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갇힌 진보

Be the Reds = 빨갱이가 되자???

강내희(문화연대 집행위원장, 노동자의 힘 회원)

한국팀의 월드컵 경기를 보려고 전국 주요 광장에 설치된 전광판 앞에 모여든 인파가 6월4일은 70만, 10일은 100만, 14일은 200만이 넘었단다. 이처럼 거리마다 '붉은 악마'로 넘쳐나니 2002년 6월의 한국은 '빨갱이' 세상이 된 걸까?
그런 착각도 없지 않다. '붉은 악마'의 티셔츠에 새겨 넣은 'Be the Reds'가 '빨갱이가 되세요'란 뜻이라며, 드디어 '레드 콤플렉스'에서 해방된 세대가 나왔다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다. 이색적인 길거리 응원을 15년 전 독재타도를 외치며 서울 시청광장으로 진출한 것과 연관 짓는 사람도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길거리 응원의 열기는 축구 사랑보다는 '나라 사랑'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이 자발적 현상임은 분명하다. 내 주변을 보더라도 '동원'을 당해 길거리로 나간 사람은 없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안정환이 헤딩으로 동점골을 뽑는 순간 나 역시 환호했다. 2002년 6월의 한국은 이처럼 스스로 흥분한 상태다. 누가 강요한다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겠는가. 지금처럼 '빨갱이가 되라'는 권유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기도 없을 듯하다.
물론 문제는 이 자발성의 방향이다. '악마' 군단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오직 하나, 경기장과 경기장면을 클로즈업시키는 TV와 전광판의 화면이다. 이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초국적 향연이다. 거기엔 한국축구의 희망을 쏘았다는 히딩크와 기량이 월등히 늘어나 월드컵이 끝나면 몸값이 치솟을 한국선수가 있다.
연봉 180억을 받는 프랑스의 지단도 있고, 흑인으로 폴란드 국적을 취득한 올리사데베, 세네갈 여인과 사랑에 빠져 '고국' 프랑스에 첫 패배를 안겨준 프랑스출신 세네갈 감독, 영국팀을 이끈 스웨덴출신 감독이 있다. 이들은 오늘 초국적 자본이 된 FIFA를 위한 초국적 문화의 주인공들이다.
국가간 경쟁의 수사학도 이에 못지 않게 강력하다. TV 중계 캐스터는 여전히 '조국의 영혼을 발끝에 담아'라는 표현을 쓰고, 한 신문은 대 덴마크 전에서 프랑스 팀이 진 것을 두고 '프랑스 국치일'이란 제목을 뽑는다. 길거리 응원이 세계적 관심을 끌자 {중앙일보}는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선진 시민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 '사회자본화하자'는 사설까지 실었다. 이런 국가주의가 민중 동원 전략임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붉은 악마의 '진보성'에 의문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군단 안에 민노당, 사회당, 나아가 노동자의 힘 지지자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붉은 악마가 목청껏 외치는 '필승 코리아!'는 '노동해방! 민중권력 쟁취!'는 물론이요 6월 항쟁의 '독재타도!'와도 동떨어져 있다. '빨갱이'가 거리를 뒤덮은 2002년 6월, 한국의 유권자들은 가장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나는 이 '빨갱이 군단'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본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열정을 국가 경쟁력의 수사학이 작용한 결과로만 치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붉은 악마의 함성 저 아래 뭔가 꿈틀거리는 힘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어떤 기회라도 잡아서 분출하려는 민중의 힘이 아닐까. 이 힘이 지금 초국적 문화의 향연이 벌어지는 TV 화면을 향해 있고, 이 화면을 국가주의와 초국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진보세력이 그 화면을 채우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의 전광판 화면에 갇히지 않는, 더 열정적으로 사랑할 세계를 대중에게 보여주지 못한 결과가 아니냐는 것이다. 민중의 에너지가 국가주의, 초국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해방의 광장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새로운 빨간 정열의 색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빨간색을 어떻게 칠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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