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설 dllp21@kdlpnews.org
지난 9일과 16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 1, 2차 투표결과에 대해 주요외신은 5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확인됐던 극우파의 퇴조와 함께 프랑스 정치구도의 중대한 변화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즉 양당제 구도가 확립된 미국이나 영국과는 달리,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대표하는 각 정당들이 경합을 벌여왔던 프랑스의 다당제 정치구도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의 양당제 구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도우파 성향의 일간 <르피가로>지는 총선결과에 대해 “프랑스 정치가 양대 정당 체제를 맞았다”며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여당연합(UMP)과 사회당으로의 양극화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선거결과는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체 5백77개 선거구 가운데 2차투표가 실시된 5백19개 선거구의 90%에 해당하는 4백69곳에서 좌파와 우파가 맞대결을 벌였고 결국 우파정당연합인 대통령여당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정당별 지지도를 알 수 있는 1차 투표 결과는 중도우파의 우세, 사회당의 현상유지와 기타 정당의 몰락으로 요약된다. 특히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은 3백여명의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할 것이라는 르펜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11.3% 득표에 그쳐 37명만이 2차 투표 출마자격을 얻었다. 이는 15.3% 득표, 1백34명의 후보가 2차 투표에 출마했던 1997년 총선 1차 투표의 ‘르펜돌풍’과 비교되는 것이고 르펜의 대선 1차 투표 득표율 16%에도 못 미치는 결과다.
극우파의 퇴조와 함께 급진좌파정당들 또한 지지율의 현저한 하락을 보였다. 혁명적공산주의연맹(LCR), 노동자투쟁당(LO), 노동자당(PT) 등 3개 트로츠키주의 정당의 득표율 합계는 대선 1차 투표 득표율 10.4%에 훨씬 못 미치는 2.8% 득표에 그쳤다. 공산당(CP)의 경우도 1997년 9.8%(2백50만표) 득표에 절반도 못 미치는 4.8%(1백20만표) 득표에 머물러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추세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반면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국연합(RPR), 프랑스민주연합(UDF), 자유민주당(DL) 등 중도우파 3개 정당의 연합체인 대통령여당연합은 43%의 득표를 올린 데 이어 결선투표에서도 과반수를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사회당은 1997년 23.8% 득표와 큰 변화 없이 24.1% 득표를 거뒀으나 2차투표에서 의석수가 크게 줄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데 실패하고 국민전선의 르펜 후보가 결선투표에 나서게 되자 프랑스에서는 전국적인 극우파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사회당을 비롯해 혁명적공산주의연맹 등 이른바 “극좌정당”들조차 2차 투표에서 시라크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4∼5월의 열기가 이번 총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무려 35%에 달하는 기권율은 가장 많은 후보자수(8천5백여명)와 함께 이번 총선의 두가지 ‘기록’이 됐다. 이번 총선 기권율은 지난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의 30%를 뛰어넘었다. 중도좌파 성향의 일간 <르몽드>지는 1차 선거의 높은 기권율에 대해 “6월의 프랑스는 7주 전 4∼5월의 프랑스가 아닌 것 같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18∼24세 유권자의 58%, 25∼34세 유권자의 54%가 투표에 불참하는 등 젊은 층의 투표참가율이 낮았다. 대학생(53%), 실업자(51%)의 불참율도 높게 나타났다. 지난 1990년대 중반 공공부문 사유화에 맞선 노동자, 학생들의 투쟁의 결과로 알랭 쥐페의 우파내각이 물러난 1997년 이래로 최근 프랑스에서 치러진 선거는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일부 언론의 분석처럼 선거기간 동안 치러졌던 월드컵이 투표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라크 중심의 우파정당들은 결선투표를 통해 “공화국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공세적으로 “시라크에 힘을 모아줄 것”을 호소한 전략이 효과를 본 반면, 불가피하게 결선투표에서 시라크 지지를 표명했던 좌파정당들의 수세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은 잠재적 지지층의 투표불참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우파 내각의 성립을 낳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4월 대통령선거에서 시작돼 이번 총선에서 더욱 심화된 프랑스 좌파의 지도력 부재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 지가 양당구도의 형성조짐보다 더 관심을 모으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 92호] 6.17 ~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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