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와 '전광판'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 겨레문화답사연합 제공 ]


붉은악마, 전광판을 만나다!

사무실 마당으로 던져진 신문이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평범한 사실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붉은 이미지의 거대함이 "적잖이" 놀랍다. 사실 지난 미국과의 시합에서 시청 앞을 가득 채운 붉은 티셔츠의 군중은 응원단이라기보다는 붉은 꽃밭에 가까웠다. 그리고 지난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에워싸 버린 붉은 응원단의 항공사진은 세종로를 한강 물줄기로, 응원대오를 한강고수부지의 붉은 색 잔디로 착각할 정도의 장관이었다.(아마도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재미를 본 사람은 붉은 색 원단을 제조하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한국의 붉은악마와 월드컵 응원 열풍에 대한 세간의 관심 역시 대단하다. 한국의 시합이 있는 날이면, TV는 24시간 열정적인 응원단과 응원장소를 찾아 거리를 헤맨다. 해외동포는 물론이고 심지어 스님, 병원, 교도소 등의 열띤 응원과 같은 진풍경을 구경할 정도이다. 한편 온갖 인쇄물의 지면과 칼럼리스트들은 붉은악마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에 분주하고, 발빠른 장사꾼들은 벌써부터 붉은악마의 성공사례를 벤처마킹해야 한다고 외쳐된다.

그 논리 역시 천차만별이다. 단순히 월드컵 유행에 편승한 원색적인 민족주의·국가주의적 지지에서부터, 붉은악마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과 새로운 조직운영의 패러다임이 있어 가능했다" 등의 세대문화적 접근에 이르기까지.(몇 년 전 "붉은 색은 빨갱이를 상징해서 안된다"고, 그 "'좋고 건전한' 말 다 내버려두고 왜 하필 '악마'를 표방하느냐"며, 붉은악마를 보수적 레드콤플렉스와 유아적 도덕주의와 연계하여 비판하던 사람들의 지금 입장이 매우 궁금하다. 말세론?)

하지만 역시 붉은악마와 월드컵 응원단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바로 "전광판 문화"다. 전광판 앞에 밀집한 거대한 붉은 색 응원단의 시각적 효과, 거대한 군중의 집결이 "50만", "70만" 등 수치로 환산되었을 때의 사회적 효과, 그리고 거대한 전광판과 군중이 하나의 패키지 상품으로 인식되었을 때의 경제적 효과 등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전광판이라는 미디어의 힘!

붉은악마와 전광판 문화를 접하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두는 역시 "미디어"다. 전광판 문화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 멀티미디어화가 가져 온 미디어의 이동성을 통해 공간문화의 재편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광화문, 시청, 대학로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은 그냥 '커다란 TV'가 아니다. 빨간 신호에 걸리면 자연스럽게 봐주어야만 하는 도심의 전광판, 신호에 걸린 자동차 속에 존재하는 소형 화면, 운전자의 앞에 놓여 있는 핸드폰의 액정은 이미 미디어의 발달을 통한 이미지와 주체의 "관계 맺기"가 변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쇼핑몰, 엘리베이터, 지하철, 버스 등 언제 어디서나 조우할 수 있는 휴대폰, PDA, 노트북, 휴대용 TV, LCD 모니터 등은 전광판과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이동성, 공간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 개입하고 변화를 유도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이제 미디어의 고정된 위치, 송신자와 수신자의 이분법과 일방향성, 유한적이고 획일화된 정보콘텐츠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미디어의 매체와 매질은 상호보완적으로 다양화되고, 쌍방향화되며, 나아가 미디어를 통한 주체의 관계 맺기는 영상정보와 주체의 맥락에 따라 다양화된다.

붉은악마와 전광판의 만남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붉은악마가 선택한 미디어는 도심 한복판, 바로 광화문의 대형 전광판이다. 화면이 커서, 화질이 좋아서, 전기료가 안나가서, 사람들이 좋아서... 그 이유와 계기가 무엇이었든지 이제 붉은악마, 대형 전광판, 광화문 사거리의 만남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전광판 문화'는 정보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가져 온 공간 분절, 주체의 개인화, 관계의 고립과 단절 등 기존 공간문화의 획일적인 경향성을 전복한다. 열린 공간에서, 대형 전광판이 능동적인 주체를 만남으로써, 우리는 파시즘을 우려해야 할 정도의 거대한 공동체(혹은 집단적) 문화와 그 절정의 에너지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붉은악마, 광장문화의 위력을 보여주다!

다음으로 전광판 앞에 밀집한 붉은 색 이미지의 거대한 충격은 한 동안 잊고 있었던 광장의 문화, 거리의 문화에 대한 추억을 되살린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적(類的) 존재이다. 그리고 문화란 본래 공동의 행위를 전제로 한다. 우리는 단순히 개인의 행위와 취향을 문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따라서 열린 공간은 문화의 형성과 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인류의 문화는 열린 공간의 관계 맺음, 즉 광장의 놀이와 거리의 축제 등에 대한 공동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고, 융화되며, 때로는 소멸되어 왔다.

하지만 공간에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절대 논리가 적용되면서, 자본주의의 공간 분절과 재배치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면서, 열린 공간은 사라졌다. 그리고 공간문화의 공공성은 평가 절하되었고, 나아가 공간을 통한 문화적, 정치적 관계 맺음은 억압되었다. 현대 자본주의를 통해 가속화된 공간의 사유화와 사업화가 문화, 생태, 소통, 놀이, 축제, 일상의 삶 등으로 충만했던 광장과 거리를 공장, 자동차, 아파트의 분절되고 황폐화된 거대 밀집 공간으로 모두 메워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광장의 문화, 거리의 문화에 내재되었던 사회적 에너지는 주체, 문화, 삶의 맥락과 단절된 채 경제적 효율성의 인위적 경계를 통해 재배치되고 파편화되었다.

따라서 근대적 산업도시의 중심부인 광화문, 시청, 대학로를 가득 메운 수많은 붉은악마와 그들의 열정적인 에너지, 그 에너지의 분출을 통한 응원문화는 열린 공간에 대한 인간의 뜨거운 열망에 다름 아니다. 축구가 너무나 좋아서든지, 축구 외에는 우리 사회에 정 붙일 곳이 없어서든지, 모두가 흥분하니까 덩달아 서든지... 사람들은 그 동기와는 무관하게 열린 공간의 경험, 광장과 거리 그리고 함께 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공동체 문화가 내재하고 있는 엄청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 모두는 붉은악마와 전광판, 그곳에 모인 수많은 군중의 에너지를 통해 광장 문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물론 일회성, 승리주의와 경쟁주의, 스포츠 자본주의의 폭력 등 월드컵에는 분명한 그림자가 존재한다. 따라서 전광판 문화와 같은 현재의 집단적 열기가 자칫 국가주의, 민족주의로 무장한 파시즘으로 와전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더욱이 견고한 군사주의적 동원체계가 아직도 버젓하게 살아 숨쉬는 우리 사회에서 광장의 문화는 그 내용과 지향에 따라 전혀 다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전광판 문화는 우리 모두에게 한 동안 잃어버렸던 광장의 문화, 거리의 문화, 즉 열린 공간과 주체간의 자유로운 관계 맺음이라는 문화적 행위의 중요성을 자극하였음에 분명하다. 이제 세상 곳곳에 열린 공간이 광범위하게 복원되고, 그곳에 수많은 문화적 다양성과 공공성이 가득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이원재 /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정책실장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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