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가 만난 사람]"생활정당으로 지역에 뿌리내려야죠"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30ㆍ여성ㆍ전업활동가 출신 사무처장...도전적 문제의식과 돌파력이 요구되는 자리

이재영/편집위원
참여연대 기획실장으로 일하던 박영선은 1년 여의 미국 유학(?)을 그만두고 급히 입국해야 했다. 참여연대가 그를 사무처장으로 승진시켰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이 유력 사회단체에서 고위직을 맡는 것은 이례적인데. 저는 운동권이야말로 전근대성을 온존시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집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에도 여성 사무처장이 있으니까, 처음은 아니죠.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그런 질문을 던져 당혹스러워요. 저 스스로 여성이라는 점은 별 의미 부여를 안 하거든요. 하지만 나이가 적다는 건 좀 부담스러워요. ‘참여연대 사무처장 박영선입니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액면 그대로 인정해줄까 싶은 거죠. 30대 후반이라는 건 장점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집단이 40대인데, 그들은 여러 망을 통해 엮여 있거든요. 감시와 견제라는 참여연대 활동 측면에서는 40대 인맥에서 자유로운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참여연대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창립 당시의 도전적 문제의식과 돌파력을 복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번 인사의 배경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30대 여성이 사무처장이 됐다는 것보다는 전업활동가가 고위직에 올랐다는 데 관심이 더 간다. “민주노총 같은 데서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경력이 오래돼도 전업활동가는 국실장에 머무를수밖에 없는데. 위원장은 오히려 경력 짧은 사람들이 되고. 참여연대에서도 외부 변호사나 교수들한테 주요 직책을 주지 않나요?”

“노조에는 노조의 조직원리가 있으니까 그렇겠죠. 참여연대가 비상근 ‘전문가 발런티어(volunteer)’를 적극 활용하는 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참여연대의 전문가들은 이름만 거는 명망가들이 아니예요. 기획에서부터 집행까지 상근자들과 똑같이 일하죠. 상근자인 제가 사무처장이 된 것은 합리성을 중시하는 참여연대의 문화 덕택이라 생각해요.”

조직은 달라도 관심은 일치

박영선은 만날 때마다, 자신의 남편인 주진우 민주노총 정책국장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아이까지 둔 부부가 함께 사회운동을 하기는 진짜 어려운 노릇 아닌가?

“제 남편이 전노협에서 일할 때 만났어요. 그 때 10만원 받았었는데, 민주노총 되니까 40만원이나 받더라고요. 저는 집에서 요리만 하고, 나머지는 남편이 다 해요. 어린이집에서 현우 찾아오는 건 제가 이틀, 남편이 사흘 하고요. 주진우는(남편이라는 말보다는 주진우라는 호칭을 많이 쓴다. 이름이 갖는 사회성을 더 중시하는 모양이다.) ‘가사 분담‘이나 ‘도와준다’는 말을 진짜 싫어해요. 가족이니까 가족 일 한다, 뭐 이런 거죠.”

“지하운동 시절, 저하고 일하시던 분 중에 남편이 다른 지하조직원인 경우가 있었거든요. 가끔 생각해 봤어요. 그 부부는 베갯머리에서 무슨 얘기할까? 주진우씨하고 다른 조직인데, 별 문제 없나요?”

“아마 그 분들 할 얘기 안 할 얘기 다 했을 거예요. 결국 통합됐잖아요. 참여연대, 민주노총으로 조직이 다르지만, 우리 부부 관심은 완전히 일치해요. 저든 주진우든 요즘에는 비정규직 문제나 사회적 소수자 문제를 제일 크게 고민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민주노총 주진우가 참여연대에 바라는 거, 참여연대 박영선이 민주노총에 바라는 거는 많이 다르고, 그 간극이 점점 커지는 거 같아요. 현실하고 기대나 원망이 일치하지 않는 거죠.”

단체든 집단이든 외국에서 자신들의 지향과 비슷한 사례를 찾곤 한다. 이런 측면에서 참여연대는 독특하다. 참여연대가 지향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겠지만, 참여연대가 소개하는 사회운동은 미국과 일본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국에 다녀왔냐고 물었다.

“영어권으로 다녀와야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영국보다는 미국을 권하더라고요. 영국은 너무 늙었다고. 미국 시민운동은 굉장히 발달해 있어요. 운동 주제가 미시적으로 잘 분화돼 있고, 조직도 그렇게 발달해 있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의 사회운동과 정치가 완전히 분리돼 있는 건 정체의 징후인 거 같아요. 역시 운동의 미래가 가능한 것은 한국처럼 역동적인 사회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몇 번 본 것으로 사람의 진면모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박영선은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자유주의자이거나 자유주의적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 생활이 꽤 재미있지 않았을까.
“굉장히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제 나이, 성(性), 배경, 참여연대, 진보 이런 게 아무 제약이 되지 않더라고요.
백악관 옆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청와대 옆에서 데모하다 끌려가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현우 유모차 끌고 다니면서도 아무 불편 없으니까, 우리나라 장애인 이동권 생각났고....”

노동 가치 인정 여전히 부족

누구든 한 발 물러났을 때 더 많은, 더 깊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잠깐 청소부노조 관련 일을 했어요. ‘남청여봉’이라고 이민 초기에 남자는 청소부로, 여자는 봉재공으로 일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청소부로 일하면서도 노조에 가입을 안 해요. 볼티모어 지역 청소부노조 조직율이 70%나 되는데,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다들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출신 청소부들은 ‘소사업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에 대한 인식, 노동의 가치 인정이 여전히 부족한 거 같아요. 전화가 고장나 기술자를 불렀더니, 출장비 70달러를 받더라고요. 처음에는 익숙치 않았지만, 이제는 노동에 아무 대가를 지불치 않는 우리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 월드컵팀이 폴란드와 경기하던 날, 박영선은 열광하는 참여연대 간사들에게 투덜거렸다. ‘군대 축구 얘기’를 질색하던 절대 다수의 여성들이 의거 귀순한 요즘도 박영선은 뜨악한 눈길로 축구 열풍을 질시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선린상고 야구부 선수들 타율을 외울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과정은 깡그리 무시하고 결과로 모든 걸 말하는 스포츠가 싫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한국팀에 지고 드러누워 울고 있는 외국선수를 보니 마음이 아파지고. 우리는 너무 ‘우리’를 강조해요. 전일적인 거, 압도하는 거 그런 거 안 좋아해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이기는 게 왜 좋은 거죠. 전, 1등 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언제나 2등 했는데….”

“참여연대는 1등이잖아요. 그리고 1등 유지하려 힘쓰는 거 같은데.”

“참여연대 안 그래요. 그런 말하는 사람들 보면 막 싸우고 싶어.”

인터뷰해야지, 싸울 일이 아니다. 박영선의 ‘집권 구상’을 들어 보자.
“시민운동이 시민들한테는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죠. ‘작은권리찾기운동’ 같은 거 통해서 참여연대 문턱이 많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엘리트, 전문가, 중산층 이미지가 강하죠. 활동에서도 조직에서도 더 문턱을 낮추는 일을 하려 해요. 지금 1만2천명 정도 되는 회원이 1만 원씩 회비를 내고 있는데, 회비를 더 낮춘다든지 해서 서울 고학력 중심 회원 구조를 지방 저소득층이 많이 참여할 수 있게 고치고 싶어요.”

박영선은 민주노동당 당우다. 장상환 교수가 시민단체 국가보안법이라 갈파한 ‘시민단체 임원 당원 금지 내규’에 따라 당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우로서 한 마디.

“참여연대가 사회의 여러 문제점과 모순을 조직 내부에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에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인 문제들이 있는 거 같아요. 민주노동당에 정책기능은 있지만, 생활정당으로 지역에 뿌리박는 바는 약한 거 같고. 생활에 더 밀착했으면. 더 근본적인 질문도 던져 보고 싶어요. 우리는 노동자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데, 왜 노동자 서민들은 우리에게 표를 주지 않는가 하는 생각. 이번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셨던 분들에 대해서도 과연 저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가, 많이 고민했어요.”

정답이 준비된 질문은 재미가 없다. 아니, 정답이 있다면 애초에 질문이 주어지지 않는다. 세익스피어를 열독하던 영문학도 박영선은 아직껏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시민들은 시민단체에 안 오지? 왜, 동료와 축구 얘기에 열을 올려야 하지? 왜,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하지? 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을 홀대하지?

그가 그런 질문을 던져 나를 당혹케 할 때, 나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격조 있는 호사(好事)나 박물학적인 취향이 아닐까 의심하곤 했다. 물론 아니었다. 박영선은 주진우와 따뜻한 가슴을 맞대고 오늘밤을 회의(懷疑)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회운동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니까.
[ 93호] 6.24 ~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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