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얼굴]두원정공노동조합 후생복지부장 이봉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추고 싶어요. 아직까지 해보지는 않았지만 선동을 잘하고 싶구요. 그럴려면 학습도 하고 싶어요. 노동법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현실도 알고 싶고, 후배들도 키우고 싶죠. 모르는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으니까요."

전주희(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12년동안 민주노조의 꿈을 키워온 사람들이 있다. 두원정공 현장모임 '새날을 여는 노동자회'. 오랜 학습과 토론으로 단련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한 것은 올해 4월30일이다. 작년 한해동안 지역에서 15개의 신생노조가 건설됐지만 현재는 5개 노조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중 두원정공은 탄탄한 조직력으로 지역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신생조직답지 않은 조합 운영이나 꾸준하게 새로운 활동가를 발굴해내고 훈련해내는 것을 보면 12년의 세월은 거저먹는 것이 아니다. 이봉희 동지는 두원정공의 노장들이 발굴해낸 신참 활동가다. "때가 묻지 않았더라구요. 실천적이고. 약삭빠른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이 더 들어도 현장에서 교육하고 훈련되면 훌륭한 활동가가 될 겁니다." 처음부터 현장모임을 주도해온 이길만 수석부위원장은 사람을 길게 본다.
이봉희 동지는 96년에 입사했지만 올해 선거 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97년 겨울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선배가 현장모임에 가입을 권유하더라고요. 낯설기도 하고 아는 것도 없어 주저했죠. 하지만 어용집행부에 대한 불만이 자꾸 쌓이더라구요. 결정적으로 나한테 열성적으로 노조활동에 대해 말해줬던 선배가 결국 어용으로 넘어가면서 저도 결심을 하게됐죠. 전집행부는 조합원들을 위한 일보다도 한국노총으로의 진출에만 욕심이 있었어요.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전조합원은 정리해고나 희망퇴직밖에 길이 없다는걸 절감했었죠."

자동차 완성3사에 펌프를 독점 납품하는 두원정공은 매년 흑자면서 조합원들에게는 적자인 기업이다. 워낙 일이 많은 반면 기본급이 적어 조합원들은 잔업에다 특근, 철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철야 많이 하는 사람들은 200~250시간 일해요. 이틀에 한번 꼴로 철야를 한 셈이죠." IMF 경제위기는 두원정공 자본의 절호의 기회였다. "IMF때 일이 확 줄었어요. 잔업, 특근도 없어지고 순환휴가를 돌리더니 한 달에 50만원도 안주더라고요. 거기다가 사측은 어용노조의 동조 하에 기계를 빼돌렸죠. 기계는 줄어들었는데 조합원들은 그대로니까 노동자들끼리 서로 기계 앞에 서려고 경쟁하고… 사측이 극도의 불안감을 증폭시켜서 결국 희망퇴직을 강요했어요. 그래서 나간 게 1100명 조합원 중 600여명이에요." 그때의 절박했던 순간이 생각났을까. 이야기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하지만 생산량은 줄지 않았다. 사측은 발빠르게 전 공장을 자동화시켰다. 조합원들이 나간 자리에 최신기계가 들어섰고 이제 남은 조합원들은 2~3명 분의 일을 하고 있다. "산재가 2~3배 늘었어요. 무리하게 라인을 변경하다 보니 작업공간이 너무 좁아 불량한 자세 때문에 허리디스크에 많이 걸려요." 민주노조가 들어선 뒤 개인의 병으로만 돌렸던 것에서 산재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 집단적 요구가 늘어난 탓이기도 하다.

이대로는 안된다!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던 거죠. 한번 해보자고." 30표차로 겨우 당선됐지만 그건 저간의 사정이 있다. "어용이 항상 '민주노총 가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어요. 하지만 진짜 가야될 시기가 오면 '회장이 문닫는다'며 조합원들한테 협박하며 매년 넘긴 거죠."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주노총 가입' 공약은 올해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나왔다. 현장모임 쪽에서도 당연히 내걸었으니 정책적 차이를 드러내가 어려웠을 터.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조합원들은 '이제는 바꾸자. 고용안정 사수하자'는 민주집행부를 건설했다. 선거때 뭘했냐고 물으니 "율동팀도 처음 만들었어요. 지금도 계속하고 있죠.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남들한테 나도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게 좋더라구요. 율동은 조합원들에게 행동으로 말하는 거에요." 그가 펼친 문화 선동론이다.

임단투 기간인 지금,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잔업을 거부하고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노조는 특근거부 지침만 내렸는데, 조합원들이 '그래가지고야 되겠냐'며 잔업까지 거부해요." 민주노조가 세워진 후 달라진 풍경이다. 하지만 이봉희 동지는 현장이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노조 후생복지부장으로 있지만 그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싶어한다. "현장에 남아서 지금 집행부에 조언도 하고, 비판도 하면서 현장을 조직하고 싶어요. 현장조직원이 상집으로 대부분 올라오다 보니 현장이 공동화되고 집행부에 대한 현장에서의 따끔한 목소리도 내기 힘들죠." 이런 그의 고민은 현재 노동조합의 고민과도 맞닿아있다.
처음 민주노조를 세우고나서 집행부는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조합원들의 요구를 일일이 알아서 해결해주기 바빴다. 그러다 차츰 대의원을 중심으로 조합원들 스스로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현장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과로 얼마 전 가공라인의 대의원들이 자체 조사해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절상유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조합원들과 함께 기계를 세운 적이 있다. 현장의 자발적 행동이었다. 이러한 노동자 현장통제의 경험은 조합원들의 현장투쟁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켰다. 노조 집행부의 '결재'없이는 현장에서의 작업중지권이 사실상 불가능한 기존 노조들과는 명백히 다른 지점이다.
이런 경험은 노동운동의 첫 걸음을 띈 이봉희 동지에게 현장교육 그 자체다. "오늘 조합원 분임조 토론이 있었는데 정말 많이 놀랐어요. 너무나 의견들이 많아서 토론이 얼마나 진지했던지… 확실히 조합원들이 많이 변했어요." 이봉희 동지는 신이 난다. 그런 만큼 그는 하고싶은 일도 많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추고 싶어요. 아직까지 해보지는 않았지만 선동을 잘하고 싶구요. 그럴려면 학습도 하고 싶어요. 노동법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현실도 알고 싶고, 후배들도 키우고 싶죠. 모르는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으니까요."

대뜸 "자신을 노동운동가라고 생각해요?"라고 물어봤다. "네, 노동운동가죠." 어라? '그렇게 명쾌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데요?' 그랬더니, "지금은 너무 부족한 게 많지만 열심히 배워서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출 거에요. 그때는 제가 연락 드리죠. 그때 다시 토론하고 싶습니다." 5년후의 '노동자의 얼굴'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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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시민

    지롤을 해라..지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