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 mulu@kdlpnews.org
깐느영화제 감독상 수상. 임권택 감독이 드디어 한 건 했다. 깐느의 붉은 카펫을 또다시 밟겠노라 다짐하던 이 ‘국민감독’은 술 취한 그림의 신선, <취화선>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아시아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등극했다.
임권택이 깐느를 발견‘한’ 건지, 깐느에게 임권택이 발견‘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깐느 수상은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이번 수상으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니 그동안의 부담감은 오죽했을까.
“<춘향뎐>에 이어 또다시 칸에 가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영화가 기존의 내 영화와 뭔가 다른 게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시사회장에서 밝혔다는 임 감독의 첫마디.
다르긴 하다. <취화선>은 형식적인 면에서 그의 전작들과는 다른 행보를 내딛는다. 느릿느릿 호흡하던 그의 카메라는 장승업의 붓끝을 닮아 빠르게 흘러가고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영상의 흐름으로 미학을 만들고 있다.
<서편제>와 <춘향뎐>이 소리의 영화였다면 <취화선>은 그림의 영화라 할 수 있는데, 판소리의 울림으로 스크린을 채웠던 임 감독이 이번엔 수묵화의 농담으로 화면을 채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화다.
그러나 왠지 따로 논다는 느낌. 임권택의 영상과 장승업의 그림은 잘 어울리지만 솜씨없는 내러티브 구성은 계속해서 잘근잘근 씹히고야 만다. 과연 ‘거장’의 혜안이 담긴 의도적 결핍일까.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들이 한마디씩 거들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강한섭. 오래되고 질려버린 18번 반복에 그쳤다, 신문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전문지에서는 만세를 불렀다며 잽을 날렸다.
이효인도 무언가에 쫓기면서 직조한 파편적인 에피소드들의 나열이라고 거들었다. 여기에 이명인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새로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어퍼컷을 날린 후 서구의 호감을 이끌어내려는 “오리엔탈리즘에 복무”한다며 넉다운 시켰다. ‘오리엔탈리즘’ 앞에서 임권택은 잠시 KO패 당한다.
<취화선>을 ‘뭔가 특별한 게 있는 영화’로 만들려던 임권택은 영화적 메카니즘과 내러티브가 ‘한국화’라는 시각적 요소를 통해 ‘한국적 미학’으로 거듭나길 바랬다. 그러나 그 ‘한국적 미학’은 지독한 자기도취 때문에 다분히 소재주의로 전락할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소재주의는 늘 함정으로 빠질 공산이 크다. 특히 아시아 변방의 ‘국민감독’이라면 소재주의로 함몰하는 오리엔탈리즘을 경계해야 할 터다. 중국의 ‘국민감독’인 5세대 감독들, <패왕별희>의 첸 카이거와 <홍등>의 장이모우가 ‘깐느’에서 이미 그랬듯이. 중요한 것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전세계 인류의 가슴팍을 때릴 수 있는 ‘보편성’ 획득이 아닐까.
아무튼 임권택의 새로운 미학적 모험은 국내 비평계에 묵직한 과제를 던져놓았고 ‘한국적 미학’에 대한 모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실 관객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풍경은 없다.
[ 92호] 6.17 ~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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