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와 남은 자들⑩]주민등록증 네장 남기고 떠난 맏아들

유재관 부모 유병수 반귀분

윤재설 dllp21@kdlpnews.org
11년전인 1991년. 그해 6월에도 선거가 있었다.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한 91년 5월투쟁이 유서대필 논란과 외대 사건으로 급속하게 잦아들 무렵, 6월 20일 실시된 광역의회 의원선거는 금권·관권 선거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낮은 투표율(58.9%) 속에서 민자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거결과가 나온 직후 노태우 대통령은 “6.20선거는 지난 한달여에 걸쳐 민주주의 체제를 폭력으로 전복하려는 극소수 세력이 벌여온 잇따른 소요와 정치·사회적 불안을 조장하려는 행위에 대한 온 국민의 분명한 대답이었다”며 “모든 불법 폭력행위에 더욱 결연히 대응”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것이 현실화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찰은 압수수색영장 발부라는 절차를 밟는 시늉도 하지 않고 연일 대학구내와 파업사업장에 병력을 투입, 학생운동 간부를 연행하고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해산시켰다. 인천지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6월 23일 새벽 1백30명이 농성중이던 인천 동서식품에 경찰 1천여명이 투입됐고 26일에는 총학생회장을 연행하기 위해 인하대에 백골단이 투입됐다.

27일 밤 인천 주안1동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사연)에서 정기총회를 준비중이던 유재관(당시 29세)과 다른 회원들은 인천대에 공권력이 투입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사연도 곧 침탈당할 것으로 판단, 급하게 짐을 싸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신흥목재 등 인천지역사업장에서 활동하다 해고된 후 인사연에서 남부 노동반장을 맡고 있던 유재관은 중요한 문서를 챙긴 후 3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진탕으로 숨을 거뒀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경우에도 기꺼이 죽어가는 것은 그 목적이 숭고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가 좌우명으로 삼은 글귀는 묘비명으로 남아있다.

아들이 떠난 지 11년. 지난 20일 반귀분(66·사진 오른쪽)씨는 서울 공항동 집 안마당에서 맏아들의 11주기 추모제에 가져갈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재관이가 돈 만원 갖고 나갔지. 새벽 1시에 연락 받고 택시를 타고 갔는데 벌써 영안실에 들어가 있더라구. 너무 허무하게 죽어서….”

서울외국인학교 스쿨버스 운전을 하던 아버지 유병수(68·사진 왼쪽)씨는 아들이 학생운동을 하던 때부터 타이르고 꾸짖으며 말렸다.
“좋은 학교 나와서 회전의자에 앉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고생을 하냐 말려도 요지부동이야. 어려운 노동자들과 싸우다가 죽은 거지, 빛도 못 보고.”

1981년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한 유재관은 1983년 11월 교내시위를 주도했다 수배를 받았다. 이듬해 학원자율화 조치로 수배해제가 된 후 복학한 그는 1985년 졸업 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졸업하던 해에 대기업에서 숱하게 입사원서를 보내왔는데 하나도 안 썼어. 그러고 구로공단에 취업을 한 거지. 죽고나니까 주민등록증이 4개야.”

‘부티’가 나는 것을 걱정했던 아들은 새 옷을 사주면 입고 나갔다가 헌 옷으로 바꿔입고 오곤 했다.
아들 뒷치닥꺼리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용노조쪽 구사대한테 맞아 안경이 깨지면 그때마다 안경이며 렌즈며 아버지 모르게 해다줬다. 집에는 형사들이 “빨갱이 용공분자 아들 찾아내라고” 진을 치고 있었고 유병수씨 직장에도 형사들이 찾아오기 일쑤였다.

아들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우리 재관이가 걸었던 길을 내가 한번 걸어보겠다. 네가 못 다한 일 내가 들어주리라”는 심정으로 공장에 들어갔다. 1991년 가을 해태제과에 용역으로 들어간 반귀분씨는 초코렛 만드는 일을 하며 공장이 천안으로 이사갈 때까지 7개월 동안 노동자들의 생활을 체험했다.

“우리 재관이가 초코렛을 좋아했어. 그 생각이 나서 퇴근하면서 초코렛을 조금씩 집에 가져왔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
“나는 옷도 제대로 사서 입지 않고 어디 안 가요. 호강하는 건 우리 재관이한테 미안한 거지. 재관이가 있을 때는 밤 12시에 애가 안 오면 가슴이 펄펄 뛰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행복했지.”

그래도 어머니는 요즘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것을 보면 “우리 애가 뿌린 씨앗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인터뷰 말미에 유병수씨가 덧붙인 한마디. “인천에서 재관이랑 같이 운동하던 동료들 중에 당원이 꽤 있을 거야.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자민련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왔지. 가망성이 있어. 세월이 가면 인정받고 커질 거야.”
[ 93호] 6.24 ~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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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줌마

    어머니 건강하세요. 재관이가 어머님 안에서 살아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