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독자를 발견하기 위하여-노혜경(시인)
지금 우리 사회는 전례없는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가시적으로는 물론 정치권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변화를 인식시키는 가장 커다란 조짐이다.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를 국민경선으로 선출하고 그 과정 전체가 생중계 되다시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어난 노풍은 국민들 자신의 힘에 대한 즐거운 각성의 효과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민주노동당이 지방자치제 선거를 통해 제3당 규모로 성장한 것은 국민대다수의 정치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힘이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치가 개인의 삶과는 무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변화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정치적 힘의 이합집산에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맡겨야 하고, 그 때문에 무력감에 빠지기 일쑤였던 낡은 습속이 참여하려는 열성적 사람들의 수적 증가에 힘입어 서서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노사모와 붉은악마 서포터즈 같은, 지향은 다르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너무나 닮은 새로운 유형의 모임들도 생겨나 많은 관심과 지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20세기와 21세기를 자발적 참여와 다양성이라고 하는 확실한 차이로 갈라놓고 있다. 존재들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 언어의 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언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를 인지하게 된다. 점점 더 강렬하게, 개체를 강조하고 민중을 강조하며, 단적으로 말해서 '나'를 외치는 말들이 다가오고 있다. 이는 저자와 독자의 구분이 갈수록 더 모호하고 복잡해지는 현상을 통해 드러난다. 점점 규모가 커지는 각종 인터넷 토론사이트들에 하루에도 엄청난 양으로 올라오는 말들은 불과 이삼년 사이에 훨씬 재기발랄해지고,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겁이 없어졌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온갖 게시의 방법을 찾으며, 말 한 마디 꼬투리에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려 하며 때로는 처절하기까지 한 논쟁도 불사하면서 누구 말마따나 돈 안 되는 글쓰기에 일로매진하는 이 사람들은 우리들 소위 전문글쟁이들과 크게 대조를 이루는 집단이다.
글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나처럼 아예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상정하는 시인이라면 몰라도 산문작가라면 자신이 어떤 독자를 향하여 말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익히 안다. 그런데 바로 그 조건이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는 불특정 다수의 막연한 사회학적 구분에서 벗어나 직접적 개인으로 말을 걸어오고, 그 무수한 다양성은 글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는다. 독자가 집단으로 존재하지 않고 개별자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들 사이엔 다양성의 폭은 크고 동일성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면, 도대체 누구를 향하여 말할 것인가?
존재가 새로워지려면 말의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의 새로움을 성취해내는 가장 중요한 존재인 작가는, 저 위대한 소설의 시대에 부르주아지를 발견한 소설가들이 그랬듯이 언제나 자기 독자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새 말을 만들어낸다. 지금 문학의 위기라 불리는 현상은 작가들이 자기 독자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실패한 데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달라지는 시대를 탐구하고, 달라지는 존재들을 탐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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