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재촉하는 집단 상상력


[그림 : http://www.npc.or.kr/npc/maga/9904/9904_05world.html]


너나 없이 축제라고들 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파죽지세 기미를 보이고 거리에 붉은 물결이 잦아지자 축제가 회자되었다. 축제를 백안시하던 이전 상황과 비교하면 바로 너와 내 곁에서 혁명적 변화가 움트고 있다.

근대적 축제를 경험하지 않은 탓에 우리는 축제라면 으레 여유있는 서구의 전유물로 여긴다. 아주 먹고 마시고 실컷 떠들어대는 것이 축제의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벨기에에서는 철따라 축제가 걸죽하게 벌어진다. 몇해 전 아동 성추행 사건에 이어 고위 공직자 살해범이 체포되었다. 걸판진 축제들에도 불구하고 인성은 왜 이 모양인지 탄식이 쏟아졌다. 축제라고 다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을 축제에 홀린 땅이라 한다. 한 해 줄잡아 10만개의 축제가 벌어진다. 종교 축제는 물론이고 소몰이축제, 토마토축제, 물세례 맞는 물축제, 불 위를 달리는 축제 등등 축제 속에서 날이 새고 진다.

축제는 집단성·주기성·공간성을 갖는다. 이 점에서 사실 축제로 치기에는 좀 막연했던 거리 응원을 사람들은 서슴없이 축제라 불렀다. 축제의 외형에 매이지 않고 그 정신을 주목한다면 거리 응원은 6월의 축제로서 손색이 없었다.

축제를 움직이는 축제 정신은 무엇인가? 대체로 축제는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것이 축제의 일차적 정신이자 기능이다. 무엇보다 축제는 집단 정체성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이 몰입할 계기를 지녀야 한다.

뮌헨의 10월축제(옥토버페스트)는 관람객 규모에서 세계 최대 축제로 통칭된다. 1810년 바바리아 왕세자의 혼인을 기념해 닷새간 벌인 부어라 마셔라 잔치에서 유래하였다. 이제는 9월 하순에 보름 남짓 650만명을 끌어들이는 맥주축제로 정착되었다. 다만 바바리아 지역민이 아니고 맥주, 족발, 소세지, 그리고 바비큐, 어느 쪽과도 궁합이 맞지 않다면 뮌헨 중심지의 대규모 천막 지대는 천막 지대일 뿐이다.

축제의 열기로 치자면 리우축제가 으뜸이다. 브라질 제1도시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2월이나 3월에 1주일 정도 진행되고 삼바 춤과 노래가 주도하는 삼바 퍼레이드가 백미다. 퍼레이드는 리우 시내 70군데의 삼바 학교에서 선발된 14팀의 경연으로 이뤄진다. 팀마다 온갖 장식을 한 예닐곱 대의 거대한 수레차에 공연자들이 분승하고 3천-5천명이 가장행렬을 한다. 1984년 축구장처럼 5만명을 수용하는 삼바드롬(sambodromo, 입장료 최고 박스 1천달러)이 삼바 퍼레이드용으로 건설되었다. 여기서 연중 사나흘 거대한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평시에는 학교 교실과 콘서트장으로 쓰인다.

브라질의 국민 리듬인 삼바는 사탕수수밭에 끌려온 아프리카 앙골라 노예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기독교 세계의 보편적 축제라지만 카니발은 고래로 이교도의 축제들에서 기원하였고 사순절 직전의 긴장을 푸는 사육제로서 난장이 뒤따른다. 브라질 카니발은 19세기 전반 포르투갈에서 유입되어 서민층과 상류층간의 타협을 거쳐 지금 형태로 정착되었다. 저녁 7시-새벽 6시에 릴레이 마라톤 같이 이어지는 삼바 퍼레이드와 리우 시내 곳곳의 거리 카니발, 삼바 춤판은 사실 브라질 국민 모두가 참여하길 갈망하는 국민 축제이자 계층을 초월한 한여름밤의 민주적 스펙타클로 받아들여진다.

2월초 1주간 관람객 220만(1971년 405만명)을 동원하는 삿포로 눈축제는 낮에는 담백하고 밤에는 휘황찬란하다. 눈축제는 1950년 삿포로를 상징하는 시내 중심지 공원에 중고생들이 눈조각상 여섯 점을 설치한 데서 발단하였다. 삿포로가 위치한 홋카이도는 메이지유신이래 개발되기 전엔 척박한 땅으로 버려져 있었다. 눈축제는 74년부터 국제 눈조각상 제작 경연대회를 병행해 왔고 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과 함께 홋카이도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마쓰리라 하여 연중 축제가 끊이지 않고 여름에 축제가 집중된 일본에는 눈과 얼음을 소재로 한 축제가 여럿 있다. 눈축제는 눈과 얼음 조각을 전시한 3곳에서 진행된다. 올해 한국의 광화문, 작년 중국의 사찰 이외에 눈축제는 전통적으로 동서양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매년 15점 정도 실물처럼 거대하게 재현해왔다. 이들 눈건축물과 시민들, 각 직장 단체들이 참여한 조각상을 포함 모두 150점 남짓의 출품작들이 전시된다. 1955년부터 일본 자위대가 참가하여 출품작도 내고 채설 작업에 협력해왔다. 거대한 눈건축물 제작을 비롯 해마다 재료로 소요되는 눈이 5톤 트럭 8천대분이라니 자위대의 역할이 짐작된다. 축제 전시장 가운데 한 곳도 자위대 연병장이다. 이상의 축제를 세계 3대 축제라 한다.

축제는 비일상을 지향하므로 많건 적건 축제를 풍부하게 만들 기량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에서 기원전 6세기부터 해마다 1천명의 출연진이 참가한 디티람보스 가무극경연대회는 서양 공연예술사의 초석이 되었지만 원래는 디오니소스축제의 일환이었다. 예술의 기원을 축제나 굿에서 찾는 것도 이런 때문이며, 아무튼 예술만의 예술축제는 근대이래 예술이 분리된 결과 성립된 현대적 현상이다. 오늘날 예술축제를 심지어 축제의 최정상으로 여기곤 한다.

국내를 비롯 전세계적으로 무수한 예술축제 가운데 아비뇽축제와 에딘버러축제가 손꼽힌다. 똑같이 1947년에 사회 변화를 겨냥해서 시작하여 이제는 한여름에 3주간씩 열리는 두 축제는 전세계의 크고 작은 공연예술 전시장이다. 에딘버러축제에 1400여 공연물이 출품되므로 아비뇽의 두 배 규모로서 세계 최대 예술축제다. 축제 기간은 가히 비상사태를 연상시킨다. 소도시 아비뇽은 손바닥만한 골목조차 공연 공간으로 떠오르고 50만 인구 에딘버러 중심가의 일반 강당들은 임시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잘된 예술축제는 개최 도시의 경제 유발 효과, 이미지 제고, 정체성 강화 등의 면에서 해당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워진다. 축제가 에딘버러와 인근 스코틀랜드 지역에 일으킨 수입 효과는 2000년 기준 1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 두 축제는 1백점 가량의 공식 공연물보다 나머지 비공식(프린지 또는 오프) 공연물, 즉 실험성이 강하거나 대중취향적인 공연물들 때문에 더 알차다.

예술축제를 비롯 거개의 축제는 정체성 확인에 주력하므로 현실지향적이다. 근래 우리의 축제도 정체성 면에서 더러 기획 마인드를 추스르는 중에 있다. 동시에 축제는 비일상을 화두로 새 현실을 즐겁게 노니는 스펙타클이고 새 정체성을 창조할 힘도 있으나, 이런 점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새 현실을 꿈꾸자면 기존의 것을 문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축제 정신은 제도화된 규범을 일탈하는 무한 사고와 동의어다.

축제는 서로에게 스펙타클을 제공함으로써 집단 상상력의 구체적 토대를 제공한다. 또한 현실을 초월하는 집단 상상력은 변화를 재촉한다. 2002년 6월 우리는 세계 지형 속에 팽배했던 패배주의와 아울러 군사문화마저 날려 버렸다. 거리 응원이라는 자발적인 즉석 축제는 디지털 전광판, 사이버 게시판 그리고 질박한 인정을 모태로 계층과 지역과 나이를 넘어선 새 상상력의 무대였다. 기대섞인 전망으로서, 세계에서 드문 미래지향적인 한국형 축제가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글 :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dancia@chollian.net

* 이 글은 <한겨례 21> 제416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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