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초국적 기업간의 격돌

노동 착취로 월드컵 후원금 내는 기업들

60억 인구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대제전을 모토로 한 월드컵이 마지막 결승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이목이 결승골에 집중되고 있는 이 시점에도, 경기장 밖의 또 다른 월드컵에서는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수입을 환산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월드컵은 더욱 빠른 속도로 초국적 기업 간의 대격돌로 변질되고 있다. 때문에 월드컵의 껍질을 한 겹만 드러내면, 아시아 저개발 국가로 생산지를 이동하며 노동착취를 강화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되기 하루전인 지난 5월 30일. 홍콩에 본부를 둔 `아동노동반대 국제행동’(Global March against Child Labor)’ 등 국제NGO 단체들은 서울 숭실대학교 사회봉사관에서 아디다스측의 아동착취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2002년 월드컵의 공인구 ‘피버노바’의 제작사인 아디다스사는 인도·파키스탄 등의 나라에서 아동을 고용, 저임금으로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이들 어린이들이 하루종일 만드는 축구공은 3~4개. 이들이 받는 급여는 공 한 개당 100원~150]원으로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일당이 2천 원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특히 파키스탄에서는 전 세계에서 쓰이는 축구공의 60%가 생산되고 있다. 이 중 일부 지역은 이미 10년 전 15세 미만의 아동노동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는 있으나 개선의 여지는 없다. FIFA역시 “아동들이 만든 축구공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2002년 월드컵 16개 공식후원업체의 후원금은 월드컵 전체 예산의 20%라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디다스·코카콜라·맥도날드·필립스 등 초국적 기업들은 후원금의 대가로 독점적 광고권을 행사한다. 제3세계 국가들의 착취된 노동력이 월드컵 후원금으로 탈바꿈되어 전 인류의 축제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유연화된 자본의 노동착취 현장은 파키스탄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정부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일단 갖가지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실제로 이들의 노동력을 갖가지 방법으로 착취해 온 기업과 정부는 정작 월드컵에 돌입하자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을 자진등록하게 만들었다.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국민증까지 부여하겠다는 정부. 그러나 25만이 넘는, 주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턱없이 낮은 임금을 견뎌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5월 추방대기표에 다름아닌 자진신고 기간이 끝난 이상, 월드컵이 끝나는 대로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정부는 월드컵 기간 국민의 관심이 무뎌진 틈을 이용해 노동자에 대한 탄압까지 일삼고 있다. 한국의 월드컵 8강 진출이 결정된 다음날, 한국시크네틱스 여성 노조원 50여 명은 단식 열흘 째를 맞이해야 했다. 이들의 요구는 ‘출퇴근만 3시간씩 걸리는 안산공장이 아니라 애초 약속대로 집에서 가까운 파주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 그러나 실제 경영주인 영풍그룹은 사태 발생 1년이 다 되도록 파주공장을 노조로 물들일 수 없다는 태도로 버티고 있다. 경희·카톨릭의료원 등 보건의료노조 8개 병원의 한 달에 육박하는 장기파업 역시 월드컵의 열기 속에 갇혔다. 병원 경영진들은 현재 대화와 교섭으로 파업을 마무리하지 않고, 월드컵 국면을 악용해 노조의 장기파업을 부추기며, 이를 통해 노조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월드컵을 맞이한 자본주의는 노동력 착취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불사함을, 노동자의 투쟁을 누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전현정 / j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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