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월드컵’ 구호 속에 숨겨진 빛과 그림자

월드컵 열풍으로 행복한 비명 지르는 사람들, 월드컵에 가려 신음하는 사람들


월드컵에 환호할 수 없는 사람들. 왼쪽부터 지하철 발산역 리프트 추락사고에 항의하는 장애인들, 월드컵 기간 보름 동안에만 3명의 동료를 산재사망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거리미화’라는 이름 아래 쫓겨나고 있는 노점상들.(사진)

프랑스의 예선탈락, 한국의 4강 진출 등 이변이 속출하며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한국 수백만 국민을 거리 응원으로 동원했던 2002 한일 월드컵.
그러나 열광적인 환호 속에 가려진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막대한 이득 챙기는 FIFA, 그 이면에 숨어있는 아동노동 착취

FIFA는 이번 대회에서 중계권과 사업권을 팔아, 드러난 것만 2조 4천억원 가량을 챙겼다. 특히 중계권료는 1조 2천억을 넘어, 지난 프랑스 월드컵보다 무려 10배 이상이나 가격이 비쌌다.
FIFA는 모든 곳에서 수익을 창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광화문과 시청 등에 있는 대형 전광판 또한 FIFA에 경기당 약 2천만원을 낸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라운드의 열띤 함성 이면에는 몇 시간 동안 쭈그리고 앉아 축구공 생산에 동원되는 어린이들의 비참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이 두 국가에서만 수십만명의 어린이들이 축구공, 유니폼, 기타 용품 등의 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기계로 생산되는 축구공은 품질이 떨어지고 수제품보다 약 30~50%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동남아 어린이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착취하여 수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이윤을 남기고 있다.
하나당 15만원씩 하는 2002 월드컵 공식 축구공인 ‘피버노바’ 생산에 동원되는 8세~15세 어린이들이 한뜸한뜸 바느질을 해서 만든 공의 제조원가는 판매단가의 0.1%인 150원. 하루종일 구부리고 앉아 일을 해야 하는지라 각종 디스크에 실명하는 어린이들도 늘고 있다.
‘둥근 축구공’으로 전세계의 화합을 도모한다는 월드컵, 그러나 그 둥근 공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어린이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들이 생산하는 축구공 중에는 역설적이게도 ‘아동노동금지’라는 선명한 슬로건이 찍힌 공들도 있다.

재벌들의 돈잔치 속에 노동기본권은 땅속으로 파묻히고 있다


KTF의 “코리아 팀 파이팅(Korea Team Fighting)!”, SK텔레콤의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동통신업계 1,2위를 다투는 KTF와 SK텔레콤이 월드컵 마케팅으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
KTF는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서 FIFA의 철저한 배려를 받아 월드컵이 펼쳐지는 한 달 동안 모든 경기에서 A보드 광고를 두 개씩 좋은 자리에 세울 수 있는 등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맘껏 자신을 알릴 수 있다. KTF측은 “정확한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금액으로 따져본다면 광고효과는 국내 760억, 해외 6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SK텔레콤 또한 ‘붉은 악마’를 활용한 광고 전략으로 전세계 기업 브랜드 인지도를 3% 높이는데 성공했다. 보통 초국적 기업들이 인지도 1% 높아질 때마다 1,000억원의 마케팅 효과를 본다고 알려져 있는데, SK텔레콤은 3억원의 광고비용으로 3,000억원 상당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벌들이 어마어마한 돈벼락을 맞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철저히 무시당하며 탄압받고 있다.
정부는 월드컵 경기가 치러질 주요 경기장 1킬로미터, 선수단 숙소 주변과 보조경기장, FIFA 총회장 6백미터 이내를 각각 특별치안구역으로 설정, 집회 및 시위를 불허하는 지침을 만들어, 노동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집회를 하려는 노동자들에게 집회금지 통고를 했다.
지난 3일에는 미국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서울 메리어트 호텔의 정문에서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대우자판노조 부산지부 손민웅 사무장이 경찰차에 불법연행되어 30여분간 감금당하기도 했다.
‘성공 월드컵’의 구호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조차 무시하며 국민의 기본권 탄압 명분으로 이용되고 있다.

장애인과 노점상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환호할 권리조차 빼앗기고 있다


지난달 19일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리프트 추락사고로 또 한 명의 장애인이 목숨을 잃었다. 발산역 참사는 지난해 오이도역 수직 리프트 추락사에 이어 두 번째 죽음이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들이 월드컵 개막식장을 찾았으나 무장한 전투경찰에 에워싸여 개막식 출입은커녕 경기장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월드컵 경기장 10개를 새로 건설하기 위해 18억 7천만 달러를 투입했지만, 장애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지하철 역에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는 요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점상들은 국제경기 유치가 두렵다. 이번 월드컵에도 어김없이 “외국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집중단속의 표적이 되고 있다.
개막식이 열리던 날, 도봉구 창동에서는 500명이 넘는 용역반이 출동해 창동 일대의 노점상을 말그대로 ‘싹쓸이’해버렸다.
경찰은 월드컵 기간을 노점상 집중 단속 기간으로 삼고, 하룻밤 사이에 포장마차를 부수고 포장마차 자리에 화단을 세우거나 ‘노점상 금지’ 푯말을 박아두기도 한다. 노점상들은 월드컵에 초청대상이 아니라 ‘청소대상’이 되어버렸다.
‘꿈의 구연’ 월드컵,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성공 월드컵 개최를 위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접고 절망만을 강요받는 노동자 민중의 삶이 놓여 있다.

4강 진출 환호 속에 자본의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돼


월드컵 4강 진출로 가장 주가가 높아진 외국인은 누가 뭐래도 히딩크 감독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성공한 한국인은? 아마도 정몽준 한국축구협회 회장일 것이다.
최근 실시된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 회장은 월드컵 붐과 4강 진출로 인해 오는 연말 대선에서 ‘이회장, 노무현, 정몽준’으로 이어지는 3자 구도를 형성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입법 정책개발을 보좌할 수 있는 참신한 인재를 찾습니다”라는 정책보좌 인턴을 구하는 광고가 뜨고 있다. 모집분야 또한 정치 경제 농업 통일 등 광범위한 것이어서 이미 대권 행보에 나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전국민에게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 개최의 주역으로 포장되어 있는 정 회장이지만, 그는 노동탄압의 대명사격인 현대중공업의 실질 소유주이기도 하다. 정당한 노조활동조차 관리자와 경비들을 동원해 탄압하는 현대중공업은 매년 산업재해와 사망사고로 ‘죽음의 조선소’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월드컵 전야제 날인 5월 30일 건조2부 조합원이 압착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6월 12일 또다시 사고로 두명의 조합원이 사망하는 등 월드컵기간 보름 사이에만 3명의 조합원이 현대중공업에서 죽어갔다.
그뿐이 아니다. 5월 한달 동안 중전기 사업부에서 3명의 조합원이 뇌출혈과 협심증으로 쓰러져 이중 2명이 사망하는 등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망사건이 최근 다수 발생하고 있다.
현대그룹 노동자들은 정 회장의 아버지인 고 정주영 회장이 92년 대선에 출마하며 현대그룹 계열사 임직원을 대거 선거운동에 동원시켰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숨막히는 현장통제에 신음하며 또다시 대권 회오리바람에 휩싸일까 숨죽여야 하는 것이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탈리아의 현직 총리 베를루스코니 또한 언론대재벌 출신의 이탈리아 제일의 갑부에다 세계적인 축구 명문 AC 밀란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미국의 한 언론은 “축구는 그에게 승리자의 이미지를 빚어주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축구열풍은 열 개가 넘는 범죄혐의를 받아 아직까지 재판을 받고 있는 그를 총리의 자리에 올려주었지만, 자본의 충실한 대표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 이민 제한, 노동자 해고 자유화 등의 악법을 도입해 이탈리아에서는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월드컵 환호 속에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되풀이할 것인가.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진출을 축하 못할 이유는 없지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눈까지 빼앗겨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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