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아웃사이더> 편집주간
한국팀의 월드컵 첫 경기가 있던 날 길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몇몇 젊은이들이 “빨갱이가 되라”는 선동문구가 적힌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골목만 돌아서면 빨갱이, 버스에서 내리는 빨갱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빨갱이, 여기도 빨갱이, 저기도 빨갱이. 때는 바야흐로 빨간 티셔츠의 유행이 막 시작되던 시점, 마침 사회당의 당수가 공영방송에서 사회주의자 커밍아웃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때였다. “아니, 갑자기 웬 사회주의자들이 이렇게 많아졌지?”
‘붉은 악마’들은 운동권을 벤치마킹했음에 틀림없다. 젊은이들이 길에 뛰어들어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시위가 있을 때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게다가 버스 위로 기어올라가 태극기를 휘날리는 것은 광주 항쟁 때 금남로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그뿐인가? 지나가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에게 막 연대를 표시한다.
이 또한 87년 6월 항쟁 때에나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심장부 도심에서 부르주아적 일상을 파괴하는 일탈자들은 빨간 티셔츠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빨갱이가 되라.”
방송에서는 이 갑작스런 에너지의 분출의 의미를 캐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왜 젊은이들이 갑자기 이렇게 미쳐 날뛰는가? 아마도 욕망의 기계가 작동했기 때문일 게다.
서구에서도 1968년에 풍요로운 복지 사회 속에서 고이 자란 젊은이들이 갑자기 일상을 파괴하고 혁명적 집단이 되어 “빨갱이가 되라”고 외친 적이 있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아 ‘민중’이라는 말의 뜻도 모르고 자란 우리의 젊은이들도 지금 “빨갱이가 되라”고 외치고 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서구의 젊은이들은 정말 빨갱이가 되려고 했다면, 우리의 젊은이들은 무늬만 빨갱이, 즉 빨간 유니폼을 입은 응원단이 되려고 할 뿐이다.
앞뒤 콱콱 막힌 권위주의적인 보수사회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욕망은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 욕망의 분출은 결코 그 욕망을 억압하는 기제를 겨냥하지 못한다. 한번 터져 나와 기껏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 다시금 얌전히 애국적으로 길들여질 뿐이다.
한국팀이 포르투갈을 꺾던 날, 광화문에서 이 놀라운 욕망 덩어리의 분출을 구경하다가, 졸지에 누군가의 선창에 의해 집단적으로 불리어진 애국가의 합창 속에 갇혀 버리고, 나는 그만 절망을 하고 말았다.
[ 93호] 6.24 ~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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