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에 경기장 짓고 ‘구속’으로 보상
‘179번’. 상암동에 남은 유일한 철거민 이동수(32) 씨의 현재 이름이다.
그는 집을 철거당하면서, 자유도, 이름도 뺏겼다. 이동수 씨가 살던 동네가 월드컵 경기장 부지로 선정되면서 투쟁을 한 지 2년이 넘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집은 ‘영구임대주택’이 아니라 ‘서울구치소‘였다. 그래서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접견 신청서를 쓰고,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겨우 ‘5분’ 동안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저소득층이 몰려 살던 상암동이 월드컵 주경기장 부지로 결정된 것은 98년. 주민들은 ‘상암동 철거민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개발지구내 세입자들에게 가수용시설과 임대주택 보장을 요구했지만, 서울시청은 가수용시설 부지가 없다는 통보만을 보내왔다. 다음 순서는 예정되어 있었다. 용역깡패들을 고용해 주민들을 마구 폭행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부수던 서울시는 결국 2000년 1월 25일, 전투경찰까지 투입해 그 일대를 ‘싹쓸이’했다. 결국 1000여 세대 사람들은 몇 푼 안되는 보상금을 받고 하나둘씩 쫓겨났다.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지속적인 투쟁을 벌인 이동수 씨. 2000년 6월에는 민주당사 기습 농성을 벌여 1년 6개월의 실형까지 살았다.
“주민들이 모두 집이 철거된 상태에서 강제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냥 굴복할 수 없었죠.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알리고 싶었고, 집은 철거당해도 사람은 철거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두 번의 복역 후 그가 달려간 곳은 서울 시청. 상암동 철거민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4개월이 넘게 노숙투쟁을 벌이던 4월 26일 새벽, 여느 때처럼 시청 앞에서 비닐과 침낭만을 깔고 잠을 청하던 이동수 씨 목에 칼을 들이밀며 ‘떠나라’고 협박하는 시청 직원에 놀라 잠을 깼다. 툭 하면 시청 직원들이 몰려와 “월드컵도 다가오니 어서 시청 앞을 떠나라”는 협박이 계속되던 즈음이었다. 결국 이 일로 이동수 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라는 죄명을 쓰고 구속되고 말았다. 식칼 위협을 항의하러 갔다 폭행죄를 뒤집어쓰고 만 것. 월드컵 개막을 한달 여 앞둔 시점, 세 번째 구속이었다.
“온갖 위협을 당하다 보니 이제는 무서운 것도 없어요. 오히려 기가 꺾이지 않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동수 씨도 구치소 안에서 TV로 월드컵 경기를 관람한다. “나 살던 집터에 경기장 지어놓고, 난 이런데 와 있으니 화가 안 난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다고 경기를 못 볼 것은 없죠. 다만 월드컵에만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국민들이 이런 이면을 제대로 알고 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예요”
정부는 월드컵 준비에만 11조원의 돈을 쏟아붓고, 상암동 경기장 주변에 대규모 꽃단지까지 조성하면서도, 경기장을 짓는다며 몰아낸 철거민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국철거민연합회는 이동수 씨의 뒤를 이어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 앞에 몰려드는 수십만의 인파 속에 이들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동수 씨의 안타까움은 여기에 있다.
장애인도 월드컵을 보고 싶다
월드컵 개막식이 열린 5월 3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는 다른 관람객들과 격리된 사람들이 있었다. 전투경찰에 에워쌓인 채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갇혀’ 있었던 이들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동권연대) 소속 회원들.
이날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50여명은 최근 장애인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로 사람이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지하철 5호선 발산역을 항의 방문한 뒤, 국내 장애인의 이동권 현실을 알리기 위해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찰의 저지에 맞서며 발산역에서 월드컵경기장 역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 그러나 경기장 문턱에서 가로막혔다. “국제 행사에 무슨 망신이냐”는 것. 이동권연대는 “외국 장애인이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국제적 망신이지 피켓 들고 시위하는 게 국제적 망신이냐”며 반박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원천봉쇄’ 되었다.
‘누구나 즐기는 축제’라지만 장애인들에게 월드컵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은 ‘돈 들여 고생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상암 경기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장에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은 리프트가 추락해 목숨을 잃은 사고가 두 번이나 잇달았고, 대중버스와 공항버스를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장애인은 경기장에 가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얘기. 이 뿐이 아니다. 어렵게 경기장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경사로가 급한데다 손잡이마저 없어 경기장 안까지 들어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장애인이동권연대는 강남 국제미디어센터 앞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월드컵 반대’ 1인 시위를 벌였다. 3일, 시위에 나선 김태현(35)씨는 “한국의 교통체계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며 “장애인들은 월드컵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는 날까지 이어가기로 한 1인 시위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월드컵 열풍 속에서 국민적 호응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450만에 달하지만, 이들이 외출 한 번 하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월드컵 경기장에 간다는 것 자체가 ‘욕심’을 부린 일이었을까. 이동권연대 한 회원은 말한다.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안방에서나 혼자 외쳐 불러볼 서글픈 현실 아니겠어요?”
월드컵에 채인 노점상, 끝내 죽음 택해
“단속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4월 15일 의정부시 태평로에서는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노점상인 최윤복(43)씨의 노제가 치러졌다. 노점상인과 유족 등 100여 명은 간암 말기의 홀어머니와 하반신마비 1급인 장애인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다 숨진 최씨의 주검 앞에서 오열했다. 7년 전부터 손수레로 과일을 팔던 최씨는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의정부 시청의 노점상 단속이 강화되자 결국 죽음을 택했다.
정부의 노점상 단속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월드컵 대회 개최를 두달 여 앞둔 지난 3월 말. 3월 25일 서울시가 월드컵을 앞두고 노점상 4,300여개를 일제히 정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노점상들이 대거 반발하고 나섰다. 노점상인들은 “우리를 축구공쯤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보다”며 분노를 터뜨렸고, ‘일제 정비’를 선언한 월드컵 개최 도시 곳곳에서 해당 관청과 노점상들의 ‘충돌’이 이어졌다.
노점상들은 “월드컵 때문에 생계마저 위협받아야 겠느냐”며 “정부는 단속 대책만 내세우기에 앞서, 월드컵 기간 중에 노점상을 관광자원으로 살려내려는 정책을 고려해 봤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서울, 울산 등 대부분의 시는 “월드컵 대회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노점상 정비 단속을 민간 용역업체에 위탁해 강제로 철거했다.
‘미화’의 이름아래 생계를 위한 수단은 ‘불법행위’로 전락하고, 강제 철거로 인해 수많은 노점상들은 살 길이 막막해졌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죽음’을 택하는 이들까지 생긴 것. 의정부시 최윤복 씨 뿐 아니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서용운(42)씨도 목숨을 끊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심해지는 단속 때문에 밤잠을 못 자며 고민하던 그는 결국 4월 1일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설움이 묻은 유서를 남긴 채 생목숨을 끊은 것. 한 번의 승리를 이룰 때마다 몸값이 1억원씩 올라간다는 값비싼 그라운드 주변에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죽음을 강요받은’ 이들이 있었다.
이현주 / l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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