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교육으로 세상열기(4)

현광훈(공공연맹 교육국장)

투쟁의 꽁무니도 못 쫓아가는 노동자교육의 현실

'노동조합 일상활동과 교육'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 총자본과 권력의 끊임없는 침탈과 투쟁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 정세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을 동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투쟁과 구분되는 일상활동이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거꾸로 투쟁시기에 교육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육이 일상시기에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은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지금 제기하려고 하는 '노동조합 일상활동과 교육'이 갖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라중공업과 발전노조 투쟁에서 나타났듯이 준비되지 못한 교육의 한계를 필요성과 열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발전동력은 투쟁이었고 노동자교육은 투쟁에 복무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총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민주노조진영의 투쟁은 의도하든 않든 전국성을 띠어가고 있고 노동자교육도 이러한 투쟁의 전국성을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의 내용과 방식으로 개발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실 지금 노동자교육은 투쟁의 속도를 전혀 따라 잡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아무리 역사가 긴 노조라도 교육사업의 목표와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노조가 거의 없고, 과학적 노동운동을 주장해 왔던 한국노동운동이 현장간부가 볼만한 학습서조차 손에 꼽을 정도라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러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국적 투쟁이 벌어질 때 현장간부들은 심각하게 '조합원들이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투쟁동력이 모아지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도대체 현장조합원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직접적 이해관계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란 말인가? 준비하지 못한 교육, 준비하지 못한 투쟁을 극복하고 투쟁의 전국성을 담아가는 일상활동과 교육에 대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총자본의 독점화가 더욱 심화되고 폭력성이 노골화되는 상황이 곧 자본의 위기와 해결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때, 현재의 국면에서 일시적이고 단발적인 타격으로 국면전환을 이끌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민주노조진영이 한번의 승리를 이루기까지 아흔아홉번의 패배를 겪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적어도 정치적 승리에 다가갈 수 있는 일상적 준비가 어찌 필요하지 않겠는가.

방법론이 없는 교육에서 운동의 발전은 없다.

단위노조에서 연맹에 많이 요청하는 교육 주제 중 하나가 '간부들의 역할과 자세'이다. "우리노조 간부들이 새로 올라왔는데 무얼 어떻게 할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교육을 좀 해달라." "간부들을 어렵게 뽑기는 했는데 별로 책임감이 떨어져서 힘들다. 의식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몇 가지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연맹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나부터 현시기 민주노조의 현장간부들에게 어떤 역할과 자세를 얘기할 수 있는지 막연하다. 신규노조의 초짜 간부들에게는 선배들의 수많은 경험에서 원칙과 자세를 얘기하겠지만, 무너져 가는 현장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고민하는 중견노조의 간부들에게는 도대체 무엇을 말해야 할지 갑갑하기만 하다.
뭔가 해보고자 간부를 맡았지만 조합원들의 무관심과 외면에서 기본활동 정도 간신히 감당하고 있거나, 그나마도 부담스러워 하는 간부들에게 노동자 연대를 얘기하는 것, 투쟁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연대집회의 참여가 훌륭한 교육공간이라고 얘기해 보지만 나부터 질려버리는 지금의 집회문화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고 하지만 준비된 탄압에 밀려서 싸우는 고립된 투쟁에서 어떻게 노동자의 학교가 되도록 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만 하다.

현장의 간부들이 안고 있는 고민의 핵심은 와해되는 현장조직력, 조합원들의 이탈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가? 이다. 그러나 어떤 교육자료도 이러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 단지 "지금 이렇다 할 정리된 해답은 없다. 동지들이 꾸준히 조합원에게 교육하고 토론하면서 하나하나의 실천을 통해서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는 짧은 교육시간을 이유로 적당히 둘러대면서 산별노조 건설이 어떻고 저떻고, 정치세력화가 왜 필요하고 등등의 막연한 얘기를 깔아놓고는 현장의 동지들이 열심히 뛰어야 할 것이라는 격려로 마지막을 포장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결국 현장간부들이 "그래, 한번 해보자" 라고 결심하더라도 바로 다음에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뭔가?" 라는 벽에 부닥치고 만다.

경쟁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연대이데올로기 복원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각종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대중적 분노가 팽배해 있고 '민주노조는 노동자연대'라는 역사적 전통이 있으면서도 왜 투쟁이 전면화되지 못하는가. 물론 이는 심층적인 원인분석이 있어야 하겠지만 교육영역에 국한해서 본다면 연대이데올로기의 부재를 짚을 수 있을 것이다. 수년간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문제점에 대해 수많은 교육과 선전이 이루어졌음에도 현장의 간부(조합원)들의 이데올로기로 안착하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내용전달이 난해했던 문제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본의 경쟁 이데올로기는 IMF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가시화되는 반면, 우리의 투쟁이데올로기는 논리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실천을 만들어 가는 이데올로기로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1기 노사정위 합의,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저지투쟁 실패 등 IMF체제에 대한 초기대응의 오류와 지속된 총파업전선의 실패는 민주노조진영으로 하여금 물리적 패배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패배를 경험하게 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와해는 다시 투쟁의 재조직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악순환 고리를 구조화시키는 데에 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태가 이러할진대,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다시 교육하고 선전하는 수준, 시기집중식의 총파업을 독려하는 수준에서 투쟁이데올로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일상활동을 통해서 연대이데올로기를 쌓아가자.

지금 당장 투쟁해야 할 상황에 놓인 부분은 어쨌든 분노를 가지고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자본의 공세가 노골적인 만큼 정치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대공장 노동자들과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학습은 교양이 아니고 필수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들 스스로들에게 정치학습에 대한 요구가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인데, 이를 극복할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유능한 강사, 좋은 학습서가 필요하고 영상자료, 사이버학습 등 개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접근만으로 요구를 창출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육은 실천과 함께 가야 요구가 발생하기 때문에 연대이데올로기를 복원하기 위한 연대활동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교육이 준비되고 실시되는 것과 아울러 일상적 연대활동이 동시에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노조는 일상활동에서 투쟁이 준비되고 투쟁력과 조직력은 일상활동에서 그 힘이 강화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진영은 정작 "일상활동이 왜 안되는가?"에 대한 분석과 대응은 너무도 부족했다. 민주노총 1기 노동대학을 졸업한 한 간부의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예전에 혼란스러웠던 것이 많이 정리되었고 민주노조운동의 과제가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는데, 현장에서 어떻게 실천할 지를 생각하면 주눅이 든다"는 것이다. 최근 총파업의 실패가 지도부의 역할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더 나아가 시기집중 방식, 일회적인 총파업전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조직진단까지 문제인식을 넓혀야 한다. 일상활동론 - 부서활동, 대의원활동, 현장소모임 등 - 이 오랜 실천 과정에서 무기력해지고 있고 현장활동과 현장투쟁론이 원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장에서 조합원과 함께 하는 실천을 고민하는 간부가 어떤 방안을 찾을 때 연맹이나 지역본부에서 또는 노동단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또 현장간부들에게 프로그램을 지원해 줄 테니 적극적으로 추진해보자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조건들이 성숙되어야 한다. 더불어 현장간부가 교육을 통해서 다양한 일상활동과 관련한 정보를 얻고 실천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는 일상활동 교안이 준비되어야 한다. 투쟁만이 아니라 일상적 연대와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상호의 이해를 공유하고 조직지침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을 조직하면서 연대이데올로기를 정립하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주요 연맹들이 산별노조 건설을 목표로 들였던 공력만큼 일상활동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한다면 산별노조를 만들고도 조직력이 오히려 약해지는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활동력을 충전하는 여유로운 노동자교육을 개발하자

민주노총 1기 노동대학에 100명이 넘는 간부들이 등록하고 지역별 노동자학교에도 예상보다 많은 간부들이 참여한 것을 보면 여전히 현장간부들의 교육에 대한 갈증은 크게 존재한다. 이러한 동력을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지도 시급한 과제이다. 그런데 여기에 참여하는 간부들의 현실적 고충 역시 현장에서 실천을 고민하는 순간 너무도 막막해진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렇게 교육이라도 와서 동지들을 만나면 다소 힘이 생긴다는 얘기들을 한다.
작년에 공공연맹 신임간부 교육과정(2박3일)이 참가자 미달로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고 다시 추진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기획의 의도가 현장간부들의 상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란 판단도 든다. 다소 감성적인 평가지만, 쉴새없이 몰아붙이는 구조조정과 패배감 속에서 그들은 많이 지쳤고 좀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의욕조차 상실된 상황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박3일간에 훈련소와 같은 빡빡한 교육프로그램은 아닌 것 같다. 30여명 정도수준의 소단위 교육을 지향하는 간부교육이라면 프로그램도 자신의 노동조합을 여유롭게 되돌아 보고 다른 노조의 상황도 들어보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차분하게 구상해 보는 프로그램, 이러한 구상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와 방법론이 준비된 실용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효과를 높일 수 있는 소단위 교육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고 한가지 주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역사기행, 현장답사 프로그램과 같이 대단위 보급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지쳐있는 간부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일회적 교육이 아니라 일상활동으로 안착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더불어 수행될 때 연대이데올로기를 일상 속에서 다져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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