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국’은 어디입니까?

불법체류 자진신고 및 고용허가제 반대 이주노동자 농성단 버지라 씨(29세)


버지라 씨는 스물 아홉 살이다. 장남인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네팔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 그게 11년 전 열 여덟 살 때다. 내전 중인 네팔에는 부모님과 세 명의 여동생, 다섯 명의 남동생이 그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살고 있다. 한국어를 몰라 사장에게 얻어맞던 그가 유창하게 우리말을 할 수 있기까지 11년, 그의 20대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꼬리표에 가해지는 이국 땅의 고된 노동과 폭력 속을 힘겹게 지나왔을 것이다.

“한국이 싫어졌겠어요?”
“아뇨. 한국이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어디를 가나 자본가는 다 똑같다는 걸 알았죠. 네팔 자본가도 똑같을 거예요. 다만 가난한 나라라 일자리가 없고 실업이 많죠. 노동자한테 특별히 좋은 ‘나라’가 어디 있나요?”
처음 한국에 들어와 취직한 곳은 부천의 한 볼트 공장이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 30분까지 계속 일했다. 그리고 30분 동안 걸어서 기숙사에 들어가 쓰러지듯 자고 나왔다.
“일을 많이 했어요. 사장은 매일 욕을 하고 많이 때렸고. 이렇게 맞다간 죽을 수도 있다 싶어서 ‘때리지 마세요’ 했는데 사장이 ‘내 말 안 들을 거면 네팔에 가라’고 해요. 공항까지 끌려갔다가 마침 네팔 행 비행기가 없어서 돌아왔죠. 그날 밤, 사장한테 맡긴 여권이랑 월급 하나도 못 받고 도망 나와서 불법 체류자가 된 거예요.”
한 달에 두 세 번씩 3D 업종만 골라 공장을 옮기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맞아도 대들지 않고, 월급을 주지 않아도 참고, 뒤를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지 늘 확인하며 몇 년을 살았다. IMF 때 네팔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간 불법체류자로 산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에 발이 묶여 또 5년, 지금까지 그는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고용 정책을 바꿔야 해요. 지금 산업연수생 제도가 있지만 연수생들이 몇 개월 못 버티고 다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일이 힘들고 월급은 적으니까요. 불법체류자가 되면 돈은 더 받을 수 있어요. 지난 3월에 정부가 발표한 불법체류 방지대책도 바뀐 게 별로 없어요. 자진 신고하면 추방을 1년 연기해 준대요. 당장 급하니까 이주 노동자들이 앞다투어 신고를 하지만 1년 뒤에 자진 출국할 거라고 생각 안 해요. 돈 벌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니까요. 또 불법체류자가 되겠죠.”

자진신고에 이어 정부는 조만간 고용허가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이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는 공장을 옮길 자유가 없다. 고용주가 계약 갱신을 해주지 않거나 해고시키면 바로 추방당한다. 정부의 자진신고-고용허가제에 반대하고 이주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외치는 버지라 씨와 이주 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은 그래서 시작됐다.

“한국 노동자들 중에는 우리가 자기들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도 예전에는 우리를 때리고 욕하는 한국 노동자를 미워했어요. 하지만 적은 우리가 아니예요. 비정규직, 정규직, 남성 노동자,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 이렇게 자꾸 분리될수록 자본가는 힘이 커지는 거예요. 한국에 온 지 11년만에 나는 눈이 트였어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도 이해가 됐죠.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요. 투쟁하고 단결하지 않으면 쟁취할 수 없어요. 우리 요구는 큰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고, 노동자로 권리를 인정받고 싶어요. 이미 일하고 있으니까 그걸 인정해달라는 거예요.”
월드컵이 끝나면 바로 불법체류자 단속이 시작될 것이다. 자진신고를 거부하고 ‘간 크게’ 농성 중인 이주 노동자들은 ‘단속 1호’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잡혀가고 추방당하면 다른 친구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새로운 이주 노동자들이 또 들어와서 자리를 채울 거예요. 그거면 돼요.”

장성희 / jsh@sp.or.kr


이주노동자 발목 잡는 자진신고제, 고용허가제

‘현재 불법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는 1년 이내에 모두 추방시킨다. 사용주가 더 싸게, 더 오래, 임의로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새로운 이주 노동자를 불러 들인다.’
정부는 지난 3월 12일,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들의 자진 출국을 유도하기 위해 자진신고자에 대해 범칙금과 입국규제를 면제해주고, 1년 동안 강제출국을 연기해주는 것 등을 골자로 한 ‘불법체류방지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3월 25일부터 5월 25일까지 ‘불법체류외국인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했고, 전체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70%인 18만 명이 신고를 마쳤다. 1년 뒤에 추방당한다는 사실보다는, 1년이라도 맘 편하게 일할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신고를 한 사람이 100%라고 보면 된다.
자진신고 완료와 더불어 노동부는 ‘고용허가제’를 법제화할 방침이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사용주는 이주 노동자의 계약을 1년마다 갱신해주는 권리를 갖는다. 반면 이주 노동자는 해고나 고용기간 연장을 이유로 쟁의를 할 수 없고, 어떤 이유에서건 사용주가 해고하면 14일 이내에 출국해야 한다.
이에 지난 4월 7일, 1천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집회를 열고 자신신고제, 고용허가제 반대와 노동3권 보장 등을 촉구했고, 버지라 씨 등은 명동성당에서 6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월드컵이 끝나고 불법체류자 단속이 시작되면 버지라 씨 등은 정부의 단속 대상 1호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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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 자진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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