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계급적 태도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자료실]


고백하건대, 나는 한때 내게 힘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계절별로 몇 가지 유형과 색상으로 패턴화된 인민복만을 입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황당한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접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된 문제의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옷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나아가 개성을 표현하는 기능, 즉 사용가치를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생산하는데 과도하게 작용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물질만능의 비뚤어진 사회의식을 유포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생각 말이다.

비근한 예로 최근 개봉한 영화 '묻지마 패밀리'의 두 번째 에피소드' 내 나이키'에서 표현됐듯이 80년대 중반 무렵 청소년 사이에 불어닥친 '나이키 열풍'은 상품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상품에 신화를 부여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욕망에 그 원인이 있었다. 그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나이키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 빨아서 널어 놓은 나이키를 훔치는 일도 다반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소비욕망은 TV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어 오늘날 이른바 '명품 바람'에 이르게 되었다. 가진 자들의 명품(심미적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를 넘어서 비싸다는 의미가 강한) 소비 행태에 뒤따라 못 가진 자들은 '루이뷔통'이니 뭐니 하는 이름도 낯선 외국의 상품들을 소비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긁어대며 스스로를 빚쟁이로 전락시키고 그 중 일부는 명품을 소유하기 위해 룸싸롱 아르바이트를 나가거나 원조교제도 서슴지 않으며 심지어 살인강도를 일삼는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라거나 'BC로 사세요'라며 지속적으로 소비욕망을 자극한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는 두루 체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한계급론'에서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며 과시적 소비를 지적한 데블런이나 유행은 상류계급과 중산계급의 경쟁 때문에 생긴다는 에두아르드 푹스의 설명은 모두 '옷'이 사용가치를 뛰어넘어 상층계급의 차별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걸치고 있는 옷에 따라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가늠하는 통념이 생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는데 타고 다니는 승용차의 가격에 따라 사회적 대접이 달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제공했던 '옷 로비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한편 최근엔 이러한 차별적 욕구가 보다 다양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부르조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인 '보보스'족의 등장이 한 예인데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자유주의적인 부르조아(어느 광고에서 롤러 브레이드를 타고 출근하는 사장처럼)를 지칭하는데 이들의 패션 특징은 청바지 등의 자유로운 복장을 즐기면서도 반드시 명품으로 갖춰 입고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상품화하는 자본의 전략은 성공한 듯 보인다. 소비의 전 사회계층화를 실현시킨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재화와 그 것의 소유자를 동일시하는 흐름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으며 외연적으로 확장되어감에 따라 부정적 연쇄효과를 생산하고 있다. 명품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일류 대학에 진학하려는 욕망, 일류 회사에 취직하려는 욕망과 맞닿아 있으며 하나의 아비투스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의심일까?

옷에 계급성이 녹아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복식사를 보면, 자본주의 이전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분에 따라 옷을 갖춰 입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계급에 따라 쓰개의 종류, 옷의 형태 등에 제한을 둬 온 것이다. 권위가 필요한 지배계급은 보이거나 만져지거나 잡혀지지 않는 권위를 구상화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구체적인 수단으로 옷을 이용했는데 색상, 무늬, 소재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서양의 코르셋은 여성의 신체를 극도로 제한하는 기능을 했는데 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과 더불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계층임을 나타내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신분사회에서의 제한은 오늘날 자본의 제한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복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전근대로부터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영국의 재판관이 가발을 써 법원의 권위를 세우듯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양복과 넥타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티셔츠 차림으로 다니던 후배 하나가 어느 날부터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바뀐 이유가 일 때문에 자주 출입하는 관공서의 공무원들이 무시해서라는 얘기를 듣고 씁쓸했다. 나 또한 복장 때문에 핀잔 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나는 면바지에 티셔츠를 기본으로 하는 기본 스타일을 고수할 작정이다. 이 같은 행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문화적 실천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옷을 통해 사회적 권위를 세우려는 모든 이데올로기와 관행으로부터 탈주함으로써 문화적 보수주의를 깨는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의복이 갖는 계급성을 유지, 표출하는 것이다. 이는 생활 속에서의 사회 문화적 실천이 될 것이다. 부수적으로 생활비가 적게 드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이러한 실천이 금욕을 강조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 과정을 지켜보며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진보적인 후보자들의 의상이었다. 노동자의 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하나같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나오지 않았던가. 물론 대중의 보편적 인식에 맞추느라 그랬다고 항변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옷에서부터 당파성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일거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정치인 요시카 피셔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국회에 선 것처럼...

지금종 / 문화연대 사무처장 c-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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