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옷감이 동이 났다는 소문이다. 평소 축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조차도 빨간색 티셔츠를 구입하고픈 충동을 느낀다고 하니, 영화배우 한석규의 말대로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고도 남을 듯 하다. 거리로 쏟아진 응원부대의 관심은 분명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펼쳐지고 있는 축구경기 그 자체에 모아졌다. 그러나 전 국민의 열광 이면에선 더욱 흥미로운 경기가 펼치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축구가 벌어다주는 ‘돈’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또 하나의 월드컵이다.
축구가 빠진 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의 창시자인 줄리메는 “축구야말로 계급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세계를 행복한 한 가족처럼 단합시켜 줄 것”이라 말했었다. 그러나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된 월드컵은 오히려 ‘돈과 권력’의 핵심을 쥔 FIFA를 정점으로 한 상업주의로 점철되어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국은 총 204개국. 189개국의 회원국을 가진 유엔보다 더 큰 집단이다. 더욱이 텔레비전 시청자 수는 전 종목 스포츠를 포괄하는 올림픽의 두 배로 상업성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FIFA의 재정담당 우루스 린시 씨는 지난 5월 임시총회에서 “FIFA의 재산은 현재 6억 1천만 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98년에 밝힌 1억 달러의 6배 규모. FIFA는 이번 월드컵에 98년 프랑스월드컵의 두 배인 5억 2400만 달러(약 6천 812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FIFA의 재정은 중계권료, 입장권 판매수입, 후원사의 후원금 순으로 충당된다. 이미 FIFA는 돈을 버는 일이라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기로 유명하다. 특히 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본선 진출국을 24개국에서 32개로 확대하면서 중계권료와 입장권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막대하게 늘어났다. 이번 대회에서 챙긴 중계권료는 약 2조 180억원. 프랑스 월드컵의 5.7배다. FIFA는 독일의 미디어 그룹인 KIRCH에 방송을 맡기며 중계권을 독점했다. 한국의 방송3사는 2006년 독일 대회 중계권료를 포함해 650여 억원을 지급했으며, 이는 지난 프랑스 월드컵의 40배에 달하는 액수다. 이렇게 모아진 돈은 FIFA에서 ‘신성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회장의 개인적 치부에 일조하며 FIFA를 부패와 스캔들의 거대공룡으로 키워가고 있다.
시청자도 선수도 광고의 노예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FIFA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니 차라리 중동사태 해결에 나섰던 때가 그리울 지경”이라는 말을 남겼다. 세계적인 초국적 기업들로 구성된 월드컵 후원업체들이 내놓은 후원금도 FIFA의 주요 돈줄이다. 이번 월드컵에 아디다스·코카콜라·필립스 등 16개 후원업체가 내놓은 후원금은 3억 5천 400만달러(약 4천 6백억원). 예산의 20%를 차지하는 규모다. 그러나 이 후원금의 대가는 짭짤하다. 월드컵은 초국적 기업의 광고판이다. 연인원 3백 50만명이 경기장을 찾고,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만도 6백억명에 이른다.
더구나 방송매체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그리고 선수와 구단, 대중매체, 광고주로 이어지는 스포츠 시스템은 더 이상 선수와 관객을 ‘축구를 위한 사람들’로 놔두지 않는다. 98년 프랑스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했던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선수가 ‘뛰어다니는 광고’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경기직전 발작을 일으며 출전이 어려웠던 그는 ‘나이키’와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기에 출전해야만 했고, 결국 아무런 기량도 발휘하지 못했다.
월드컵 열기는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광이었다. 그러나 거리의 관객들이 다른 한쪽의 월드컵을 거부하지 않는 한, 축구는 오히려 우리들의 삶을 메마르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전현정 / j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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