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

김해민(노동자의 힘 회원)

과학기술혁명을 주도했던 전자 산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작업장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자본가들은 늘 첨단 기술의 깨끗한 작업장을 자랑해 왔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전자 산업인 반도체 공장들이 환경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첨단 전자회사의 '깨끗한' 작업장이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말 대만에 있는 다국적 기업 RCA(Radio Company of America) 전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상을 알리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미국 원정 투쟁을 전개했다. RCA 노동자 자력구제 연합(Self-help Association for RCA Employees)에 따르면 RCA에 근무한 노동자들 중에서 1998년까지 1375명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들 중 216명이 죽었다. 그리고 102명이 여러 가지 종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살인적인 '깨끗한' 작업장

RCA는 30여 년 전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가전 제품 제조 회사였다. 1969년에 대만의 타오위엔(Taoyuan), 주후베이(Zhubei)와 이란(Yilan)에 공장을 지었고, 전체 노동자 수는 2-3만 명 정도 되었다. 1992년에 문을 닫은 RCA는 1986년에는 GE(General Electric) 소유였다가, 1988년에 프랑스 톰슨사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GE와 톰슨은 둘 다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1992년 문을 닫기 전까지만 해도 대만 정부는 RCA 공장을 대만의 대표적인 수출 회사의 전형으로 선정하는 등 철저하게 그들의 본 모습은 은폐시켰다. 1994년이 되어서야 타이완 환경보호국(EPA)은 RCA가 발암물질로 알려진 독성 폐기물과 유기 용매를 불법 매립하여 그 일대의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고 공개했다. 그 후 1998년에 환경보호국은 RCA공장 지역을 영구 오염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현 RCA 공장의 소유주인 프랑스 톰슨사는 그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질병과 그들의 공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대만 정부 보고서를 인용하며 반박하고 있다. 1999년에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으나 기각된 바 있다. 노동자들은 수년동안 지속적으로 GE와 톰슨사를 대상으로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에 도착한 그들은 LA, 뉴욕, 워싱턴에서 거리 선전전 및 대중연설을 진행했으며, GE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항의 투쟁을 펼쳤다. 아울러 미국의 SVTC(Silicon Valley Toxics Coalition), 그린피스, AFL-CIO(미국노총) 등 미국 내 활동가들과 환경부 간부, 의원들과 만나 그들의 상황을 전했다.

이러한 첨단 산업의 문제는 비단 제3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현재, 250여명의 노동자들이 대만 노동자들과 같은 이유로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IBM과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등 첨단 반도체 회사를 고발했다. 미국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수많은 독성 혼합물들이 선천성 기형과 유산 그리고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천성 기형아 출산, 암, 환경 파괴…발뺌하는 자본가들

미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출된 독성물질의 양은 미국 정부의 직업 안전 보건부(OSHA)에서 설정한 기준치 이하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그 규정은 수십 종의 위험한 물질들이 항상 새어 나오고 있는 실제 작업장의 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의 작업장을 클린룸(깨끗한 방)이라고 부른다.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는 먼지가 나지 않는 방진복이라는 옷을 입고 작업한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또한 클린룸의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 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하게 된다. 첨단 산업의 클린(Clean)한 이미지는 안전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1991년에 캐나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클린룸에 사용되는 약품과 유사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125명중 13명이 기형아를 출산했다고 한다. 이 통계는 화학약품이 없는 다른 작업장에서는 125명중 1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매우 큰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도 남성노동자에서 나타나는 뇌종양 발생률이 평균보다 4배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의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암 발생률은 조사된 적이 없다. 1998년, 캘리포니아 보건 서비스부(California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획한 바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한국 전자산업 종사노동자의
정밀 검진과 작업장실태조사가 시급하다!

이렇듯 첨단 '공해' 산업의 문제는, 전통산업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선진국에서 직업병 및 환경 문제가 발생하여, 자국의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면 다국적 기업은 환경 규제가 허술한 제3세계로 이동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국적 기업은 한 나라에서 충분한 이익을 뽑은 다음 노동자들에게는 항상 직업병과 환경오염을 뒤에 남기고, 규제가 보다 허술한 제3세계로 이전했다.
차이가 있다면, 첨단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병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그 원인 규명이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거의 동시에 유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부나 연구소가 발간하는 첨단 산업에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자본가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산업 보다 첨단 산업에서 더욱 노동자-민중들이 대응하기는 힘들고, 장기간의 투쟁을 요구한다.

대만과 미국 노동자들의 이번 투쟁은 첨단 산업의 깨끗한 이미지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러운 음모를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에게 알려내기 위한 투쟁의 시작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전자 산업의 역사가 20여 년이 되고, 환경규제도 선진국보다 엄격하다고 볼 수 없는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에서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제일 우선적으로 한국의 전자 산업에서 작업장 실태에 대한 조사작업 즉,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독성물질들의 종류(첨단 산업의 자본가들은 독성물질의 종류를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할 것이다)와 그것이 인체와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작업과 전자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고 종사한 적이 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정밀 조사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급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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