그보다 진보의 이름으로, 진보를 통한 각자의 입지 세우기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아직 진보 운동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초라할 뿐이다. 진보 세력이 보여주는 여유로운 쪼개짐은 그만큼 뇌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30년만에 투표하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남의 땅에 23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찍어보지 않은 지문을 자기 땅에서 찍을 수 없어서 주민등록증은 아직 없지만 유효기간이 남은 여권이 있으므로. 진보정당에 한 표를 보태기 위해. 아니, 그람시의 말 그대로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기 위하여.”
[ 91호] 6.10 ~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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