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진단]건강보험 재정위기 1년의 경과

관리되는 위기, 제한되는 투쟁

강동진(노동자건강권쟁취를 위한 노동보건연대회의 집행위원장)

그 많던 위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2001년 3월 16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전망 및 요양급여 변화추이"라는 자료를 발표하였다. 이후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말은 위기, 파탄, 고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쓰이게 되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액면 그대로, 건강보험제도의 운용을 가능케 하는 재정 수지가 적자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 위기는 일차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관리자, 즉 정부의 위기가 된다. 둘째, 그것은 자본의 위기가 된다. 노동력의 재생산과 사회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작동을 멈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셋째,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병원과 의사를 위시한 한국 의료공급자의 위기이다. 이들에게는 이윤의 원천이 고갈되거나 부족해질 위험에 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위기는 노동자 민중의 위기이다. 그나마 존재하던 최소 수준의 의료보장마저 위협당하고 질병의 위협 앞에 폭로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의 위기 중에서 실제로 드러난 위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하나, 노동자·민중의 위기, 건강과 가계의 위기일 뿐이었다.

정부대책 - 위기 관리와 고통분담(?)

정부에서 시행한 건강보험 재정안정 대책은 4차례에 걸쳐 발표되었다. 2001년 5월 31일의 '건강보험 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 이후 2차 10월 5일, 2002년 1월 16일 '의약분업 및 건강보험재정안정대책 추진 성과' 발표, 2002년 4월 10일 등에 발표된 내용이 그것이다. 5월 31일 발표된 종합대책은 단기절감대책으로 본인부담금 인상, 진료비 급여제도 조정(간접적 수가인하), 약제비 인하, 지역의보 국고지원 50% 지원 등을 제시했으며, 중장기 개선대책으로는 보험료 인상, 민간의료보험(노인요양보험 포함)과 전자건강카드 도입, 포괄수가제 확대 실시, 총액예산제 시범사업 실시, 수가심의기구와 보험료심사기구의 통합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2차 재정안정대책은 보험급여일 수 365일 제한, 일반의약품 비급여 확대, 사회복지법인 부설의원의 진료왜곡행태 근절, 내과계열 만성질환관리료 신설, 의약분업 예외 환자 원내·외 조제선택권 부여 등으로 구성되었지만 급여 축소와 약제비 절감 방안의 구체화가 핵심이다.
그 결과 당초 4조원 이상 예상되었던 재정적자 규모가 2조 4천억 정도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으며, 이는 당초 예상하였던 목표만큼의 재정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1월 16일 정부는 발표하였다. 그리고 금년의 경우에는 2월 중에 보험료 7% 인상이 확정되고, 또한 4차 종합대책의 실시에 따라 재정적자 규모가 4천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개선 효과에 기반하여 정부는 2006년까지 보험료를 매년 8∼9% 인상하게 되면 2003년 전체 보험재정의 당기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2006년에 차입금 상환을 완료하여 건전재정기조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관리'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관리'는 대부분 노동자·민중의 부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난 해에 이루어 졌던 약 1조원의 재정개선 효과는 본인부담금 인상, 급여축소, 보험료 징수율 확대 및 부담 증가 등에 의한 것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진찰료·처방료 통합 등의 의료공급자 부담 분은 그동안 수가관리체계의 '불공정성과 불합리'를 교정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위기로 인하여 급여확대 등 의료보장을 위한 제반 대책은 뒤로 미뤄졌으며, 오히려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 시장지배를 확대하기 위한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현재의 열악하고 '반쪽짜리' 건강보험은 유지된 채 재정위기가 관리된 후, 향후 건강보험체계의 시장적 질서로의 전면적 개편의 기로가 향후 다가올 전망이다.
1997년 말, 이 땅에서 소위 'IMF가 터졌을' 때 그것은 더하고 뺄 것 없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그 자체였는데, 노동자 민중이 국가경제의 재건을 위하여 장롱의 금붙이를 모으고 허리띠를 조이는 사이, 어느덧 위기는 자연스럽게 노동자·민중의 것이 되어 있었고, 정리해고, 실업, 노숙, 가족의 해체, 생계형 범죄 등등의 암울한 현실이 끝없는 긴 터널처럼 이어진 이면에 정권의 부정과 부패, 자본의 사상 유례없는 이익 챙기기, '20대 80을 넘어선 10대90의 사회'가 이어진 현실과 유사하다.

재정위기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남긴 것

건강보험 재정 위기에 논란은 의약분업 실시를 둘러싸고 의사 폐·파업 등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이나 논란 만큼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주요하게는 의약분업 실시과정의 과도한 인상, 의약분업 제도 자체에 내재된 지출 증대 효과, 노령화·급여확대·신기술 도입·의료공급자 수 확대의 지속 등 의료수요의 증가, 보험료 인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 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논란은 각각의 원인 진단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재정위기의 관리'를 위한 개입지점을 확보하는 데 두게 되었으며, 따라서 지출억제, 수입 증대의 양대 범주 아래 여러 정책방안들이 소개되었으며, 그것은 결국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의료공급자의 몫을 일부 줄이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민중의 위기로 귀결될 조치들이었다. 또한 보건의료제도가 담지하고 있는 계급적 모순-비용부담을 누가 할 것인가를 둘러싼 대립-을 은폐시키고, 결국 재정위기가 초래하는 네가지 위기의 가능성 중 정부, 자본, 의료공급자의 위기를 관리할 명분과 기술을 제공하면서 민중의 위기로 귀결될 가능성을 조장 혹은 추인해 버렸다.

수가인하 투쟁-곳간의 관리자를 자임함?

시민운동 등 운동진영의 대응도 사실 '건강보험 재정위기의 관리'라는 초점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단지 그 위기의 책임을 정부 혹은 의료공급자에게 두어 '수가인하투쟁'을 전개하였다. 즉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과도한 수가인상이므로 종합대책도 당연히 '수가인하'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러한 건강보험이라는 '곳간'의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운동진영의 대응이어야 했을까? 그리고 그것은 민중의 이해와 정서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진보였을까?
운동진영의 주장 내용과 마찬가지로, 아이러니하게도 경총 등 자본가집단도 동일하게 주장하였다. 5월 31일 발표한 정부의 종합대책에 대해 경총은 '재정안정효과가 미약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불신과 우려를 해소하기에는 미흡한 것'이라 평가하며,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의약분업과 함께 진행된 수가 인상의 합리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의약분업과 관련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이루어진 수가인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가의 입장은 중립적인 보험 "가입자"라는 이름 하에 사회보험에 대한 기여율을 줄이고자 하는 노골적인 시도의 근거로 과도하게 인상된 수가를 지적하며 그것의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의 위기를 관리하는 것, 즉 재정안정화를 이루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제반 투쟁은 그리 진보적이지 않음을 또렷이 보여 준다. 각론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수사(rhetoric)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시민단체나 자본가집단이나 정부의 정책실패의 책임을 그 "가입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모두가 이러저러한 자신이 아는 정책의 묶음을 나열한다. 그러나 현실의 경향은 곧 '수가인하=현실의 진보'라는 초라한 하나의 주장으로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나 문제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의 대응도 건강보험이라는 '곳간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왜곡된 대립구도 - 수구연합 대 개혁연합

운동진영의 대응이 '동상이몽'격으로 결국 정부, 자본가와 다르지 않게, 건강보험의 '위기 관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배경에는 김대중 정부하에서의 보건의료개혁 정책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알다시피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은 김대중 정부 보건의료개혁의 대표적인 정책이자, 기존 보건의료시스템을 변화시킬 계기가 되는 정책이다. 의료보험 통합일원화-의약분업은 시민운동, 노동운동을 비롯한 운동진영 대다수 세력이 주장하였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 추진되었던 양대 보건의료 정책을 그 자체로 선한 것, 긍정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 상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마저 민중의 건강을 위해 쓰이는 유용한 도구이기는커녕 민중의 피와 땀을 쥐어짜는 무기로 변화시켜 버렸다. 의약분업이나 의료보험통합은 어떤 면에서는 부조리와 비효율, 전근대성의 척결로도 나타날 수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를 강요하는 측면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을 그 자체로 '선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 사회가 자본운동의 논리가 관철되는 곳이며, 정부는 그것을 수행하는 '집행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진영은 의약분업, 의료보험통합이 그 자체로 '개혁적'이라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제도의 왜곡을 초래한 모든 요인들은 개혁을 순행을 방해하는 '보수수구세력'이라고 규정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대상은 과도한 수가의 인상을 강제하여 의약분업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중의 소중한 피땀의 건강보험의 곳간을 축내는 '나쁜' 의사집단이었다. 그리고 이를 정책과정에서 용인한 정부가 그 다음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김대중정부의 보건의료개혁을 '개혁연합에서 수구연합으로의 회귀'라고 평가한다. 또한 '수가인하'를 주요한 요구로 내걸은 입장은 이제 김대중정부아래에서의 '미완의 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사명까지 떠맡게 되어버렸다.

적정과 합의 : 관리되는 위기

그래서 건강보험 재정 위기는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력에 의해 관리된다. 매일 건강보험 재정현황을 발표하고 있는 정부에 의해서, 개인 부담의 확대를 통하여 공적 지출의 축소를 공공연히 시도하는 자본에 의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이 위기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시민운동과 개혁연합에 의하여.
건강보험 재정위기에 대한 다양한 해법 중에 사회적 합의 모형이란 것이 있다. 즉 정부(보험공단)-가입자-공급자가 '저부담-저급여-저수가'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체계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심정에서 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곳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사회보험에 대한 자본의 공격이 압도적인 현실에서 일차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모형은 끊임없이 현 의료체계에 대한 정당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흐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공동체·집합적 방식'이라는 사회보험의 정신에 대한 옹호와 현재의 건강보험제도를 동일시할 필요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이러한 입장은 '보험료 납부 거부'같은 민중의 투쟁에 대해 사회보험의 정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거부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민중의 투쟁은 그들 자신의 요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판단'에 의해 제한되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적 판단에 의해 민중의 직접적 요구를 위한 투쟁은 '먼 미래의 일'로 유보되고 미루어져 왔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민중투쟁이 가야 할 길

따라서 우리는 재정의 위기 자체에 관심을 한정할 필요가 없다. 보험재정의 위기는 일차적으로는 정부의 위기, 자본의 위기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재원조달의 불형평성, 그것이 유발하거나 초래할 실제 건강 상의 불평등의 심화이다. 그렇기에 민중의 필요와 무관한 비용의 증가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사적 의료제공체계에 대한 투쟁, 무상의료를 장기적 대안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투쟁 과제로 전면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위기의 본질을 왜곡하는 곳간의 열쇠를 자임하며 개혁연합의 기치를 드는 정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투쟁할 수 있도록 그 옆에 함께 설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건강보험제도는 누구나 만족을 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 정부는 현재의 위기를 '관리'하면서, 건강보험체계에 시장적 질서를 도입할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으며, 자본은 민간의료보험도입으로 대표되는 건강보험제도를 시장적 질서로 재편함으로써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시장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고삐를 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시도는 지난 해에 발표된 '민간의료보험활성화를 위한 보고서'의 제출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보건의료에서의 계급투쟁은 이제 '시장적 질서로의 전면화인가' 아니면 '민중건강을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전면적 재편'이냐라는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아직 사적의료체계를 넘어선 민중건강권을 담보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의 건설이라는 우리의 전략과 투쟁은 노동계급의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거나-그래서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거나-개별적·지역적 차원에 국한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의료 확대투쟁은 아직은 노동자·민중의 직접적 참여와 요구에 의해 조직되기 보다는 '정책적 수준'에서의 고려와 판단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며, 그나마 최근 지방자치단체 선거속에서 각 정치세력이 집중적으로 제기하여 향후 하나의 '정치적 의제'로 전화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여전히 이를 위한 운동주체의 형성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의료급여제도의 개선을 통해 그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는 투쟁은 민중의 '권리'투쟁으로서, 전 민중의 문제로서 인식되기 보다는 정부가 베푸는 '시혜의 확대'라는 관점을 가지거나, 투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건강보험급여확대를 요구하는 투쟁은 재정위기의 과정에서 이는 곧 보험료 인상으로 연결된다는 대중적 인식이 자리잡혀 있어 투쟁의 조직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투쟁은 향후 민간의료보험 도입과 의료시장개방에 따른 자본의 공격이 가시화될 경우 이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집결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작년 하반기 구성되었던 '민간의료보험도입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투쟁의 민중의 직접적 투쟁으로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관리'라는 관점을 벗어날 때 제대로된 투쟁의 전개가 가능하다. 또한 의약분업이란 정책기제가 아닌 의약품 생산, 유통, 관리를 공공적 시스템으로 바꾸어나가는 투쟁은 더더욱 요원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의 한계와 주체역량의 현 상태는 거꾸로 보면 민중건강을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전면적 재편을 위한 투쟁의 싹이 이미 자라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투쟁의 싹을 키우고 열매맺을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전략과 주체의 형성을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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