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만화잡지 영챔프의 신인만화대상에서 <리모코니스트>로 입상하면서 데뷔, 바로 씨네 21에 <만화 VS 영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현재 7년째 만화 VS TV 등 다양한 변주도 꾀하면서 매주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중. 다른 작품으로는 <비디오 킹>, <트러블 삼국지>, <빌리지 피플> 등이 있다. 얼마 전 합정동에 있는 사무실에 '도나스 에니메이션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달고 새로운 작업을 진행시킬 계획에 분주하기도 한 그를 만나봤다."한 자매한테 편지가 왔어요. '선생님 그거 아세요? 선생님 만화 캐릭터들이 점점 공이 되어가고 있어요!' 허걱……. 답장을 썼어요. '그건 제가 공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정훈이 씨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저도 원래는 공이 아니었어요"하며 푸후후 웃는다. 풍채나 분위기는 몹시 호탕한 소리를 내며 웃어제낄 듯 한데 그는 매우 조근조근한 사람이었다. 여성스럽다고 해야할까. 간혹 질문을 던지면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수다떨 대 으레 그렇듯 다른 이야기로 빠지는 경향도 그렇고, 손짓과 목소리 조절로 상황재현을 하는 모습은 그를 이야기꾼으로 느끼게 했다. (그도 기자도) 마감을 앞둔 저녁, 여유롭게 나눈 두 시간의 대화는 정훈이 만화의 소소함과 담백함의 원천을 느끼게 해준 것도 같다.
일벌레 만물박사
"저는 언제나 이곳에 있어요."
정훈이씨는 출장갈 때 말고는 언제나 사무실에 있는다 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붙들고 연구하고 마스터 플랜을 세우는 일. 언제나 일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가령, 아버님 친구분이 신나보다 세정력이 좋은 식물성 세정제를 개발했다며 어떻게 상품화를 시킬 수 있을지 물어왔을 때, 그는 앞뒤 재지않고 일단 상품화에 대한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이름을 정하고, 용기디자인을 그래픽으로 완성시켰다. 홍보 전략을 세워서 어디에 어떻게 광고할지도 구상하고. 그러나 그 상품은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한다. 뒷받침할 여건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 그래도 그는 계획을 세운다.
"제가 운수업을 하는게 꿈이거든요. 언제 할 수 있을지,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미 계획은 다 세워놨어요. 버스디자인은 이렇게 해야지, 사원들 교육은 이렇게……."
그 계획은 다만 머리 속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림이면 그림, 그래픽이면 그래픽으로 언제나 실물화시켜 놓는다. 작은 부분이라도 붙들고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기에 그에게는 늘 다양한 아이템이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 수많은 아이템을 어떻게 빨리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어떻게하면 그림을 빨리 그릴까 연구하기도 했다고.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뭐든 물어보면 대충이라도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 적어도 '그거 어디가면 알 수 있어'라는 것이라도. 호기심이 많다보니 어느새 그런 사람이 돼있더라구요."
다양해서 엉뚱한 남기남이라는 캐릭터와 그가 만나는 부분이 아닐까.
서른 한 살, 그의 20대
한 대학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과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간혹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근현대사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고, 혹은 관심이 없으며 당대의 현실에 대해서는 더더군다나 무관심한 것을 보게된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보여진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은, 그에게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했음에 그런 모습이 더욱 '마음아팠다'고. 영남 출신인 그는 서울에 와 재수를 할 무렵 같이 공부하던 전라도 학생에게서 80년 광주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김대중의 팬이 됐다. 지금 그의 정체성을 물으면 그는 '반한나라당'이라고 답한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얼마 전 집에 가서는 부모님들에게 '한나라당은 안돼요'하고 다양한 공작(?)들을 펼치고 왔다고.그런 그에게 "20대 때는 어땠어요?"하고 묻자 "여자밖에 몰랐죠"하고 웃는다. '6타수 무안타'라고 표현했다. 삼수에 실패하고, 군대에 가게됐다. 동사무소에서 방위 생활을 한 그는 그곳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다. 좀더 성숙된 인간인 줄 알았던 기성세대의 '추함'을 알게 된 것이다. 딸 나이의 여직원을 보고 성적 농담을 한다거나, 동네 소문 다나게 바람 피우는 모습……. 공무원사회의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저열한 모습에 '사고뭉치 어른들'을 읽었던 그는, 그 경험을 씨네박의 탄생배경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씨네박 보면 언제나 나이값 못하고 사고 치잖아요. 남기남이 다 수습하고. 그 때 느꼈던 어른, 기성세대에 대한 실망이 저는 대단히 컸었어요. 씨네박은 조금 귀엽게 표현된거죠."
서른 하나, 5년 어린 친구들과도 대화가 되지 않는 그들의 무관심에 놀라다가도 기성세대의 추태에 몸서리치는 그는 그래도 낙천적이다.
"아저씨들의 호의에는 어딘가 흑심이 있어 보이잖아요. 어쩐지 음흉해보이는데, 아줌마들은 안그래요. 가끔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아줌마로 다 바꿔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당신
남기남과 씨네박. 숱한 조명을 받았던 이 두 콤비의 스토리를 정훈이 씨는 '버디'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좌충우돌 세상 여행기. 만화에서 영화로, TV로 유람하는 그들은 어디든 얼굴을 드러낸다. 장장 7년. 그의 만화를 대하는 사람들은 아주 좋아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거나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어떤 분들은 '뭐야, 이게'하고 그냥 무시해버리거든요. 그림도 못그리고, 재미도 되게 없네, 하면서. 제 팬들은 알지요. '이번 거, 이 부분 패러디한 거지요?' 사람들은 그냥 읽고 넘어갈만한 것 딱딱 집어내요. 제가 뭐 숨겨놓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런 메일 받을 때면 기뻐서 바로 답장을 쓰지요. '네, 정답입니다'."
요즘은 그의 만화를 대하는 또 하나의 경향이 생겼다나. '전에는 좋아했는데, 이제는 재미없어요'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마음 아프죠. 그래도 이런 글 읽을 때면 힘이 나요. '오늘도 씨네 21에서 정훈이 씨의 만화를 봅니다. 저에게 패러디 만화의 진수라며 정훈이 씨를 소개한 그녀는 이제 제 옆에 없지만, 정훈이씨 만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군요'……. 뭐, 이런 비슷한 사연들을 접할 때,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한국에서는 전례없는 10년 연재를 해볼까, 욕심이 나기도 한다는 그. 점점 공이 되가는 그의 캐릭터가 또 다른 변주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진다. 우선은,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그가 숨겨놓은 장치들 먼저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원주 기자 / hoho@e-uni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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