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 http://www.naver.com 이미지 찾기에서]
1987년의 6월항쟁으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흐른 2002년 6월, 다시금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이 사람들 중에는 '어제의 용사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년의 세월 동안에 한국 사회는 그 이전 15년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그런 변화의 결과로 상당수의 '어제의 용사들'조차도 사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1987년의 6월항쟁은 전두환의 군사독재를 끝장내기 위한 거대한 정치적 저항의 물결이었다. 전두환의 군사독재는 그 15년 전인 1972년에 시작된 유신독재를 바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6월항쟁은 이러한 독재의 역사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이 땅에서 새로운 역사를 열어젖히는 의미를 갖는 대사건이었다. 2002년 6월에 서울시청 앞으로 다시금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15년 전인 1987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역사의 중요한 한 산물이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이루고자 한 시민들의 열정이 6월항쟁을 밀고나간 원동력이었고, 그 결과 유신독재로부터 시작된 최악의 군부독재가 15년만에 막을 내림으로써 시민들은 고도성장의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정을 조금씩 이루어갈 수 있게 되었다. 세종로와 시청 앞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은 거대한 불의의 권력에 온몸으로 맞선 정치적 저항이었다. 서울시청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세종로로 밀고 나아가려 했으나, 경찰의 강력한 저지에 맞서 나아갈 수 없었다. 청와대에 도사리고 있던 전두환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직접 응징하고자 열망했던 사람들은 세종로로 밀고 나아가려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강력한 차단공력을 퍼부었고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야 했다. 미친 듯이 퍼붓는 고추연기와 최루탄과 지랄탄 공세를 피해 사람들이 흩어져 사라진 자리에는 졸지에 주인을 잃은 신발이며 지갑 따위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이것들과 함께 이한열 장례식 때의 커다란 만장행렬은 1987년 6월항쟁의 시청 앞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들이다.
2002년 6월에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시청 앞으로 모여든 까닭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기 위해서이다. 1987년 6월에 사람들은 불의의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2002년 6월에 사람들은 월드컵을 함께 보며 놀기 위해 모였다. 지난 15년 사이에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여전히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여전히 이 사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제 이 사회를 이끌고 가는 국민적 관심사는 얼마나 즐겁게 살 수 있느냐이다. 시민들은 화염병 대신에 태극기를 들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붉은 색 옷을 입고, 얼굴에는 무늬를 그린 재미있는 모습으로 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1987년 6월항쟁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징물들이 아닌가?
1987년 6월항쟁 때, 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불의한 권력을 응징하고 자신의 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싸움꾼들이었다. 싸움을 각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은 없었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왜 싸워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 아주 분명했다. 모두들 참으로 열심히 싸웠다. 그 결과 전두환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미완인 상태이기는 하지만, 6월항쟁의 결과로 이 사회가 해방 이후 줄곧 이어져 온 독재의 낡은 역사를 끝장낼 중대한 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싸움은 성공을 거두었고, 우리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되었다.
2002년 6월에 시청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도 싸움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관람자들이자 응원자들이고 해야 옳을 것이다. 대형 전광판을 통해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같은 구호를 외치고, 그 안에서 서로 하나됨을 느끼고 기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1987년 6월항쟁 때도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구호를 외치고 서로 하나됨을 느끼는 경험을 나누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겉보기에 비슷한 집단적 현상이지만, 속은 너무도 다른 현상인 것이다.
이 차이는 우선 '독재타도'와 '대~한민국'에서 잘 드러난다. 6월항쟁을 통해 결국 우리가 이루게 된 새로운 사회는 무엇보다 정치적 자유화와 민주화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척된 근대적 사회이다. '독재타도'는 역사적 구호가 되어 버렸으며, 이제는 오히려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국가를 긍정하고 있다. 독재 시절에 국가는 무엇보다 독재 권력의 전유물이었고, 그런만큼 그것은 무엇보다 싸움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강력한 정체성의 원천으로 바뀐 것이다. 어떤 독재권력도 이루고 싶어 했으나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이러한 정치적 현상은 6월항쟁을 통해 우리가 시민주권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중요한 사회적 결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이 우리의 정치를 긍정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시민들은 국가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1987년 6월항쟁과 본질적으로 같은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태극기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6월항쟁 때에도 태극기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좋은 국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2002년 6월에 태극기는 아예 패션이 되었다. 이것은 국가를 강력히 긍정하는 한 방식이지만, 또한 동시에 태극기는 여전히 '좋은 국가'를 뜻하는 상징물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가 태극기를 통해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외치고 태극기를 사랑하는, 거리의 저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해석이 분분하다. 수구세력은 마침내 '20대가 대한민국을 만났다'고 애국주의적 수사를 동원해 사람들을 호리느라 바쁘고, 진보세력은 미몽에 빠진 대중들이 수구세력의 농간에 놀아날 가능성에 큰 한숨을 내쉬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의 '독재타도'와 2002년 6월의 '대~한민국'에는 같은 바람이 담겨 있다. 중요한 것은 둘 사이에서 '같은 것'과 '다른 것'을 잘 구분하는 것이다. 국가와 권력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것, 즐기는 것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 등이 '다른 것'이라면, '좋은 국가'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같은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은 2002년 6월축전의 노둣돌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바꾸고 사회의 기본구조를 바로세우는 데 촛점을 맞췄다면, 2002년 6월 축전의 사람들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과 자동차를 중심에 두고 일반 시민들을 주변으로 몰아냈던 도시 구조를 온몸으로 바꿔가고 있다. 이제 우리의 도시는 놀고 쉬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놀고 쉬는 것 자체가 중대한 정치적 과제로 떠오른 상태이다. 왜 시청 앞과 세종로가 2002년 6월축전의 상징공간이 되었을까? 정치의 공간이 시민의 공간으로, 통치의 공간이 놀이의 공간으로 바뀌길 바라는 시민의 염원이 이런 식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이 참에 세종로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계획이 마련되고 차근차근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곳에 모였던 수십만 명의 시민들도 비슷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서울이 2002년 6월축전에 어울리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꿈.
홍성태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상지대학교 교수) rayhope@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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