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
가난함에 대항하는 내 무기는 '솔직함'이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았는데도, 어렸을 때는 부자가 아닌 것이 부끄러웠다. 부자 친구들과 놀아야 할 때, 나는 '없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표현했다. 부자가 아닌 것은 나의 '잘못'이었다. 아직도 나는 친구들을 집에 놀러오지 못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꿈을 꾼다. 나는 지금 가난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이 없다'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그 때마다 나는 '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치료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밥을 사달라고 처음으로 친구에게 부탁해야 했을 때는 굉장히 힘들었다.
돈이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돈이 정말로 없을 때는 그런 말이 잘 안 나온다.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거절당하면 어쩔 것인가? 차라리 처음부터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이 백 번 낫지 않을까? 구걸은 영혼에 좋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나를 부디 먹여달라고 타인에게 내 양식을 의탁했을 때, 그 사람이 말없이도 내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을 때, 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호의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느꼈을 때, 그걸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 마음이 작고 부끄럽고 초라해졌을 때. (0920)
2. 귤
가을의 축복은 귤이라고 생각한다. 귤은, 무엇보다도 싸고, 맛있고, 무진장한 비타민 C의 보고(寶庫)이며, 씻거나 칼로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자취생을 위한 최상의 디자인! 가을이 왔는데도, 가을답지 않게 하늘이 뿌연 날들이 이어지더니, 하루 종일 집에 있기로 한 오늘은,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다르게, 잘 다려놓은 와이셔츠처럼 햇살이 산뜻했다. 나는, 빈 배낭을 메고 시장에 가서, 귤 20개를 2000원에 사고, 사과 5개를 1500원에 사고(사과 아저씨는 나쁘다, 20개도 넘게 묶어 5천원에 파는 주먹만한 사과들을, 1500원에 6개를 팔 수 없다고 끝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과는, 내가 자기 전에 꿈꾸던 '홍옥'의 맛이어서 기뻤다, 나는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부사'가 사과 시장을 주도하게 된 것을 개탄하는 편이다, 사과는 뭐니뭐니해도 '홍옥'이다!), 쌀 4kg을 9000원에 사고, 참치캔 2개를 2000원에 사서는, 지고 안고 집에 돌아왔다. 내 육체와 영혼의 탄수화물과 비타민과 섬유질과 단백질들을 사가지고 돌아올 때는 뭔가 굉장한 일을 해냈다는 기분으로 으쓱해진다. (1101)
3. 냄새
마늘을 다지다가 깨달았다. 엄마한테서 자주 희미한 냄새가 나서, 나는 그게 엄마 냄새라고 생각했었는데, 나한테서도 이제 엄마 냄새가 나는구나. 끼니마다 마늘과 양파와 파를 썰면서, 나도 엄마 냄새를 가지게 되었구나. (1003)
4. 눈물
우울한 날이 계속 되다가, 무슨 영화를 보고 엉엉 울어버린 이후로, 날마다 조금씩 운다. 요사이 내 마음은, 내가 사는 집의 오래 된 수도와 같아서 어디선가 조금씩 샌다. 틀림없이 배관이 잘못된 모양으로 뭔가 썩어가는 나쁜 냄새도 올라온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혼자 살기 때문에, 눈물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마음껏 슬픔에 젖을 수 없다. 쓸데없이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 없는 힘까지 다 동원해 미소를 짓는 것은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내가 우울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다치게 하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기 컨트롤 부족의 증거라고 여긴 적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통제란, 슬퍼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슬퍼하되,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지형도에서 자기 감정을 적절한 범위 안에 제한시킬 수 있는 능력인 것이 아닐까. (1023)
5. 다림질
바쁠 때 꼭 다림질을 해야 하는 옷이 입고 싶고, 그래서 다림질을 해 입으면, 꼭 그날 비가 온다. 그래서 나는 다림질이 필요한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친구가 오늘 좋은 것을 알려주었다. 쌀쌀한 날 집에 돌아와서, 아, 방이 춥구나, 라고 생각할 때, 그럴 때 다림질을 하면 아주 따뜻해진다고. (1031)
9. 보일러
추운 겨울 아침, 일어나기 싫을 때, 그때 듣는 보일러 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내가 자는 동안 밤새도록 자기 혼자 돌아갔던 보일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바닥을 울리는, 그 저음을 듣고 있으면, 거대한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게도 아침을 주려고.
10. 쓰레기
쓰레기는 모여도 걱정, 안 모여도 걱정이다.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도, 오래된 쓰레기를 집에 쌓아두고 있으면 영 찜찜하다. 오늘 과일들을 한 짐 사서 지고 올 때, 그것을 먹는 기쁨에 곧바로 이어, 이걸 다 먹고 나면 음식물 쓰레기 한 봉투 채워 버리겠지, 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왜 나는 쓰레기와 함께 살기를 힘들어 할까. 결국은 내가 그걸 다 만들고 있으면서. 그것들도 한 때는 쓰레기가 아니었는데. (1101)
11. 일기
나는 오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스레인지 옆의 기름때를 벗겨내고, 변기 청소를 했다고, 어렵게 어렵게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지난 계절의 옷들을 접어넣고, 이불을 걷어 햇볕에 널었다고, 나날의 내 일기는 기록하고 있다. 나는, 날마다 계속되는 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무슨 새롭고 중요한 모험이라도 되는 듯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하찮아 보이는 일들이야말로 내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헤르메스의 기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나 자신과 내 주변에 대한 의무이다. 내가 몸이 아프고 피곤하고 우울하다는 이유로 이 일들을 게을리하기 시작하면, 내 주변의 것들이 모두 병들고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내가 무릎이 아파서 청소를 못하는 동안 참혹한 전장이 되어버렸던 집안을 보는 심정이란!).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주변의 것들을 돌보는 동안 나는 자주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내가 살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나를 '살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때가 많았다.
나날의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은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고, 거기에는 도달할 수 있는 완벽성이 없다. 목적성이 있지만 그것은 명확하지 않고 기능을 하고 있지만 정의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적고 싶어한다. 이것들을 의미있게 하기 위해, 그냥 흘러가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것들을 '살리기' 위해. (1109)
12. 전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묻곤 한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부모님 집에, 자주 전화기를 두고 온다. 내가 사는 곳에는 따로 전화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문이 꼭 닫힌 조그만 상자같은 집에 누구에게 연락할 방도도 없이 갇혀 있구나, 라는 기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전화기 없이 지내는 몇 주일 동안 나는 '정말로 조용'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전화기를 갖고 있을 때, 전화를 의식하진 않더라도, 언제라도 전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무의식이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마음을 조용'하게 해줄 수 없다. 없으면 생활이 단순해진다. '정말로 중요'한 연락은 사실 그리 많지 않고,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오게 된다. (1024)
13. 친구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내 '사회적 안전망'은 친구들이다. 든든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밖에 나갔을 때 안정감 있어보이는 것처럼 나는 친구들을 빽으로 가지고 있어서 무서운 걸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아무 것도 없이 집을 나와버렸던 것이나 불투명한 전망을 앞에 두고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다 친구들 덕택이다. 금전과 애정과 여러 끼니들, 이념적 연대감과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는 친구들.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리 다정하고 언제든지 나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받을 수 없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이 자식에게 더 중요한 과제가 되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로부터 새로운 가족을 발견한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처럼, 애정과 증오를 켜켜이 쌓아가고, 서로의 인생에 개입하여 영향을 주고, 서로에게서 할 일을 찾고 쉴 자리를 찾는다. 별 일이 없으면 아주 긴 시간동안 함께 있으리라는 것이 무엇보다 가족과 닮은 점이다. 우리가 좌절하고 성공하고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동안 한곁같이 지켜봐주는 눈, 그래서 우리가 우리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바로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아닌가. (1109)
14. 트레펑
얼마 동안 세면기를 쓰지 않기로 했었다. 어차피 이빨 닦을 때만 쓰고 있었지만, 이빨 닦는 것도 그냥 바닥에 있는 샤워기에서 물을 받아 하거나 씽크대에서 하기로 했다. 세면기의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래, 트레펑!' 트레펑에 써진 대로 그걸 0.5l가량 붓고(그만큼이었는지 뭔지 알게 뭐냐, 어쨌든 적당히 붓고), 30분 지나서 물을 부으라는 걸 잊어먹고, 거기서 그냥 이빨을 닦아 버렸더니, 정말 잘 내려갔다. 이런 일을 해낸 내 자신이 조금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사실, 이건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 걸. 나는 트레펑이 뭔지, 어떨 때 쓰는 지도 알고 있고, 그게 우리 집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걸 쓸 생각을 못 했다. 살림이란 게 그냥 이런 거 같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 속으로는 알아도 막상 안 해보면 모르는 거. 그래도 누가 와서 알려주기 전에,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조금 자랑스럽다. (0530)
15. 흰 빨래, 검은 빨래
흰 빨래와 검은 빨래는 나눠서 하는 것이라고 제일 처음 알려준 것은 딸기이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딸기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이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것을 실천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티도 안 내고 있었을까? 사실은 모두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빨래라면, 그냥 다 넣고 세탁기에 돌리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도 흰 빨래와 색깔 있는 빨래를 나눠했던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속옷과 수건을 삶으라는 말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있는 제일 큰 냄비에 일주일에 두 번씩 속옷과 수건을 삶았고(브레지어는 삶으면 안된다는 것도 엄마한테 전화로 물어봐서 알았다), 그게 너무 자랑스러워서 여기저기 말을 하고 다니던 중이었다, 흰 빨래와 검은 빨래는 나눠서 하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흰 빨래와 검은 빨래를 나눠서 해 보고 나서,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것이 흰 빨래라기 보다는 검은 빨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가 한꺼번에 하게 되면 흰 빨래는 괜찮은데 검은 빨래에는 하얀 먼지가 붙은 것이 흉하게 눈에 띈다. 혼자 살면서 흰 빨래, 검은 빨래를 나눠서 모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름에는 흰 빨래가 현저히 우세해서 검은 빨래를 모으려면 몇 주가 걸린 적도 있다. 겨울에는 검은 빨래가 좀 분발을 해서 다행스럽다. 예전에는 옷을 아무렇게나 마음내키는 대로 입었지만, 지금은 흰 옷과 검은 옷을 분배하는데에 주의를 기울인다. 심지어 여름엔 검은 옷을 더 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딸기의 그 얘기가 인상깊었던 것은, '흰 빨래, 검은 빨래'라는 말이 예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라는 말과 어감이 비슷하고 '흰 아가씨, 검은 아가씨' 하고도 비슷하고 그리고 왠지 빨래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빨래에는 흰 빨래와 검은 빨래가 있는데, 둘 다 그 자체로 나쁜 것들은 아니지만, 둘을 같이 하게 되면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웬만하면 떼어 놓는 것이 좋다... '
딸기와 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벌써 지난 봄이다. 혼자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모든 사람들과 살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살림을 하면 인생관이 어떻게 바뀐다는 둥의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뭐를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지, 뭐를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말이다. 살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하나하나 듣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물론 엄마한테 배우는 것이 가장 많지만 엄마같이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지식, 정답도 없고 완벽한 목록도 없는 지식, 실험을 하듯 경험을 해 보아야 결국 자기 것이 되는 생활의 지혜,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이 그 때는 참 좋았다. (1109)
6. 라면
지난 7개월 동안 라면을 세 번인가 끓여먹었다. 집을 나오면서 각오가 제법 비장했던 거다. 엄마, 아빠 없이도 '제대로' 살겠다고. 그런데 왜 라면을 끓여먹기 시작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내 비상식량은, 라면이 아니라, '소면'이다. 밥을 해먹기 싫을 때, 소면은 아주 유용하다. 보통은 멸치와 다시다로 국물을 내어 잔치 국수를 만들어 먹지만, 이도 저도 귀찮으면 김치찌게든지 된장국이든지 호박국이든지 뭐든 남아 있는 것을 한참 끓인 다음 소면을 넣어 먹으면 된다. 별미이다. 국 같은 게 안 남아 있으면 야채나 고기 같은 걸 쓸어모아 카레 가루나 김치, 고추장 등으로 양념을 하고, 잠깐 끓여낸 소면을 같이 볶아 먹어도 맛있다. 이건 그냥 내 취향인데, 나는 소면을 끓인 다음 찬물에 씻는 것보다 그냥 먹는 게 더 좋다. 질감과 온도의 문제이겠지만,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단순히 덜 귀찮기 때문에 그것이 더 맛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인지도.
그 다음으로 '자취생의 벗'이라고 생각하는 음식은, 참치캔이다. 맛있고, 조리가 간편하니까. 나는 참치 통조림을 발명한 사람을 전구를 발명한 사람 다음으로 존경한다. 나는 모든 자취생이 이런 의견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친구에게 물었더니, '자취생의 벗'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미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관이 용이하고,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리법도 다양해서, 간단하게 물에 불려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수도 있고, 국을 끓여먹을 수도 있고, 초무침을 할 수도 있고, 하여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당장 '미역'을 구해놓았다. 과연, 여러가지를 간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왠지 자꾸 먹게 되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미역은 주로 냉동실에 보관하기 때문인 거 같다. 일단 냉동실에 들어간 음식은 그것이 무엇이건 자꾸만 잊어먹고 꺼내지 않게 된다. (0921)
7. 무릎
나는 집에서 일한다.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것은, 아침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니까 좋긴 하지만, 여러가지 다른 불편함이 많다. 무엇보다 기분 전환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업 시간과 휴식 시간, 재충전 시간이 잘 분리가 안 되어, 낮에 하던 생각을 밤까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잠을 못 잔다. 비슷비슷한 나날이 이어지다 보면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잘 구별도 안 간다.
그래서 나는 생활의 리듬을 주기 위해 조깅을 시작했다. 남들이 퇴근을 하는 시간에 조깅을 하여 나도 퇴근 비슷한 것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아줌마들이 참 많은 모양으로, 내가 뛰는 학교 운동장에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퇴근한 아줌마들로 북적북적했다.
그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먹고, 무엇보다 뛰는 게 신이 났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뛰는 것도 잘 멈출 수가 없었고, 그래서 뛰기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 되어(신기록을 세운지 며칠 안 되어), 무릎이 맛이 갔다. 무릎은 거의 한달동안 낫지 않고 있는데(뛴 날보다 더 아플 셈인가 보다), 이것 때문에 여러가지 곤란을 겪게 되었다. 저녁 퇴근을 못 하는 것이나, 횡단 보도 빨간불이 깜빡거려도 뛸 수 없는 것이나, 지하철 계단을 몇번씩이나 쉬면서 올라다녀야 하는 등의 바깥 일들도 그렇지만, 집에 있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무릎이 아프기 전까지는 무릎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어디 부딪힐 때 빼고는), 주부에게는 무릎이란 아주 필수적인 신체기관이었던 것이다. 무릎이 없다면, 어떤 자세로 걸레질을 할 것이며, 손빨래를 할 때 어떻게 쭈그려 앉을 것이며, 설겆이를 할 때 무엇으로 씽크대 앞에 몸을 지탱할 것인가? 쓰레기를 버리거나 널려 있는 물건들을 치우거나 이불을 정리하거나 기억도 안 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기 위해 주부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무릎으로 지탱하여 온몸을 일으킨다. (1029)
8. 물
나는 살림을 시작한 이후로, 일찌기 헬렌 켈러가 그러했던 것처럼, 놀라움 속에 '물'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물로 시작해서 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물로 쌀을 씻어 물을 부어 밥을 하고 물로 국을 끓이고 물로 그릇을 씻고 물로 세수를 하고 물로 변을 내리고 물로 청소를 하고 물로 걸레를 빨고...물로...물로...물로... 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돌아가고 흘러가게 하고 있었다. 내 작은 한 몸을 건사하기 위해 쓰는 엄청난 물의 양을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물이 거의 성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해서, 물을 먹고 난 뒤 컵을 물로 씻는 것 까지 죄스러웠다. 내가 물을 먹은 하찮은 행위가 컵을 씻는 만큼의 순결한 물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사온 첫달에 수도세가 12만원이 나왔다! 변기가 새는 것 같았다. 임시방편으로 변기를 고치자 수도세는 7만원이 나왔다. 새는 곳을 막은 것이 5만원 어치였다. 샤워기를 손보고, 변기를 바꾸고, 수도 새는 곳을 발견하여 주인집과 긴 실랑이를 벌여 공사를 마치기까지의 4달 동안, 나는 물을 아끼는 것의 전문가가 되었다.
나는 물을 한번 쓰고 버리는 경우가 없도록 주의했다. 세수를 한 물로, 발을 씻고, 발을 씻은 물로 걸레를 빤다. 세탁기에서 나온 물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여기저기 허드렛물을 모아 변기를 채운다(이건 변기가 고장난 기간 동안만 그랬다)... 만약 예전의 내가, 남의 집에 가서 내가 한 것처럼 물을 아끼는 걸 봤다면, 무서운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 되겠다,고 경계했을 정도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물이 문제였다. 올 봄의 긴 가뭄 통에 우리 집에서 흘러나갔을, 우리 집보다 더 클 물의 양을 생각하면(고치기 직전 나왔던 수도세는 33만원이었다, 33만원 어치가 얼마나 될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잠이 안 왔다. 내 베개 밑으로 물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이번 달 수도세 고지서를 기다리는 동안 성적표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만약 또 어디선가 물이 새고 있다면, 당장 방을 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6350원이라는 고지서를 받았을 때, 나는 그걸 크게 확대해서 벽에 걸어놓고 싶었다. 기뻐서 엄마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는 아직도 물이 금같다. 내가 물을 아끼는 것은, 미학적이고 종교적이고 이념적이기도 한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물은 아름답고 신비롭고 물을 낭비하는 것은 죄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나는 환경친화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건 좀 너무 나가는 것 같고, 그냥 그건 삶에 대한 태도, 혹은 그에 대한 주의력과 관계 있는 거 같다. 물을 함부로 쓰는 사람을 보면, 우리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하찮은 것들, 안 보이는 것들,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그 사람이 얼마나 둔감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1102)
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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