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소희(노동자의 힘 조직부장)
"이 글은 내가 썼지만 나만이 쓴 글이 아니다. 삼원섬유의 300여 명의 동료들이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이윤추구의 도구로만 보는 가진 자들의 횡포와, 사회적 멸시와 천대 속에서 형성된 못가진 자들의 비굴감·패배의식·자기혐오와 자기 학대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투쟁과정에서 보여준 불의에 대한 투쟁과 동지애적 사랑과 신뢰, 고통과 절규, 눈물과 웃음으로 씌어진 글이다." - 책을 다시 내면서, 1983년 3월25일
창고에 오래있었던 것처럼 쾌쾌한 냄새가 나고, 누렇게 빛이 바랜 책 한 권을 우연히 보게되었다. 『어느 돌맹이의 외침』이라는 제목을 단 빨간 겉 표지에는 돌맹이에 손과 발이 달려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이 책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나를 1970년대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우연히 길을 가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한 상쾌함을 주었다.
이 책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면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70년대의 노동자였던 '유동우'라는 인간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활동가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자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서두에서 글쓴이는 표현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화려하거나 애써 꾸미지 않은 소박한 문체는 당시의 현실을 보다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전태일로 대표되는 70년대 노동운동의 역사가 삼원섬유에서는 유동우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투철한 혁명가도 아니었고, 사상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도 아니었으며, 사측의 논리에 대해 정책대안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부당한 것에 대해, 억울한 것에 대해 외치고, 그 외침을 조직했던 것이다.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그의 삶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정책적 대안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선언적 당위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것이 현실 우리 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유일한 무기이기나 한 듯 외쳐대지만 오늘 이 책은 우리에게 투쟁만이 노동자의 삶을 보장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또 하나 뇌리에 박힌 것은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이었다. 200-300원의 기아 임금을 받고, 하루 16시간, 심지어 철야노동까지 하면서도 임금만으로 살 수 없어 술집으로 팔려가야 했던 당시의 노동자들! 유동우 역시 하루 3끼의 식사를 할 수 없어 2끼만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70년대 전태일을 낳았던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니었겠는가?
유동우는 바로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이런 '사실 자체'에 대해 부당함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노동법에 대한 연구부터 진행한다. 물론 초기에는 모임이 잘 되지 않았고, 기독교인이던 유동우에게 동료들은 거부감이 많았다. 이런 동료들을 조직하기 위해 안하던 담배도 피고, 술도 배우면서 동료들과 다가가려고 했다. 또한 분회장이 되어서도 동료들을 보기 위해 매일 현장 순회를 돌면서 조합원들과 일상적으로 대화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동료들이 그를 좋아했으며, 그중의 몇몇은 소모임 활동까지를 결의하게 된다. 심지어 동료들은 그를 보지 않으면 불안해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삶으로 인해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이나 해고가 되었을 때나 유동우에 대해 조합원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본다. 매일 현장을 순회하고, 조합원들을 교육하고,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노조 간부, 활동가의 삶이 이어지고 있을까? 조합원과 함께 만들어 가는 노동운동, 그래서 그들에게 다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그는 30여 년 전 삶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들에 의해 이 땅에 봄이 올 것이다. 봄이 오면 온 들판을 덮는 저 무수한 꽃들, 꽃들…'
70년대 노동운동가 유동우로부터 나는 희망을 보았다. 2002년이 된 지금, 위기의 시대를 희망으로 수놓을 방법을 이 '빛나는 책'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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