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미디어운동의 전략을 설정하자
작년 대우자동차 투쟁이나 올해 발전 노조의 파업에서도 드러났듯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사회운동은 이미 비디오, 인터넷, 휴대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통신 기술의 성과를 일상활동과 투쟁과정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과가 축적되면 될수록, 그리고 미디어 운동의 주체가 양적으로 확대되면 될수록 한계 또한 명확해지고 있다. 정치적, 기술적, 제도적 변화를 섬세하게 고려하는 장기적인 전략, 미디어 영역의 강령적 내용, 지역 차원의 미디어 전략의 부재 등이 미디어 운동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다른 정치적 문제도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만, 특히 미디어의 경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 체제의 한계를 돌파해낼 정치적 주체와 조건을 형성해내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기란 쉽지 않다. 영상 미디어의 영역에 있어서 최근 몇년동안 전문제작단체의 선도적 활동, 노동자 영상패의 조직화, 인터넷 방송의 적극적 활용 등 풍부한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미디어의 분야는 누구나 동의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활과 투쟁의 구체적인 공간인 지역 차원의 미디어 운동 전략은 논의의 주제로조차 별로 떠오른 바 없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 아무리 지역적 이슈가 쉽게 전국적 전선의 이슈로 전환되는 한국의 특수한 조건이 있다 할지라도 - 지역에 대한 좌파 진영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시켜나가는 과정이 지니는 중요성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체를 통한 다양한 의사소통 구조의 모색과 정착이 지니는 결정적 의미에 동의한다면, 정치적 전략은 곧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필연적으로 함축할 수밖에 없는 것일텐데 말이다.
어쨌든 이제 이 문제를 올바로 해명하고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서 그것을 노동조합, 정치조직, 지자체 등의 수준에서 적용시켜나가며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강령적 수준의 내용을 확보해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운동은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역 상황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해서 메시지의 전달자이자 민주적 의사소통의 수단인 미디어 전략을 수립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노동 미디어 운동의 초동 주체를 형성 혹은 강화하고, 그러한 주체가 컨텐츠 생산, 공공영역에 대한 개입, 역량 재생산의 과정을 담보하면서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해내야 하는 것이다.
지역 차원의 계급적 미디어 전략의 단서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지역 차원의 계급적 미디어 전략은 무엇일까? 여기서는 특히 시청각 미디어 전략과 관련된 모색의 출발점으로서 라디오, 액세스 구조, 미디어센터라는 세가지 단서를 검토해보자.
그 첫 번째는 라디오이다. 웬 라디오냐는 반응이 있을 수도 있지만, 라디오는 전통적으로 전세계 진보운동의 주요 매체였으며 지금도 그렇다. 라디오는 값싸고 프로그램 제작이 용이하며 게다가 노동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 공중파와 인터넷을 결합시키면 다양한 작업장 방송, 지역 방송을 전국 네트워크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는 주파수 획득을 위한 오랜 싸움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진보적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주로 FM 주파수를 임의로 활용하여 일종의 합법성 쟁취 투쟁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브라질 사웅파울로의 경우 좌파와 우익이 서로 시장에 당선될 때마다 진보적 라디오 방송을 개설 혹은 폐쇄시킨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주파수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거기에 대한 오랜 순응이 이미 내면화되어버린 운동 진영의 무관심으로 라디오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두 번째는 퍼블릭 액세스(열린 채널 혹은 공공 채널) 구조의 활용이다. 누구나 프로그램을 검열없이 자유롭게 방송의 일정 채널이나 시간대를 통해서 방영하는 이른바 퍼블릭 액세스 구조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방송법을 통해서 기본적인 개념이 합법화되어 있다. 비록 많은 제도적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KBS 1채널에는 이미 토요일 오후에 30분 동안 <열린 채널>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으며, 지역 케이블에도 언제든지 프로그램의 방영을 요청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전체 노동운동 진영은 대부분 이런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며 그 발전 전망은 더더욱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예를 들어, 지역 차원에서 자원을 집중해서 영상 제작자를 조직하고 이들이 주간 노동 뉴스를 제작해서 방영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현행 제도 하에서 어느 정도 가능한 노동운동 진영의 미디어를 통한 영향력의 발휘와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지역 노동자 채널은 결코 현실화되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는 미디어 센터의 문제이다. 라디오든 TV든 인터넷이든 - 다행히도 최근의 디지틀 기술의 발전은 각종 매체가 저렴한 통합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하고 있다 - 계급적 미디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차원에서 그러한 운동의 전략을 구상하고, 아울러 운동의 주체를 교육하고 컨텐츠 제작수단을 제공하며, 광범위한 민중에게 다양한 미디어 교육을 제공하는, 요약하자면 진보적 미디어 운동을 지원하는 촉매제로서의 지역 미디어 센터가 필수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것을 노동운동 진영의 독자적 역량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공공적 자금에 기초한 지역 미디어 센터의 설립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서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 노동 미디어 전략은 지역 차원의 사회적 투쟁의 핵심적 요소-미디어의 적극적 활용으로 미래를 열자
세상은 변하고 있다. 민중의 정치적 진출은 가속될 가능성이 충분하며, 최근 강화되고 있는 전 세계적 수준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현실과 미래는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멕시코 무장원주민 운동인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 때로는 과장 섞인 - 국제적 주목은 인터넷의 적극적인 활용에 힘입은 것이며, 아르헨티나의 투쟁이 조직화되고 아울러 해외의 적극적인 연대를 확보하고 있는 것에는 아르헨티나 독립 미디어 센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미디어 활동가의 치열한 실천이 가로놓여 있고, 한국의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영상과 인터넷은 이미 필수불가결한 운동의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디어가 우리의 계급투쟁에 있어서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잡은 현 시점에서, 노동운동의 미디어에 대한 독자적인 계급적인 전략을 이제부터라도 전국,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 확보하고 현실화키지 못한다면, 노동 미디어 운동 나아가 진보운동 전반의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커뮤니케이션은 세계화 과정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정보와 지식과 그를 실어 나르는 기술적 하부구조를 통제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발전 과정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투쟁의 근본적 영역이다……"(2002년 2월 포르투 알레그레의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사회적 활용과 통제' 세미나 결과 보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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