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오(실험매체그룹 '힘' 영상활동가)
"짜짝~짝짝짝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에서 "오! 피스 코리아"까지 월드컵의 열기는 대단했다.
그 중에서도 자발적인 스포터즈의 이름인 '붉은 악마'는 그 이름 자체가 호의적이든 악의적이든 간에 사회적 현상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나 또한 한국의 경기가 있던 날은 출근하면서부터 빨갱이가 되자고 적힌 붉은 티셔츠의 범람에 기분이 묘해지는 충격을 받았고, 그 결과는 붉은 물결이 일기 전에 장만했던 피어싱 박힌 붉은 티셔츠를 몇 차례 입지도 않고 헌옷으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간에 수많은 젊은이들과 상당수의 늙은이들까지 평소에 축구를 그토록 사랑했는지 그들이 외치던 대한민국을 그토록 사랑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6월의 술자리에 아주 좋은 안주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7월을 맞았고, 우연하게 노래공연에 가게 됐다. 2호선 동대문운동장 역에 내려 공연장을 찾아 걷는 동안 다시 "대~한민국"을 들었다. 오늘(7월2일) 광화문에서 월드컵을 마무리하는 무슨 축제가 열린다고 했던 걸 기억하며 "대~한민국"을 웃으며 들을 수 있었다.
"2002년 7월 이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거부한다. 2002 노래마라톤 일상의 치열함을 노래하라."
이런 슬로건으로 7월2일부터 7월7일까지 6일간 23개 팀의 밴드나 가수의 공연이 이어진다.(공연에 대한 정보를 몰랐던 분은 이제 첫날이 지났으니까 이글을 보고도 어쩌면 한두번의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찾았던 첫날에는 얼마 전 인터넷으로 인기를 끌었던 'Fucking USA'를 부른 '박성환'을 시작으로 포크록을 하는 '가객밴드', 통일조국과 민족의 노래를 주창하는 '우리나라'가 공연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박성환씨가 인터넷을 통해서 부른 노래만 한두번 들었을 뿐 이날 공연의 노래는 모두 처음 듣는 곡이었다. 공연장 상태가 나빴던지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간간이 귀에 들어오는 단어들을 조합할 때 이 노래들은 그냥 편하게만 들을 수 있는 곡들이 아니란 정도의 짐작으로 팝송 듣는다 생각하며 음악을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위를 살폈더니, 무대에서 흐르는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열광하며 박수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순간 머리를 딱 치고 지나가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그것은 붉은 악마 현상의 비밀이었다. 혹시 필자만 모르고 있었던 공공연한 비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뭐 재밌는 거 없을까?" 라고 심심한 이야기 안해본 사람이 있겠는가? 아주 평범하고 지긋지긋한 일상의 연속으로 지친 사람들이 한둘이겠는가? 광고카피들도 항상 그런 지루한 일상을 자극해 댄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하지만 갈 곳이 있긴 한가? 한석규씨가 나와서 붉은 악마 박수 가르쳐주며 응원하자고 그러는데, 힘들 거 없쟎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지루했던 평범한 일상을 거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일상으로부터의 순간적인 도피에 불과하다. 이제 일상으로 다들 돌아가는 중이다.
일상의 치열함은 무엇일까? 치열한 일상이 있기나 한 것일까? 한줌도 안되는 운동권들은 치열할까?
비밀을 알아챈 순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또다른 의문들. 이번 공연의 슬로건은 "일상의 치열함을 노래하라"였다.
평생 국가주의에 시달리다가 올 6월의 "대~한민국"에 무릎꿇고 '우리나라'의 공연을 차마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꿇은 무릎 펴야겠다. 치열하게.
"대~한민국"이란 죽은 자식 부랄 만지는 식의 슬로건이 아닌 창조적이고 생동감 있는 슬로건을 언젠가는 외쳐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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