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노조, 분위기는 띄웠다.

올 임금협상에 사내하청 문제 논의...더이상 하청배제 어렵다는 의미

한국축구가 4강에 들었다. 온 나라가 축구 대표팀의 놀라운 경기력 향상에 찬사를 보냈고 '집단광기'라고 말할 정도로 열광했다. 그런데 축구협회가 이들에 대한 포상금을 차등해서 지급하겠다고 발표해서 물의를 빚었다.

이민성이, 김병지가 출장했다면 과연 '베스트11'선수들보다 축구협회가 말하는 '기여도'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를 했을까? 그들이 벤치에서 든든히 뒤를 받쳐주고 있었기에 선발선수들이 그만큼의 플레이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곤란한 일일까?

작년 말, 현대자동차노조는 사상최대의 흑자를 낸 회사와의 협상 끝에 일조원 가까운 성과급을 받아냈다. 그에 따라 일인당 600-1000만원이 돌아갔고 울산의 노동자들의 주머니는 엄청나게 두둑해 졌다. 그런데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1만여 명에 달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들의 '잔치'를 구경만 했다.

현대자동차가 사상최대의 흑자를 낼 때 하청노동자들은 출장을 하지 못한 축구선수들처럼 벤치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규직의 라인보다 훨씬 고되고 위험한 곳에서 비교도 안 되는 박봉을 받으며, 김태영 선수가 코뼈가 부러져도 동분서주 그라운드를 누비듯 다쳐도 몸이 아파도 고 용불안에 시달리며 라인에 섰다. 물론 그들의 '투혼'은 산재처리가 어렵고 고용이 불안한 하청의 상황 때문에 발휘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말하는 '기여도'를 따져도 현대차의 흑자는 분명 하청노동자들의 저 임금과 부품업체의 단가를 낮춰서 가능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사내하청 임금 합의는 '정치적 결정'

6월25일 재차 잠정합의를 보았던 올해 현대자동차노사의 임금교섭에는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근무환경 개선 등이 논의 됐다.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성과금 200% 지급 △8%임금 인상 등의 임금협상과 △하청노동자 전용 의무실확보△ 하계휴양소 이용 △정문출입 바코드 확인 대안 마련 △조식 이용 등의 복지확대 방안이다.

작년 성과급 배분 때 "정규직만의 돈 잔치"라는 비난을 받았던 노조는 뒤늦게 하청노동자들에게도 100만원 정도의 성과급을 지급하도록 회사와 재합의했다. 이 같은 상황을 겪으며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위화감이 극대화된 울산의 감정을 일정부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임금협상에서는 '면피'의 기회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컸을 것이다.

노조 김성찬 대외협력실장 역시 "이번 임금협상에서 하청노동자들의 문제를 논의하게 된 것은 노조의 정치적인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하청의 문제가 정규직 노조의 합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더불어 김실장은 "현대자동차노조는 올 2월 정기 대의원 대회를 통해 '미조직 특위'를 구성했고 하청 문제에 대해 기초적인 부분부터 접근하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노조는 이 특위가 적극적인 활동을 펴서 올 하반기 내로 하청들의 정밀한 실태조사를 통해 점차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차별을 없애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데 주력한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비정규직의 노동조합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를 꾀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하청이 참여하는 임단협 투쟁의 길은 멀다

그러나 이미 문제는 정규직조합원과 하청 노동자들의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5월에서 6월 사이면 정규직 조합원들이 당당하게 회사에 임금인상을 요구할 때 하청 노동자들은 '지원'인력으로 투쟁가를 들으며 일하거나 집에서 쉬어야 했다. 지방선거에는 노동자 후보가 나온다는데 대기업노조와 그 가족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하청들처럼 힘도 없고 조직도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별반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청들은 임단투도, 선거도 '남의 잔치'로만 여겨 질 뿐이라는 것이다.

정규직 조합원들 사이에도 아직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청을 위해 회사와 싸워야 하느냐"는 하청노동자가 자신들의 고용을 보호해 주는 방패막이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정서가 남아있고 하청노동자들은 이런 조합원들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하청들의 문제를 협상안으로 끌어와 준 노조에 대해 '자신들을 다분히 정치적으로 구색 맞추기에 이용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하청노조로 일하다 해고되어 복직투쟁을 해 오고 있는 위경희씨는 "하청 노동자들 스스로가 조직되어 요구한 것이 아니고 정규직 노조가 여론에 떠밀려서 합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현장의 하청노동자들이 반기는 분위기는 크게 없다"고 말한다.
위씨는 "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통해 내부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의식변화도 가져오기 어렵다"라고 한다. 사내 현대자동차 측에서 파악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1차 하청만 파악해서 4천100명 정도이다. 또한 위씨는 "2,3차 하청까지 친다면 모두 1만 명은 될 것"이라며 "5천 명이 넘는 2,3차 하청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은 한 푼도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일부러 라도 신경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그래, 분위기 몰이부터 시작하자

물론 이번 임금 협상에 하청의 문제가 논의되었고 이에 대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눈에 띠는 불만이 표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조합원이 전향적으로 하청의 문제를 공감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똑같이 상여금 200%를 받는다고 해도 평균연봉 5천만원이 넘게 된 정규직 노동자와 최저임금 기준으로 시급을 계산하는 하청노동자가 받는 금액의 차이는 오히려 하청노동자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사회적인 분위기는 정규직 노조가 더 이상 하청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임단협 협상에 임하기가 '눈치 뵈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현자노조가 지난 해 상여금 분배의 '면피'를 위해서든 민주노총 최대 조직인 노조 위상의 생색을 위해서든 방관을 할 수는 없는 입장이 된 것이고, 하청노동자 스스로는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원청을 상대로 하청의 문제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자노조의 김성환 대협실장은 "사실 이번에도 처음부터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섭위원들과의 논의 과정에서 올해를 기점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단초를 열어보자는 의견이 모아진 것"이라며 "때문에 보충협약 형태라도 단협안에 합의 사항을 넣었어야 하는데, 올해는 투쟁력이 작년 같지 않아 사내하청의 임금문제는 회의록에만 기재되어 있어 유감이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번 현대자동차 노조의 하청 관련 합의안이 어찌되었건 고무적인 일임에도 명문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이후 기아자동차나 쌍용자동차의 임금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합의가 어느 정도의 분위기 몰이를 하려면 합의서로 작성되는 것이 훨씬 더 영향력 발휘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분위기 몰이는 중요하다. 하도 많은 비유를 당한 '붉은악마 열풍'이어서 더 이상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지하고 응원하고 지원해 주는 세력이 많아지면 강해지지 않을 조직은 없다. 진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굳건한 조직화를 위한다면 분위기를 몰아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도 전략이 된다. 선수나 국민이 모두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악마가 됐듯이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이 더 이상 선험적인 구호로 들리지 않을 때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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