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학생들은 어디로 간 걸까?

정작 그들이 집중하는 고민은 "삶에 대한 불안정"이다. 그들은 앞날의 불안함을 해소하려는 돌파구로 잠시나마 그것을 잊기 위한 '집단적 열광의 도가니'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집단적 침묵의 도가니' 속을 우울하게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태수(노동자의 힘 회원)

철학자 헤겔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혁명가 맑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소극으로"

2002년 6월 한국에서의 역사는 두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15년이라는 긴 터울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최근의 반복된 역사가 또 하나의 소극(笑劇)이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87년 6월 항쟁 당시 시청 앞 광장을 가득히 메운 채 30여만 명의 민중들이 피 흘려가며 외쳤던 "호헌 철폐·군부독재 타도"의 열망들은 군부지배계급의 기만적인 '직선제 제안'으로 급격히 소진되었던 반면, 2002년 오늘은 시청 앞 광장을 가득히 메운 채 30여만 명의 '국민'들이 '땀' 흘려가며 외쳤던 "대∼한민국·16강 진출"의 열광들이 국민적 영웅 히딩크의 '8강 진출 복안'으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필승 코리아!?

정규TV 프로그램은 이미 '정규'방송이길 중단했다. 각종 게이트에 비리파문과 정계인사들의 추문들, 작은 허점과 틈만 보이면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상대적인' 투명성과 정당성을 얻으려고 각축장을 벌이던 여야간의 정쟁도, 심지어 지방선거를 계기로 뜨겁게 불붙었을 6·13의 카드 역시 "투표하고 응원하자"는 슬로건 하에 말끔히 사라진 9시 뉴스에는 '세계적인 대축제의 성공적인 기원'과 '한국팀의 8강 진출'을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문으로 도배질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툭하면 '빨갱이 사냥과 축출'을 입에 개 거품 물 듯 남발하던 어느 일간지 신문은 무려 6면이나 되는 지면을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를 열광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할애해 주는 특단의 배려를 해주기까지 한다. 점심을 먹으러 간 사람들도, 대화를 나누러 커피숍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심지어 고향집에 내려가려고 터미널에 모인 사람들도 각자의 할 일은 잊은 채 "Oh, 필승 Korea!!!"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 '역사적인 진풍경'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집단적인 최면현상?

하지만 모두가 열광하고 모두가 즐기는 '월드컵 현상'에 마치 히스테릭한 환자의 우울증 발작처럼 "도대체 왜 이 난리야?" 비아냥거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집단적 최면현상' 운운하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은, "그저 스포츠를 즐기고 피곤한 일상의 시름을 덜어보자는 데 좀 지나친 거 아니냐!"는 항변 앞에 할 말을 잊는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월드컵 현상을 둘러싼 논쟁에 있지 않다. 이미 전국을 휩쓰는 압도적인 애국애족의 열풍 속에서 이러한 작은 항변은 끼어 들 여지조차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쟁의 결과는 의외로 싱겁게 끝날 수밖에 없었고 '전 국민의 열렬한 관심과 참여'에 압승의 손을 들어줌과 동시에 '지나친 응원열기로 인한 대규모의 거리 운집은 때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대규모의 경찰병력을 붙여 주어야 한다'는 애매한 관전평만이 뒤따랐을 뿐이다.

국민적 광란의 뇌관이 폭발하다

하지만 단지 그 것뿐이었을까? 이번 2002 한일월드컵에서 언론과 각종 매체가 수행한 것은 단순한 '본질 흐리기' 정도가 아니라 흥분과 광란의 잠재적 기운들을 흡입하고 압축하여 급기야 커다란 굉음과 함께 폭발시켜 버렸던 것이다. 하기에 그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에도 불구하고 차도를 막고 전 차선을 점거하는 경우나 버스위로 올라타는 돌출적 행동과 함께 급기야 16강 기원을 염원하며 제 몸에 불을 부치는 분신사태까지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인 광란의 현상을 보면서 66년 전 베를린 올림픽을 나찌의 광란극으로 연출했던 독일의 파시즘과 14년 전 서울 올림픽을 태생적 한계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세계인의 축제로 포장했었던 한국의 파시즘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되는 것은 지나친 발상일까? 저 만치서 또 한번 일갈하는 핀잔이 들려
온다. "이 인간, 또 시작이군…."
그래. 좋다. 어차피 10%를 차지하는 좌파세력(월간 조선)이 암약하고 있는 남한사회의 98%가 빠짐없이 월드컵 시청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동권의 순결성'을 유지하려는 지나친 강박관념은 자칫 정신건강을 손상시킬 따름이다.

그것을 우려해서였는지 전국의 대다수 대학에서는 학교당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대규모 스크린을 동원한 '월드컵 함께 보기'행사가 거국적으로 진행되었다.
온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하고, 목에는 태극기를 두른 채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학생들의 함성이 캠퍼스에 울려 퍼지며 월드컵의 긴긴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총학생회의 대대적 홍보 속에 치러진 이번 행사는 단지 지난 선거에서 '반운동권'을 표방하고 나섰던 일부 대학만을 일컫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학우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는 취지와 "한미전을 계기로 일고있는 반미정서를 고취하겠다"는 실용적인 이해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소위 운동권 총학생회의 사업 계획 속에서 고안된 창안물인 것이다. 여기에다 금번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반통일 세력을 심판하고 진보정당에 투표하자는 산뜻한 형식(백지 자보!)의 선전이 가미되면서 가슴 설레이는 대학 내에서의 6월의 밤은 점점 더 깊어 갔다.

미증유의 국민적 열광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전 국민적 관심이 '월드컵 우승'에 집중될 때 지배분파에서 지방선거의 저조한 참여율을 걱정했다고 한다면, 학생들의 이목이 '월드컵 생중계'로 집중될 때 대학당국이 우려했던 것은 기말고사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이었다. 하지만 48.9%의 저조한 선거 투표율에 비견하면 대다수 대학의 도서관은 학기말을 앞두고 인산인해를 이룬 시험준비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점에서 큰 차이점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시사하는 바를 "공부하고 응원하자"라는 식의 합리적인 판단과 행위로 섣불리 해석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
정작 그들이 집중하는 고민은 "삶에 대한 불안정"이다. 그들은 앞날의 불안함을 해소하려는 돌파구로 잠시나마 그것을 잊기 위한 '집단적 열광의 도가니'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집단적 침묵의 도가니' 속을 우울하게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적 대축전이 그물 망의 다(多)득점 국에게 금 덩어리를 넘겨주고 막을 내린 후 비로소 지난밤의 폭음으로 인한 기나긴 숙취에서 조금씩 깨어날 무렵 그들 앞에 남겨진 과제가 '사회진출에 대한 불투명'이라는 난제를 돌파할 치열한 생존경쟁에 놓여 있음을 인식할 때 그들은 한 달간의 좋았던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보다는 앞날을 예견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냉혹한 이해타산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지진이 지나간 후에도 얼마동안 미진(微震)은 남아있기 마련이다. 혹자는 스포츠의 결과를 넘어 "한민족의 저력과 위기극복의 단결력"이라는 더욱 값진 성과를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활전선에서 더욱 더 열심히 매진하자고 부추기고 있다. 정신적 에너지의 효과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월드컵 이전에 불어닥친 전 사회적 구조조정이라는 지진이 남긴 '삶의 불안정하고 고단한 일상'의 여진 속에서 이러한 약발이 얼마만큼 갈 것인가가 의문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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