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야~ 니도 내하고 아픈기 똑같네!"

마창지역 현장에서 근골격계 투쟁 확대

최지명(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차장)

6월25일 오후 5시30분.
노동조합이 반별로 10여명씩 조직해서 6일째 근골격계 집단검진에 참여해왔지만, 오늘은 좀 불안했다. 작업종료 시간은 4시인데, 의사선생님은 5시30분이라야 도착할 수 있겠다고 했고, 더구나 오늘은 한국축구팀이 결승 진출을 하느냐마느냐 결정짓는 역사적(?)인 날 아닌가. 잘못하면 준결승 앞부분을 놓칠 수도 있는데, 누가 과연 1시간 반을 기다리면서까지 검진 받으러 오겠는가.
그러나!!!! 9명의 조합원은 모두 진료를 받고 가셨다.

또다른 검진장소. 원래 하기로 했던 금속연맹 경남본부 회의실에서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마창거제 산추련 사무실에서 검진하기로 했다.
"누님! 참∼ 내. 이름 부르면 들어오시라니까요."
"부위원장. 여기 그냥 조용히 서 있을께."
서른 명이나 기다릴 만한 공간이 없어서 사무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시게 했는데, 어둡고 덥다보니, 아무리 지역금속노조 부위원장님이 정색하며 교통정리를 해도, 의사 두 사람이 진료를 보고 있는 교육실과 상담실 안에까지 침범(?)들을 하셨다.
미리 나누어준 설문지에 자신의 증상을 쓰거나 의사와 상담하고 있는 동료의 모습을 지켜본다. 아까 조용히 하겠다던 약속을 깨고, 진료받는 동료가 작업설명하는 것이 부실하다 싶으면, 자기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덧붙이는 조합원도 있다.
"옴마야∼. 니도 내하고 아픈기 똑같네. 선생님! 그 작업, 내도 하는데요. 라인 속도는 맞춰야 되고, 불량은 내면 안되고, 신경 쓰다보면 고개가 자꾸 밑으로 쳐박힙니다. 일 마치고나서 목하고 어깨하고 팔 아픈게 보통 예사롭지 않아예."
묻지도 않는데 옆에서 참견해도 의사는 짜증내지 않고, 그 이야기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시작하기 전만 해도 빨리 가야 할 이유를 대며 앞순서를 요구하던 조합원은 한사람 한사람 진료시간이 오래 걸려도, 대기자리 준비가 부족해서 한참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는데도 짜증내는 법이 없다.
이번 근골격계 투쟁에 조직되리라고는 전혀 예상못했던 차룡단지 작은 사업장의 아주머니 조합원들은 지역금속노조를 통해 집단검진에 이렇게 참여하셨다.
진료를 마친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까지 본 A노조 남자 조합원들보다 오늘 아주머니들의 상태들이 훨씬 심하네요."

금속연맹 경남본부, 금속노조 경남 1,2지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노동강도강화저지 근골격계투쟁 집단검진장의 풍경들이다. 왜 이런 집단검진 사업을 하게 되었는가.
2001년 전국금속산업연맹 경남본부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경남지역 금속사업장 17곳과 함께 근골격계 실태와 노동강도 평가 설문조사를 했을 때, 노동강도 강화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임이 드러났다. 73%의 노동자들이 유소견자로 나타났고, 당장 치료를 요할 정도의 심각한 건강장애 노동자는 33%나 됐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치료를 못하고 있었고, 결국 곪아터질 때까지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이 작업자세, 중량물 등 국소적인 작업환경의 문제가 아닌 인력, 작업량, 노동시간(휴식시간), 작업 조직 및 체계, 새로운 공정도입 등 노동과정 전반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역의 산재통계에서도 심각성이 드러났다. 제도권 내 통계로는 은폐되는 산재현황이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경남 산안담당자 회의에서는 매월 각 단사의 산재현황을 공상 처리까지 모두 모으고 있다. 그 결과 15개 사업장의 1/4분기 산재현황 통계에서, 산재와 공상을 합친 근골격계 질환은 전체 산재건수의 무려 84%에 달하고 있었다.

2001년 3월 조사결과를 기자회견으로 발표하고,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근골격계 투쟁에 들어간 후, 마창지역에서는 이 투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업장들이 하나둘씩 더 늘어났다. 그리고 산안담당자 회의에서는 실태조사에서 당장 치료를 요하는 노동자를 조직해서 검진 후 산재신청을 하기로 결의했다.
유소견 조합원들을 한사람한사람 만나서 집단검진 장소로 조직해 나오는 것도 임단협 시기, 회사의 구조조정 등 사업장마다의 문제로 쉽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9개 노동조합의 120여명이 조직되어 집단검진을 받았다. 6월 들어 일주일에 이틀씩 5명의 노조 자문의사들이 검진을 실시한 결과, 현재까지 100여명이 유소견자로 나타났다.

현장조합원들의 자발적인 노동강도강화저지, 건강권쟁취 투쟁

이런 집단 투쟁 외에도, 한 부서 노동자들이 현장통제력을 장악하고 회사측의 노동강도강화를 저지하고 있는 자발적 현장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다. 바로 카스코 B/A반 조합원들의 노동강도강화 저지투쟁이다.
카스코 노조는 한 달에 한번 노조 자문의가 방문하여 조합원들을 만나는 상담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상담을 원하는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근골격계 증상을 호소했다. 매일 밤 파스를 붙여가며 '이 정도 증상이야 누구에게나 있지' 여기던 조합원들은 자문의 상담진료를 받은 후 '이것이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것, 쬐끔 아플 때 치료하면 금새 나을 수 있는데, 오래되면 몇 년을 치료해도 낫지 않는 골병이 된다는 것'을 한사람한사람 인식하기 시작했다.
카스코 노동조합 산안부장은 '노동강도강화 저지,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선전 소자보'를 현장에 붙였고, B/A반 조합원들 사이에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골병의 원인이 노동강도강화 때문이라는 문제의식과 공유가 더욱 확대되었다.대부분 자동화된 다른 부서에 비해 수동조립 공정이어서 노동강도가 높던 B/A반은 높은 노동강도 문제 대처를 위해 대의원과 반원들간의 간담회가 열리기에 이르렀다. 이후 노조 자문상담을 받았던 조합원 몇 명이 몸이 너무 아파 휴직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 문제를 회사측은 고용안정위원회에 넘겨버리면서 용역을 시도했고, 이를 막기 위해 다음날 반원들은 자체적으로 대의원을 중심으로 대표를 구성하여 요구안을 만들었다.
근골격계 정밀검진, 작업조건개선, 노동강도 관련 3개안을 카스코 지회와 회사측에 모두 전달하고, 바로 잔업 3시간을 2시간으로 결의하였다. 조급해진 회사측은 면담을 요청하면서 산보위에 넘기자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B/A반원들은 이를 거절하고, 작업조건개선위원회를 만들자고 요구했다. 결국 회사, 노조, 반 대표로 구성된 개선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노사가 합의한 병원의 산업의학과에서 15명의 반원이 1차 검진을 받았고, 현재 2차 검진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집단 산재요양신청을 조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현재도 몇몇 사업장 중심으로 요양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의 힘을 모으기 위해 각 사업장의 현실에 따라 조합원 대상 근골격계 교육을 준비하거나 실시하고 있다.

어떤 회사들은 예방이랍시고 사내 물리치료실 설치한다, 작업자세 중량물 작업을 개선한다는 등 떠들어대지만, 고용불안과 물량에 쫓겨 아파도 아프다는 말도 못하는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 한, 그런 개선 안들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것이 노동자들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이 느낌이 바로 팍! 팍!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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