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석(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말은 유엔산하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위원회'의 몇 년에 걸친 프로젝트의 결과로 1987년에 나온 우리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세계 170여 국 정상급 대표자들이 리우에 모여 합의한 '의제 21'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초기에는 야생동물 보호나 자원의 한계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인도의 다국적 기업에 의한 유독가스 누출이나 구소련의 핵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누출 사건 등이 알려지면서 환경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고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만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데 국제 여론이 모아졌다. 그 결과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움직임이 생겨난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는 환경문제에 대한 첫 번째 국제회의다. 회의가 열리기 전에 주최측은 아주 쉽게 환경문제에 대한 합의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축제분위기에서 회의를 끝낼 수 있다고 낙관했다. 저개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국가에 보내진 사전 협의문서에 대해서도 저개발국들은 회의 전에는 별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시작되자 저개발국과 선진국의 이해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회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환경문제에 있어 저개발국가들과 선진국가들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선진국가들은 자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분별한 발전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저개발 국가들은 무분별한 발전에 의해 엄청난 환경오염을 전 세계에 부담시킨 선진국가들이 이제 저개발국가들이 경제개발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이루려 하자 개발에 대해 제재를 하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환경과 발전"이다. 환경과 발전은 선진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모순되는 개념이다. 환경은 무분별한 발전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무분별한 발전보다는 환경친화적인 발전을 하자는 거다. 저개발국의 입장에서 보면 저개발상태가 오히려 자연에 대한 극심한 착취를 동반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무분별한 개발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몇 년 동안 환경과 발전을 위한 세계위원회의 위원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현황을 파악하고 석학들과의 토론을 했다. 거기서 얻어진 개념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환경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고려하자는 생각이고 여기에는 몇 가지 차원의 동시적 고려가 동반된다. 미래세대와 현세대의 동시적 고려, 현세대 안에서의 저개발 국가와 선진국간의 동시적 고려, 한 국가 안에서의 부자와 빈자에 대한 고려, 이렇게 세 가지 차원의 고려는 형평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즉 무분별한 경제개발은 환경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지나친 저개발 또한 환경문제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개발은 환경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개발과 환경보전이 모두 중요하다. 또 현 세대내의 극단적인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과 입장차이가 환경문제의 해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생기자 이번에는 미래세대라는 공동의 가치를 내걸고 당위적으로 접근하자 등의 주장이 지속가능발전의 개념 안에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선진국은 그 동안의 자국의 무분별한 경제발전에 의한 지구적 규모의 환경파괴를 반성하고 '환경친화적' 기술이나 '환경보전이나 환경친화적 발전을 위한' 기금을 후진국에게 과감히 양도하고, 저개발국가들은 이러한 환경을 위한 원조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할 정치적 사회적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의제21이 세계 140개국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모여서 비준한 것이며 아주 이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준수사항이 아니고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별로 실천적이지는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미국 역대 정권 중 가장 환경친화적인 정부를 지향한다고 자랑하던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의제21의 후속작업에 있어서는 가장 소극적이다. 더 나아가 부시 행정부는 같은 작업을 거의 무시하다시피하고 있다. 반면에 유럽의 여러 선진국들도 미국보다는 월등히 잘 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만든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실행은 훨씬 못 미치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환경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환경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에서도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 자체도 여러 차원의 두 가지 대립물의 통일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대립물들을 모두 화해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함으로써 과학적이지 못한 측면을 내포하게 됐고 이러한 비 과학성은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면으로 드러난다.
최근에는 강한 지속가능성, 약한 지속가능성을 분리하여 강한 지속가능성에는 체제 극복의 측면을 포함하려는 시도도 있으나 어떻게 그러한 강한 지속가능성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에서는 이론적 치밀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구 소련의 해체이후 점증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이러한 운동이나 이론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2002년에는 1992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있었던 세계최초의 환경문제에 대한 정상회담이 1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국제단체를 중심으로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올해(2002년) 8월말부터 9월초까지 리우+10 회의가 세계 정상들이 모인 가운데 다시 한번 열린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빈곤퇴치 등 지속가능발전의 사회적 측면, 국제환경관리체계의 보강, 개도국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및 기술이전 확대방안 등이 중요한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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