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노동자의 힘 회원)
차라리 파시즘 치하에 동원된 티브이 방송이었다면 모든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한 방송의 존재 이유와 형식은 명백한 것이다. 그것은 집권자들과 지배계층의 대국민 선전과 이데올로기 교육, 허위의식을 통한 우민화, 맹목적 집산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개최와 방송보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는 현실이나 방송의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지배계급의 권력강화와 사회통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방송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방송이 월드컵을 중계하고 연관된 뉴스를 다루었다면 그 내용과 형식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남한 사회의 방송은 이것과 많이 다른가?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사이비 의미체계의 거짓된 덧칠이다. 월드컵 기간 중 모든 방송은 벌어진 일체의 사건이 국민적 애국심과 시민의식과 한 민족의 아름다운 공동체의식의 발로이면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과 7백만 국민의 질서정연하고 열렬한 응원은 국력과 위대한 국민성을 만방에 과시한 것이며 이는 결국 국민 단합과 경제적 이득 및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미친 듯이 떠들어댔다. 참말이지, 대체 무슨 일이 생겨났건 사실이 정말 이렇다면 춤이라도 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수 천 수 만 번 반복되는 이 떠벌림이 단 하나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월드컵 개최하고 월드컵 성적 좋고 국민이 열광적으로 응원해서 국민 단합이 잘 되고 그로 인해 부국강병을 이룬 나라 있으면 한 번 손들고 나와 볼 일이다.
이 번 월드컵이 그 나마 한 게 있다면 이리도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한 달간의 휴식, 그야말로 일상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재미난 휴가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휴가가 그렇듯 그것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생산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축제는 노동자를 노동자로 다시 재생산하는 전 세계적 여가 문화로서 축구가 한국에서 재현된 것이며 이를 둘러싼 자본 및 정치진영의 의도도 명백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 잊고 즐거워하라. 그리고 이제 놀만큼 놀았으니 군말 없이 노동자로 서민으로 돌아가라. 보라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으며 세계는 희망적이지 않은가' 라는 것이었다. 세금과 자본가들의 돈 다발이 월드컵에 그리도 아낌없이 쏟아진 진정한 동기도 바로 이것이었다. 단 3분만 냉정하게 돌아본다면 이러한 사태의 진실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방송은 이 진실에 대해 철저히 모르는 척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단 1초의 광고도 빈틈없이 다루는 방송사의 편집진과 기획진 및 기자들이 이 진실을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물론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거짓논리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마구 열기가 올라가는 축제 분위기에 절대로 찬물을 끼얹으려 하지 않는다. 진실이 무엇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방송과 기자로서 사명감 따위도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 우선 시청률이 중요하고 시청자가 당장 보고 싶어하는 것만 온갖 울긋불긋한 치장을 섞어 다 울궈먹다 못해 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같은 방송을 반복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것은 방송사에 근무하는 개인들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도 구조화되고 단단한 체계 속에 갇혀 있는 것이어서 근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무엇보다 경제적 변혁 없이는 도저히 바뀔 가망이 없는 것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이 되었던 바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방송의 실태는 이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철저한 목적의식성과 필연성-곧 자본의 자기 재생산-이 파시즘체제의 독재국가와는 달리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과 곤봉의 독재보다 훨씬 무서운 것은 이처럼 보이지 않게 모두에게 스며들어 황당한 거짓말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어내는 한국 방송의 현실이다. 그것은 돈과 회유와 한없이 다양화된 수단들을 통한 철권의 거짓된 독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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