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혐오증· 자기민족 제일주의· 호전적 군사정책· 노동법 개악
극우파의 물결이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재앙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려는 걸까.
지난 4월 21일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선거 1차투표에서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프랑스 국민전선(FN) 당수이자 유럽 극우파 정치인의 대표격인 장 마리 르펜 후보가 대선 결선주자로 뽑히는 이변이 발생하자, 극우 정치세력의 전세계적 확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극우세력 파시스트세력의 바람
2000년 2월 오스트리아의 극우파 정치인 하이더가 연정에 참여하며 21세기 극우파 시대의 출발을 신고했다.
지난해 5월에는 이탈리아의 재벌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당이 극우정치세력이자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민족연맹과 북부동맹을 연정에 끌어들였다.
베를루스코니 스스로 이미 충분히 반노동자적 친자본 정치세력으로 악명이 높은데, 여기에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연상시키는 정치세력까지 포함된 집권여당은 노동자의 저항을 폭력으로 짓밟으며 공기업 민영화와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15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네덜란드는 꽉 찼다. 더 이상 외국인을 받지 말자”며 외국인 혐오증을 노골적으로 내보인 핌 포르타운당이 26석을 차지해, 노동당 주도의 좌우연정을 97석에서 54석으로 끌어내리며 우익 연립정부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 당의 당수인 핌 포르타운은 총선 직전인 6일 동물애호가에게 총격 피살당했는데, 핌 포르타운 지지자들은 이를 노동당의 소행으로 몰아붙이고 “모든 검둥이를 독가스실로 보내자”는 증오의 말을 외치며 국회의사당에 세워진 차를 불태우는 폭력성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노동당, 사회당 등 중도좌파 세력은 유럽연합 15개국 중에서 13개국 집권당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면서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이탈리아, 포르투갈에서 차례로 좌파 연립정권은 우파와 극우 연립정권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비록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다지만 이들 정권은 이미 신자유주의를 상당부분 수용하는 등 스스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9·11 테러 이후 미국보다 더 테러전쟁에 열을 올렸으며, 독일의 기민당을 비롯한 보수적 우익들 또한 극우화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나마 자존심이라도 유지하고 있던 프랑스 사회당이 이번 대선에서 극우파에 밀려 35년만에 처음으로 결선투표에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반노동자적 신자유주의 정치권력의 실체가 전면에 드러난 것
1930년대 말과 40년대 초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집권한 극우 파시스트 세력 히틀러와 무솔리니 정권은 끝내 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불러왔다.
전범 처단과 함께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고 반세기 이상 평화의 시대를 선도해온 유럽에서 또다시 극우 파시스트 세력이 준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전세계 민중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노동당이나 사회당 정부가 우익에게 정권을 빼앗기는 과정이어서 좀더 극적으로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미국에서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후 세계적인 추세로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군사패권주의의 호전성을 그대로 계승한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대 아프간 전쟁을 필두로 전쟁광적인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얼마 안 가 일본에서도 군국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고이즈미 총리 시대가 열렸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노동계급과 민중들의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고 강대국의 새계패권에 걸림돌이 되는 제3세계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아예 노골적으로 반동적인 정치권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6·13 지자체 선거에서 보수우익인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고,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과정 또한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계속되지만 대안적 정치권력 세우는 작업 절실히 요구돼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우파 정권이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자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우익의 도발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시원한 승전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전세계적인 우경화 바람 속에 아르헨티나 민중들이 항쟁을 통해 무능한 독재권력을 몰아냈고, 베네수엘라의 민중들이 차베스 정권을 제국주의와 반동세력의 쿠데타로부터 보호했다는 것 정도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에너지가 대안적 정치권력을 세우는 작업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차베스 정권은 아직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자발적인 의식화와 조직화를 이끌어낼만큼 튼실한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해, 두 나라 민중들 모두 항상적인 내전의 가능성을 안은 채 혼란스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 민중들은 르펜에게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프랑스에서 극우 정권이 출범하는 것은 막아냈지만, 전세계적인 우경화 바람을 저지시킬 수 있는 힘은 극우 정치인을 낙선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중적 정치권력을 세우는데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진실이다.
빈곤층의 절망적 선택, 대안없는 중도좌파의 무능력도 한몫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기억한다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유럽의 극우 정치세력이 대중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내걸고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유럽 빈곤층의 절망적 선택이 하나의 이유가 된다. 신자유주의가 실업과 빈곤을 양상하며 사회경제적 위기를 낳자, 극우파들의 왜곡된 민족주의 슬로건 ‘프랑스인이라면’ ‘게르만인이라면’ 가장 우월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선동으로 외국인 이주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선전하며 빈곤층을 파고들었다.
사실상 자본의 필요에 의해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극우 선동가들은 자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뿐만아니라 범죄자 집단이라고 선전했으며, 굶주림의 긴 터널을 지나온 빈곤층 다수가 우익의 선동에 사로잡힌다.
그렇다면 이들이 ‘절망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90년대 후반 유럽을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던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 등 중도좌파 세력의 무능력함에 큰 이유가 있다.
노동계급에 기반해 있다고 알려진 이 정당들 또한 집권 후 신자유주의 경제 프로그램을 집행했으며, 민중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는 결코 덜해지지 않았다.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국영기업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며, 이탈리아의 좌익민주당이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현실, 이들은 좀더 온건했을 뿐 우익정권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과 보수당의 정책 차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민중들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중도좌파에게 투표하는 대신, 다분히 국수주의적이지만 단순명쾌한 논리로 선동하는 극우파를 선택했던 것이다.
유럽의 극우파 대다수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반미’ 구호를 사용하는데,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팽창정책은 극우파의 선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극우세력들은 세계화를 ‘미국화’ 내지 ‘달러화’로 규정하며 민중들의 반세계화 정서를 활용하고 국수주의자들을 동원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미국의 단일패권을 낳았고, 미국의 패권은 역설적으로 타국에서 극우 정치인이 성장하는 기반을 닦아주고 있는 셈이다.
유럽 뿐이 아니다. 올해 대선에서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브라질 노동자당(PT) 또한 선거정치에만 매달리는 등 창당 초기의 투쟁적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신자유주의를 일부 수용하며 워싱턴의 눈치를 살피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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