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나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기에 결과에도 그리 관심이 없다. 효성상황이 워낙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오래된 일이다. 이런 나의 태도에 정치의식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변혁에 대한 현실적 대안도 없으면서 현실가능한 모든 진보에 대해 개량이라고 투덜거리기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난 두 가지 고민을 했다.
하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란게 뭔가’ ‘선거는 꼭 참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두 생각은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
선거운동 시작을 며칠 앞두고였다. 노조선전물을 만들러 인쇄소에 갔는데 그곳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 선거유인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 후보들의 사진이 크게 실려 있는 선거팜플렛이 여기저기 깔려 있었다. 난 그걸 보면서 계속 투덜거렸다. “뭐 이런 사람이 민주노동당 후보인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을 표 찍는데 동원하는 당일뿐”이라며 혼자 궁시렁 거렸다.
그러다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당원에게 딱 걸렸다. 그 사람은 계속 내 말을 듣고 있었던 듯 자신은 선거를 통해 조금씩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나의 말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난 질세라 큰소리로 “그럼 선거를 통해 도대체 뭐가 바뀔 수 있는가”, “민주노동당이 기존 정당과 뭐가 다른가”라는 등의 말을 조리 없이 해댔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정치세력화는 무언가”라고 물었다.
난 순간 할말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현장에서부터 투쟁을 조직하고 그걸 정치적 요구로 가져가고 뭐 어쩌구 저쩌구 걸러지지 않은 얘기들을 하긴 했는데 인쇄소를 나와서도 나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난 그 사람 말대로 투덜거리고만 있는 게 아닐까,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명확한 관점도 없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 활동속의 목표로 두고 있지도 않으면서 선거와 당선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에피소드 둘.
신분증도 없고 딱히 누구를 찍어야겠다고 고민하고 싶지도 않고 해서 난 투표를 하지 않았다. 저녁에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투표율이 엄청나게 낮은 것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그런 친구 앞에서 난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당연한 듯 말했고 친구는 “왜 투표를 하지 않았느냐” “자신의 대표를 자신의 손으로 뽑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며 당연히 투표는 해야 한다고 했다. 난 버럭 화를 내면서 “넌 어떻게 운동(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운동은 선거운동이 아니고 변혁운동을 뜻한다)을 하기도 했던 애가 투표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냐”고 소리를 질렀다.
이 일이 있은 뒤에도 난 마음이 불편했다. 투표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게 뭔가 켕기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보일지언정 왜 우리 운동에는 ‘투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제도와 권위를 부정하기 때문에 우린 멋대로 행동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 무정부적인 기운이 조금도 없을까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선거에 대한 시작과 끝의 이 두 에피소드 사이에 선거운동기간이 놓여져 흘러갔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에도 효성투쟁은 조금도 진전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매일 매일 그 답답한 투쟁 속에서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선거시기라고 용역경비들이 덜 폭력적이지도 않았고, 자본이 더 자비로와 지지도 않았지만, 효성투쟁에 대한 연대는 어쩔 수 없이 잠시 뒤로 밀려났다. 우리들 바깥에선 온통 선거 열풍이 불고 있었지만 그 열풍은 현장노동자들에겐 구경거리일 뿐이라는 건 민주노동당 바람이 불지 않았던 다른 시기의 선거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선거를 하고 또 선거를 해도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한편에 드는 반성은 투쟁은 열심히 하면서 더 큰 변혁에 대해서는 현실 불가능하다고 나 또한 팽개치고 있다는 것과 그러면서도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를 이용하고 있다는 욕을 하면서 다른 실천을 하지 않는 내 자신의 성실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면 현실이 절망스러워 지면서 ‘에이 모르겠다. 뭐 대안이 있어야 욕할 수 있는 건가, 닥친 싸움이나 제대로 하면 되지 뭐’하며 닥친 투쟁 뒤로 숨어버리는 행동을 반복을 하게 된다.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까.
정명자 효성노조 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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