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으로 고발된 민간인학살

'한국전쟁전후 피학살자 유족증언대회' 열려


"오늘 이 증언대회가 우리 역사에 진실을 밝혀내고 서러운 한들이 풀려 화해와 평화를 도모하는 그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아래 범국민위) 이해동 상임공동대표의 대회사로 4일 '2002 한국전쟁전후 피학살자 유족증언대회'(아래 유족증언대회)는 시작됐다. 이날 유족증언대회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피학살 사례들이 새롭게 증
언돼 눈길을 끌었다.

거창에서 올라온 신용은 씨는 할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눈물로 증언했다. 신씨의 집안은 4대째 항일운동을 해 왔으며, 특히 신씨의 아버지는 해방 후 친일파로부터 양식을 빼앗아 굶주리고 있는 귀국동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신씨의 아버지를 정부는 보도연맹에 가입시켰으며, 어느날 경찰서로 불러 다른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학살했다. 당시 5세였던 신씨는 '아버지를 따라가겠다'던 자신에
게 깨엿을 주면서 "내 빨리 갔다 올께"라고 달랜 후 집을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보도연맹은 49년 좌익인사의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다.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가입시켰지만,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본인도 모르게 보도연맹원 명단에 올려진 경우도 있고, 일부 사람들은 보도연맹이 무슨 좋은 단체인 줄 알고 돈을 주고 가입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경찰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즉결처분을 단행해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거제에서 온 서철안 씨는 경찰이 7백50명 정도의 보도연맹원들을 50년 7월 25일부터 열흘간 매일 70여명씩 수장시킨 사실을 고발했다. 당시 서씨의 둘째 형도 보도연맹에 억지로 가입돼 죽임을 당했다. 서씨의 둘째 형은 죽기 전 큰 형과 면회할 때 '어제 밤에 옆 방에 있던 사람들의 구두발자국 소리가 났고 이후 뱃소리가 들렸다'며 '나도 오늘 죽을 것 같으니 앞으로 면회오지 마라'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씨는 "큰 형에게 그 말을 듣고 나도 막 죽고 싶었다"라며, "재판도 없이 물에 빠뜨리는 게 사람으로 할 일입니까?"라고 울분을 토했다.

완도지역 유가족 김보희 씨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인민군 복장을 하고 들어와 환영하는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고 증언했다. 그때 완도 전역에서 학살된 수만 해도 1천여 명. 남원의 김덕초 씨는 "나는 인민군이나 빨치산이 양민을 학살하는 것은 못 봤지만 국군이 학살하는 것은 직접 봤다"고 말했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50년 11월 17일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6백평 정도의 논에 모아놓고, 17∼35세 청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간 후 40분 정도 뒤에 총성이 들렸다고 한다. 그외 나주 봉황면 철야마을 학살, 단양 괴개굴 미군폭격에 의한 학살 등이 새롭게 증언됐다.

유족증언대회에서는 그 동안 잘 알려진 노근리 사건의 최근 현황이 소개되기도 했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의 정구도 씨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공동조사한 보고서가 나왔지만 진상을 심각하게 왜곡·조작하는 것이어서 (대책위에서) 반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는 추모비를 건립해 주겠다고 하면서 한국전 당시 미군에 의한 희생자 전체에 대한 추모비를 건립하려 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이는 노근리 사건을 계기로 다른 사건까지 덮어버리겠다는 의도"라며 현재 추모비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진도문화원장 박문규 씨는 올해 2월 '갈매기섬'이라는 진도 앞 무인도에 뼈가 즐비한 것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진혼제를 올렸다고 보고했다. 유골들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후퇴하던 해남경찰들이 보도연맹원 2백60여 명을 갈매기섬에서 집단처형한 결과. 박씨는 "침묵과 망각의 세월이 50년이었다"며, "이제는 통합특별법을 제정해 국가권력으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하고 국비로 위령제를 지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1백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에 걸쳐 19명의 유족 증언이 이어졌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인민군에 의한 학살만이 과도하게 부각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살의 90% 이상이 한국군이나 경찰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민간인학살 문제는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범국민위 김동춘 사무처장은 "전쟁상황은 '적과 아'라는 이분법을 강요하는 상황"이라며, "인권개념이 없는 국가공권력은 전쟁시 적에게 동조할 우려 때문에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다"고 밝혔다. "왜곡된 역사를 꼭 바로잡아 달라는 것 밖에 할 말이 없다"는 유족들의 통한은 50년간 강요당한 침묵을 조금씩 깨고 있었다.

인권하루소식 범용 기자
태그

민간학살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클리핑기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