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고픈 책]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함께 읽고픈 책]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홍성욱 지음. 책세상문고063. 값 3,900원

인생사가 고해(苦海)라면, 세상사는 감옥살이?

그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원형감옥 또는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것입니다. 파놉티콘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하던 공리주의자로서 우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제레미 벤담이라는 사람이 구상한 사설감옥의 이름입니다. 파놉티콘은 그리스어로 '다 본다'(Pan:all+Opticon:seeing 또는 vision)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때 중요한 것은, 감시자만이 다 본다는 것입니다. 즉 감시자는 감시당하는 자의 모든 것을 24시간 볼 수 있지만, 감시당하는 자는 감시자의 정체는 물론 자신이 언제 어느 순간에 감시당하는 줄도 모르며, 따라서 감시 그 자체를 내면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내면화를 통해 감시자가 원하는 규율이 자연스레 성립하게 되겠지요.

벤담의 파놉티콘이 중요해지는 대목은 또 있습니다. 개인에 대한 권력의 통제가 체형에서 산업자본주의 인간형에 적합하도록 영혼에 대한 규율로 바뀌었음을 웅변한다는 것입니다. 도둑의 손을 자르기보다는 잡아가두는 한편 노동을 시킴으로써 손의 쓸모, 곧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벤담의 이 혁신적인 감옥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같은 전방위감시는 시대에 따라 그 형태와 내용을 조금씩 달리하며 계속 시도되고 있습니다. 큰 예를 들자면, 산업혁명기에는 기계가 노동자를 감시하는 노릇을 하고, 오늘의 전자정보시대에는 정보관리가 새로운 감시기술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업장 감시, 전자주민카드 도입과 각종 개인정보 유출과 매매….

그렇다면 정녕 하늘 아래 감시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여기서 하나의 아이러니가 생겨납니다. '전자정보 파놉티콘'에 이르러서는 감시기술이 바로 역감시(逆監視) 기술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권력이 감시하는 데 동원하는 기술을, 권력을 감시하는 데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이나 엔지오 등의 다양한 권력감시 활동이 그 좋은 보기입니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반군 지지자들이 정부 홈페이지를 해킹한 뒤 "우리는 '빅 브라더'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술의 가치중립적인 특징이 발휘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기술이용 능력에 견줘 역감시 수준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기술 밖의, 현실적이고도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힘의 우열의 문제입니다. 그 힘의 역전이 일어나야만, 파놉티콘 이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인(囚人)이었던 우리들이 비로소 수인이기를 그만두게 되겠지요. 그래서 세상사는 아직껏 감옥살이입니다.

김용필 (월간 북메거진 <텍스트> 편집장) text@textta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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