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담
[참조 : 글쓴이의 특징]
1. 서울 중류 계급 20대 여성
2. 인문학도
3. 예쁠 것 없음
4. 게으름
5. 상식적으로 됨됨이를 평가받기 위한 유형, 무형적 성과가 없음(4번의 보충1)
6. 아직 空想중(4번의 보충2)
97년 여름 학생 식당에서 한 친구와 일품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멍한 상태에서 정리되지 않은 말을 지껄여 친구들을 당황하게 하곤 했는데
그 날의 말 또한 울적하기 이를 때 없었다.
"계속 이렇게 먹고살겠지...?"
친구는 이 말을 반사적으로 받아 쳐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절대로 그럴 리 없어. 나는 이딴 거 말고 잘 해 먹고 살 꺼야. 왜 그런 생각을 해?"
대학교 3학년 당시 나는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었다. 집에서 나가 살고 싶다는 욕망은 아주 오랜것이었으며 가장 큰 이유는 가족 관계, 방구석에 널린 잡동사니들, 교통 체증으로 소모되는 시간들을 온전하게 하나를 위해 활용하고 싶어서였다. 하나를 위해? 물론, 대강 학업이라고 하자. 책 읽고 글쓰고수업 챙기고 하는 등등.
자취방에는 변변한 식기 하나 없었고, 세 끼니 모두 학교 식당 혹은 밖에서 해결했다. 방 청소는 대게먼지가 쌓이면 휴지로 닦아 버리는 정도. 생수 사다 놓고, 세탁기로 빨래하고 너는 일만 하면 사는 데 지장없었고 실은 울적할 때 슬쩍 버스 타고 집에 가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 때 만큼 신나게 공부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여유 시간도 늘고 그래서 잠도 알맞게 잘 수 있고 아침수업도 감히 신청하고.. 건강도 기분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 식당에서 식사할 때 느끼는울적함만 빼면 평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고 그 때는 생각했다. 뭔가가 계속 쌓이는 느낌이 좋아서.
누구는 내공이라고 하지. 내공을 쌓는데 그저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 특히 TV 연속극 같은 가족 생활은 독약인 것이다. 출가하는 사람들처럼, 학교 근처에서 이렇게 비가정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속되지않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 이렇게 멋진 인생 설계를 깔고 있는 결의가 그 일시적인 궁상스런 감정 땜에 손상당했다.(마치 푸념처럼!) 그리고 공교롭게도 상대는 '보통' 사람을 지향하는 친구였다. 그녀는 현재우리 패거리 중 가장 먼저 결혼했고, 그 커플은 각종 행사마다 아이들을 불러 산해진미를 제공하는 관계로 파티부부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나의 자취는 그 해 겨울 부모님의 권유로 마감되었다. 생활비조차 스스로 조달하지 못한 그 생활은 한 때의 객기, 헤프닝으로 끝이 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자취 생활이 좋았던 것은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과 제멋대로의 생활에 부여된 그 1년 남짓이라는 시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벌고, 벌이에 맞게 생활이 복잡해 질 경우, 그래도 삶의 조건들을 유지시켜 주는 가족들이 벌여놓는 한 때의 사건과 산만한분위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혼란과 난관이 다가올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서구 중세 수도승도 아닌, 도시 거주 중류층 자제인 내가 무기한 무노동, 무살림 체제를 갖는 것은 기만적인 구닥다리 지식인의 호사라는 사실 이외엔 아무런 폼도 명분도 없다. 신분도 종교도 뒷받침해주지 않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어림없는 소리다.. 이것이 현재의 결론이다.
게다가 신분이든, 종교든 언제 나 같은 처자에게 그런 터전을 제공한 일은 이 땅의 역사에 없는 일이다.
※ 이야기
주인공은 글쓴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 젊은 여성이다.
그녀의 고민 거리는 자기 이상과 맞지 않게 자질구레한 현실이다.
거기에는 맞서 싸울만한 격하고 장대한 분위기도 없고 쟁취할 수 있는 멋진 미래도 없다.
그저 먹고 자고 사는 일이 다반사인 삶의 흩어지는 조건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녀야 할 책무가 숙명처럼주어진다.
연상 1.
1920년
근대 지식인 남편과 농촌 노동자 아내
남편은 유학을 갖다와 '까페 프란스'라는 시로 문명을 떨치고
예쁠 것도 없는 아내는 사철 발 벗고 고향을 지킨다.
사람마다 성장기에 맘속에 품고 다듬고, 어쩌면 결국 버리게 되는 이야기나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위인들의영광된 인생 기록, 나무랄 데 없는 매력적인 사촌의 멋진 근황, 격정적인 백일몽 로맨스 등등.
이 아가씨에게도 반복적으로 상기되는 맘의 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이것은 언제나 분노의 감정을불러 일으켰다. 물론, 공포도 동반되어 있었다.
'언제 내가 그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 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현실에서 허다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기도 했다. 나이 좀 있는 한국인들이 즐겨듣고 부른다는 한 노래 가사에 그 정수가 묘사되어 있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정지용, "향수" 중)
그가 감상에 젖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것
아무렇지도 않은 그녀의 사철 고된 노동
예쁠 것 없는 그녀의 이삭줍기
줍기와 예쁠 것 없기
그것에 무심하기
남편의 향수는 이런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노동자 아내는 향수에 젖은 남편의 시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한다.
남편은 오늘날까지 비평가 사이에 현대 시의 선구자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아직 충분히 근대 물이 들이 않은 우리 언어를 시를 통해 다듬어 놓는다.
하지만, 그는 이 시속에서 세련된 취향과 재능을 잠시 뒤로하고, 질화로니 황소, 실개천 등 아직 변하지않았고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에 대한 질퍽한 감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것들에 생계를 위한 노동의 굴레에 갇힌 아내의 일상을 포함시킨다.
아내의 생계를 위한 노동의 굴레는 몇 십 년이 지난 아직도 존재한다.
그녀의 공포는 바로 이러한 초상과 다를 바 없는 위치를 부여받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문제는 그녀의 소위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연상 2
지식인 Vs. 여자
그녀는 '산다는 것'에 붙는 조건들에 대해 초연하고 싶으며 그녀가 원하는 단 하나에 집중하고 그것을 영원토록 향유할 수 있는 삶을 원한다. 그녀가 책을 통해 알기로는 이미 많은 지성들이 그렇게 살아 왔다.'나는 무엇이고, 세계는 무엇인가?' 유년을 지나면서 갖게 된 이 한가지 화두를 풀기에도 인생은 모자란다.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저 벌고 먹고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지 모를 일이지만 한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이 문제에 대한 무수한 저작을 남겼으며 그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빠듯하다.
그러나 여자란 명칭을 부여받은 순간 그녀는 시대에 따라 그 모양새는 변했어도 여전히 사철 발벗고 허리굽힌 아내들의 자세를 갖도록 종용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다양한 가전 제품으로 가득한 도시의 작고균일화된 아파트에서조차 하루의 먼지와 먼지 묻은 옷가지 등등은 대게 그녀들이 관리해야 할 몫이다.
게다가 언제 탈이 날지 모를 아기라도 있음 그리 호락호락할 리 없다. 여성들은 편이를 극대화하는 단단하고 다소 거칠기도 한 문명의 틈새를 특유의 타인에 대한 부드럽고 섬세한 배려들로 채우도록 기대된다. 그러나 그 틈새는 결코 완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결국 그녀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고로 밀도를 높인 시간의 흔적들, 그것이 사회 속에서 매듭지어지는 가치들, 이를테면 교양 수준을 뛰어 넘는 기념비적인 공적, 공연, 출판 등등은 그녀의 자리에서 어림도 없다.
실제로 휴일, 방에서 뒹굴며 보내는 가족들 틈에서도 어머니의 노동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힘든 어머니의 보조는 어차피 그녀처럼 살게 될 딸내미들 몫이다. 딸은 가족 안에서 어머니의 1순위 예비역이다. '너도 언젠가는...' 이란 단서를 때때로 상기시키는 가족들. 그 속에서 그녀는 어느 순간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살게 될 지도 모를 일이고,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원치 않는 일들이 모여 어머니에게 떨어진다. 어머니는 알아채지 못하게 그 일들을 해내신다. 게다가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냥 고마운 맘을 가지면 된다. 때 되면 보양해 드리면 되는 것이다. 하긴 그건 오빠 몫이지. 이렇다 보니 그녀는 불합리를 감당할 힘도 맞설 의욕도 없다. 그냥 아빠와 오빠에 편승하여 생활하면 내 겉잡을 수 없는 욕망을 실현시킬 확실한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편승이 가능한 것은 어머니가 되는 것 이외의 선택 여지를 가져 본 적 없었던, 그래서 다른 욕망들을 포기해야 했던 한 맺힌 기억을 지닌 어머니 덕분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학교 공부라고 하면 딸자식에게도 이런 책임을 면제해 주기 때문이다.
학교는 어머니들에게도 참여가 허락되었던 몇 안 되는 사회 집단의 하나였다. 학창 시절 당시 정숙함,부지런함, 어느 정도의 생활비는 벌 수 있는 능력 등등을 의미하는 여교사-교수의 이미지는 어머니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고, 고등 교육에서 배제되어 온 여자들에게 있어서 학력은 그 가정의 현대화, 부유함의정도, 사회 속의 자기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척도였다. 어머니들이 그녀의 딸들이 다른직업을 갖기보다도 학교에 남는 것에 대해 유난히 관대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고 그녀는 추정해 본다.
하여튼 어머니 덕에 그녀는 학창 시절 아버지처럼 오빠처럼 게으르면서도 짐짓 깔끔 떨며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또한 소위 전 국민 평준화 교육 체제에 적응하는 데는 도가 텄다. 극도로 단순화된 방법론이 있고 성과에 따라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을 해 주는 그런 일에는 남다른 소질을 보인 것이다. 좋은학교에 들어간 것. 시험과 같은 경쟁에서 절대지지 않는 것. 면제 사유로 충분하다.
면제받은 자의 평안함 속에서 그녀는 꿈을 꾼다. 그 꿈은 다음과 같은 진술과 함께 원동력을 얻는다. 이 진술들 사이의 모순에 대해 그녀의 맹목적인 욕망은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1. 어머니란 천성을 만들고 유지시켜 주는 이 체제는 존속시켜야 할 행복의 근본이다.
2. 이러한 행복의 발판을 소유한 그녀의 목표는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나의 경우 일하는 사람이 아닌 어머니가 되는 것은 일종의 낙오다.
그녀에게 어머니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꿈을 언제나 인식하고 자기를 각성시키는 매우 확실하고 구체적인방법이 되었다.
연상 3.
2000년
지식인 여성=미성숙 : 지독한 보통 사람들의 신화
평생 물 한 번 안 묻힌 과년한 딸은 언제까지나 성인 자격을 유예한 학생이고자 하고
어머니는 명석한 자식이 번듯한 교수 직함이라도 얻기를 기대하며 얼마간 열심히 쓸고 닦는다.
졸업할 즈음 그녀는 어머니가 열광하던 한 지긋지긋한 드라마로 인해 완전히 스타일을 구긴다.
<보고 또 보고>
'헛똑똑이' 여자 인물이야 드라마에서 세고 세다. 그나마 헛것이라도 똑똑한 척 하는 여자들이 나온다는것이 일종의 진보를 의미하기도 하는 기가 찬 TV 드라마의 실상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악의에 차, 소위 공부하는 여성 이미지를 조롱한다.
명문대 국문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금주'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헌신적인 어머니의 보필을 받으며 교수 겸작가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그녀의 화려한 꿈과 생활에도 그림자가 있으니, 이것은 '은주'란 자매를 통해드러난다.
은주는 없는 집안 살림에 '공주'처럼 자라는 언니의 후광에 가려 살림을 돕고 돈을 벌며 산다. 그러나 좋은 신랑감을 만나 악착 같이 신부 수업을 받은 그녀는 급기야 금주의 시댁 형님이 되어 그녀의 생활을 간섭하기 시작한다. 남편과의 계급 격차를 딛고 능란한 살림 솜씨를 보여주면서 시댁에 적응하는 은주는 금주가 공부하는 여성의 위치에서 갖는 허점들을 노골적으로 꼬집는다. 금주의 내면 세계, 학업이 갖는 가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 드라마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인물 은주의 눈을 통해 비친 금주는 게으른-이기주의-미숙아 그 자체이다.
그녀는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뜨끔한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모욕당하거나 오해받는 느낌. 이러한 느낌의 원인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가 금주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금주와 자신이 다른 점을 열심히 변호하듯 찾아본다. 헌데 찾아낸 것이란 패션 스타일, 외모뿐이다. 금주의, 화사하여 세련미가 떨어지는 공주 스타일의 외양과 미모를 제외하면 그녀는 집에서 소위 정글 같은사회 속에서 전형적인 금주다. 금주의 학구적인 열정이나 가치관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런 것은 현실생활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이 드라마를 너무나 즐겁게 보고 계신다....
세상의 은주들은 금주들을 언제든지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있다. 은주들은 살림을 하고 살림에 저해가 되지않는 한도 내에서 돈까지 버는 한, 일상 생활의 규범 안에서 금주를 비판할 정당성을 갖게 된다. 금주는 취약한 꿈꾸는 자에 불과하다.
그녀의 취약한 꿈은 철저하게 조롱당하고 그녀는 모욕을 느끼며 다른 곳을 본다.
연상 4.
자기만의 방
"...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
"은화를 지갑 안에 주루룩 넣으며 생각했지요. 그 시절의 쓰라림을 기억해보면 고정된 수입이 가져오는 엄청난 기질의 변화는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강제력으로도 나에게서 내 오백파운드를 빼앗아 갈 수는 없지요. 음식과 집과 옷은 이제 영원히 내 것이지요. 따라서 단지 노고와 노동뿐만아니라 증오와 신랄함도 그치게 됩니다. 나는 어떤 남자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를 해칠 수없으니까요. 나는 어떤 남자에게도 아첨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없으니까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그녀는 부르주아가 아니다. 이것은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비구니,노숙자처럼 살수도 없는 그릇이다. 비부르주아인 그녀가 집안에서 금주처럼 살려면 은주와 같은 사람에 기생해야 한다. 그녀의 기생은 은주들과 나누어야 할 혜택을 독점하고, 그들에게 삶의 그늘을 지운다.
그녀가 금주의 기만과 은주의 속물근성이라는 양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사실, 이 양극의 전형 사이에는 무수한 선택의 여지가 존재한다. 서로 섞일 수 없는 적대적 관계가 조성되는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관념 탓이다. 이러한 관념은 따지고 보면 그녀에게 덧씌워졌던 편견과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 연상 1, 2)
결국 어머니가 되든지 아버지와 오빠처럼 되든지 하는 양자 택일적인 위치만 주어지게 되는 가족 구도가 문제다.
어릴 적부터 보아 온 그녀 가정의 살림이란 다른 도시 중류층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어머니의 직무로 분담되어 있으나, 노동이란 단어가 걸맞지 않게 보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성과가 나날이 쌓여 가는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복리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것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 외에 아무도 그 곳을 살펴볼 준거나 시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대부분 그냥 신화로 뭉뚱그려 무조건적으로 이상적인-비현실적인가치를 부여한다. 요즈음 이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회의 자본-노동 생산가치를 그대로 따다가 대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의 성격과 가치를 형성하는 방식은 엄연히 다르다.
이런 가운데 집안에서 어머니의 영역은 편재해 있다. 그 곳이 내 방이든 오빠 방이든, 천장 모서리든,마당이든 집안의 곳곳은 어머니께는 출입 자유 구역이자 동시에 산적한 일거리로 가득한 부담스러운공간이다. 동시에 다른 가족에게는 가정 안에서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있을 어떠한 공간도 없다. 어머니는구석의 독재자다...
그녀는 가정 안에서의 일거수 일투족에 어머니의 가치가 묻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을 의식하고부터그녀는 가정안 소소한 모든 것에 부담을 느낀다. 특히,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일과는 그녀 미래를 예고한다. 더구나 "나는 달라"라는 의식이 기만인 것을 요즘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고 졸업반이 되어 그녀에게 더 이상 받아 올 성적표가 없어지자, 그녀는 드디어 부모님으로부터, 일 하는 어머니가되든지, 그냥 어머니가 되든지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 것이다.
딸의 입장이란 것은 가족 안에서 지극히 미미한 것이다. 보호받고 이에 감사하며 어른들을 따라야 하는자리에서 "나는 다르다" 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위치에서 어머니가 전담하는 방식의 살림이 갖고있는 문제들을 앞장 서서 개선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50이 넘게 그러한 생활 패턴을 지속해 온 부모님들께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말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녀는 결국 집을 나오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여긴다. 규율과 관습의 이름으로 그녀에게 부과될 것이 자명한 어머니 역할, 곧 살림을 기꺼이 분담하겠다는 사람들로 구성된 정말 이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받는 취약한 입장으로 태어나 버렸고 또한 이십 여 년 살면서 타성에 젖어 있으므로 이 공간을 계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환경을 직접 꾸리는 것이 현실적으로가능하다.
홀로.
혼자만의 방을 갖는 것 그리고 그 방을 스스로 꾸리고 정제된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것이 그녀의 꿈이 실현되기 위한 진정한 구체적인 토대다.
※ 결론
지극히 간단하다.
살림과 돈...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산하는 가치를 스스로 생산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이에 매몰되지 않을 여유와 반성...
이상적인 성인의 모델
갈 길이 멀다.
묘루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