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자료실]
들어나봤나? 'Mi세대'
드디어 'N세대'(네트워크세대)보다 한 단계 진보한 세대가 등장했다고 한다. 이름하여 'Mi세대'. 이는 '멀티미디어 인터넷(Multi internet) 세대'의 약칭인데, 말 그대로 멀티미디어 인터넷을 통해 삶을 영유하는 새로운 세대인 동시에 특정한 종족을 지칭한다. 이들은 핸드폰 벨 소리로 아침을 시작하며, 무선 인터넷으로 약속 장소를 찾아간다. 그리고 PC방에서 데이트를 하고, 아바타를 선물하며, 이모티콘으로 버추얼 페밀리와 대화를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핸드폰, 노트북, 인터넷, PDA 등 휴대용 멀티미디어를 통해 신체의 외연을 확장하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재현하는 인터넷, 가상공간, 네트워크 등에서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고 그것을 현실에 도입시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종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흔히 이 새로운 종족의 문화적 특성을 "과감한 자기표현과 강한 자존심, 쌍방향성, 짧고 부담 없는 만남과 관계, 속전속결, 개성적인 가치관"이라고 설명한다.
언뜻 들으면, 더욱이 "나이듦"에 따라 테크놀로지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정도로 여기고 있는 기성세대라면, 말만 들어도 매우 놀라운 종족의 출현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터넷 정도는 어떻게 해볼지라도 아바타, 이모티콘, 버추얼 페밀리, PDA 따위가 등장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싸가지 없는 요즘 것들"을 떠올리는 동시에 생물학적인 구별짓기를 시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곁에 있는 오래된 테크놀로지, 손 때 묻고 익숙해진 기계장치에 대한 강한 애정과 집착을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순간, 'Mi세대'라는 호명은 단순한 문화적 현상이나 경향을 넘어 거대한 세대담론이 된다. '4.19 세대', '386세대', 'X세대', 'Y세대', 'N세대'가 그랬듯이 말이다.
세대담론에 숨어있는 권력의 위상학
세대담론이란 흔히 우리가 경험했던 'X세대', 'Y세대', 'N세대' 등과 같이 특정 시기의 주체와 그 주체의 정체성을 일반화시킨 후, 사회적으로 그 특성을 부여하는 담론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세대담론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왜? 어느 누구나 "나이듦"을 피해갈 수 없으며, 이는 어느 누구나 "요즘 것"을 거쳐서 "예전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요즘"이라는 동시대 속에서 젊은이들의 정체성과 스타일에 대한 사회적 분류는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즉 세대담론에 부여된 각각의 명칭에는 일정 정도 사회적 맥락이 있다. 전후의 '베이비붐세대', 하이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N세대', 'Mi세대', 한국사회의 민주화 투쟁에서 탄생한 '386세대' 등. 하지만 각각의 역사성과 특이성만큼이나 세대담론의 배후에는 나름대로의 일반적인 경향성이 존재한다.
먼저 모든 세대담론에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혹은 새로운 세대)라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이는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과 스타일에 대한 기성세대의 배타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청년세대의 창출에 대한 기성세대의 견제 및 구별짓기라고도 볼 수 있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대상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적 보호대상 혹은 관리대상으로 규정한다. 즉 기성세대는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 문화적 정체성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대를 사회적으로 구별지음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정점으로 유행했던 386세대는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80년 광주와 서울의 봄을 주도한 정치세대로 대상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 속에서 386세대는 사회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혹은 냉혹한 현실을 약삭빠르게 인정하기 시작한) 과정의 세대로, 지난 시절의 과격한 민주화 투쟁의 경험을 통해 좀 더 올바른(?) 시민이 되기를 준비하고 있는 미래의 기성세대로 대상화된다.
다음으로 세대담론 안에는 청년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배타성 못지 않은 포섭전략이 존재한다. 기성세대는 구별을 짓는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창출을 적극 지원한다. 왜냐하면 기성세대는 자신의 기득권을 정치·문화·경제적으로 지속하기 위해 '젊은 피(?)'의 수혈을 항시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급증한 청년세대의 구매능력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시장 창출 및 이윤의 재생산을 위해서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세대담론은 그 사회적 특성보다는 마케팅의 "타겟 존"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나머지는 돈을 벌기 위한 부수적인 문화효과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 속에서 각각의 세대담론은 기성세대 혹은 주류사회와 격리되어 새로운 소비자를 생산하는 도구로만 전락되어 왔다. 앞에서 언급한 386세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N세대', 'Mi세대'라는 용어가 10대를 중심으로 정보자본주의 하이테크 산업의 주요 마케팅 용어로 유통되고 있다면, 이미 기성세대와 밀착되어 높은 구매능력을 갖춘 30대는 386세대라는 용어로 소비 주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대담론 속에는 기성세대의 시선만으로는 규정되지 않는 청년세대의 생산성과 능동성이 존재한다. 이는 세대간, 권력주체들간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세대담론'은 기성사회의 문화적 파시즘에 대한 개인적 거부와 자아의 발견이라는 주체형성 과정과 변이 과정을, 'X세대'는 이를 바탕으로 무질서, 무규율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문화적 주체형성을 시도했다. 386세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386세대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투쟁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사회적 모순에 대한 항거와 변혁을 위한 실천을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테크 산업의 소비자로 호명되고 있는 각종 세대와 종족 역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사회 변화의 능동적, 긍정적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나이듦'의 왜곡된 집단주의, '세대담론'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세대담론 속에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는 대립적인 동시에 상호의존적이다. 여기서 대립적이라는 것은 양자의 세대적 차이만큼이나 가치관과 삶 자체의 차이가 크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의 경제적 기여에 의존하고 있고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고 도덕적 정당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호의존적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기성세대는 이러한 세대담론을 통해 주류사회의 주체를 재생산한다.
문제는 세대담론이 특정 청년세대의 생산성과 능동성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기보다는 기존의 주류사회를 존속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세대담론은 세대 사이의 차이, 세대 내부의 차이를 집단적 나이주의라는 환원을 통해 획일화시키고, 이를 통해 세대간, 세대내의 새로운 통제와 동원이라는 권력구조를 재생산한다. 나이듦을 너머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소통하는 "가로지르기"가 아니라 생물학적 나이와 문화적 차이를 통한 "벽 쌓기", 그리고 이를 통한 나이주의의 미시적 권력장치가 작동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세대담론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이나 청년문화의 가능성은 배제된 채, 세대담론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나이주의의 유령만이 떠돌게 된다. 결국 X세대에서 N세대를 거쳐 'Mi세대'에 이르기까지, 386세대에서부터 475세대, 564세대에 이르기까지 개별 주체들을 대상화하고 자의적으로 규정지으려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의 노력은 끝이 없다. 그리고 그 각각의 호명 작업 속에는 새로운 주체를 포섭하고 재생산하려는 주류사회의 눈물겨운 노력이 내재되어 있다.
각각의 새로운 세대가 내재한 특이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이를 보편 획일화시키고, 이름을 지어주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소비주체를 형성하거나 익숙한 권력체제 내에 편입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기성세대이다. 따라서 언제나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담론은 나이듦의 미학을 배려 깊게 가로지르기보다는 집단적 나이주의의 권력을 위계적으로 수행한다. [문화사회]
이원재 /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정책실장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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