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블랙코미디 [판타스틱 소녀백서]

갓 졸업한 두 소녀의 '유령세상' 생존기

월드컵의 광풍 때문에 요즘 극장가는 개점휴업 또는 푹풍전야와도 같다. 블록버스터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화제가 된 영화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주류와는 다른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틈새를 노리는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이상한' 제목을 달고 있는 게 <판타스틱 소녀백서>라는 미국영화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판타스틱'하지 않은, 후기자본주의에 대한 재기 넘치면서도 신랄한 접근이 돋보이는 진지한 소품이다.

영화의 원래 제목은 <유령세상>(Ghost world)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두 소녀 이니드와 레베카에게 이 세상은 정말 유령들의 공동체와도 같다. 세상은 바보로 가득하며, 모두가 모두를 실망시키고, 삶은 공평하지 않다. 사람관계는 얄팍한 거짓말로, 거리는 쇼핑몰로 가득차 버린 지 오래다.
마치 <고양이를 부탁해>의 미국판인 듯, 숨막히는 학교를 벗어나 막 세상에 튀어나온 주인공들은 <고양이…>의 소녀들과 달리 세상에 대해 지극히 냉소적이고 훨씬 공격적이다. 그들은 유령처럼 떠돌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든 이 세상에 전혀 적응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조롱하고 성적 농담과 장난전화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나 세상과 소통되지 않는 냉소주의는 외로운 것이며, 그래서 이니드는 자신과 비슷한 아웃사이더와 사랑에 빠지지만 여전히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워낙 문화적 맥락이 달라 이해하려면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이 황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들의 좌충우돌을 중심에 둔 이 블랙코미디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카메라는 대부분 정지돼 있고, 흘러간 노래들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감독 즈위고프는 빠른 템포와 현란한 특수효과로 대표되는 최근 상업영화들과 전혀 반대의 방식으로 유머와 연민을 뒤섞은 '현실주의적'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월드컵이 끝나도 축구는 계속된다고 히딩크는 말했다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쳐도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 그 가운데서도 미래를 걸머져야 할 10대들이 다시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끔찍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니드는 이미 노선이 폐지돼 현실인지 공상인지 분명하지 않은 버스를 타고 '유령세상'을 탈출해서 미지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즈위고프 감독이 멈춰선 지점을 넘어서서 이 세상의 모든 이니드에게 다른 선택이 가능하게 하려면, 정글 같은 지금과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꿈꾸고 싸우는 것말고 무슨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

김명준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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