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설 dllp21@kdlpnews.org
“호세 세라 후보에 투표하든지, 아르헨티나가 되든지.”
조지 소로스 퀀텀 펀드 회장은 지난달 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발행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질노동자당(PT)의 대선후보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룰라·사진 왼쪽)가 당선될 경우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염려한 투자자들이 투자를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여당쪽 후보 호세 세라의 당선만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최대의 금융투기꾼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브라질 대선에 개입하게 된 것은 4번째로 대선에 도전하는 룰라가 지지율 조사에서 1위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있어 그가 처음으로 출마한 1989년 이후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룰라는 지난 2년간 브라질에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최고 43%에 달하는 지지율을 보여왔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모든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결과는 ‘사회주의 브라질’을 슬로건으로 내건 1989년 결선투표에서 그가 얻은 44% 지지율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요즘 룰라의 인기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집권 중도우파연합의 후보인 호세 세라는 보건부 장관 출신으로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주 현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파 브라질사민당(PSDB) 소속. 지난해 10월 여당연합의 대선 후보를 자처하며 출마를 선언했던 자유전선당(PFL) 소속의 호제아나 사르네이 마라냐웅 주지사는 부패스캔들로 지난 4월 중도하차했다.
여론조사의 추이를 살펴보면 한때 룰라를 근소한 차이로 뒤쫓기도 했던 사르네이 후보가 사퇴한 이후 여당성향의 표는 세라 후보로 가지 않고 오히려 룰라에게 향했다.
이는 노동자당과 룰라에 대한 거부감이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한데 실제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어떤 경우라도 룰라를 찍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38%)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이는 현재 대선후보들에 대한 거부도(negative rating)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라서 결선투표에 들어가도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룰라는 노동자당이 집권하고 있는 리우그란데 두술주와 몇몇 도시에서 공공성 강화를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된 사례를 들어 브라질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반면 부패스캔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졌던 세라 후보는 최근 정치자금을 담당하는 측근이 국영철강회사의 사기업화(민영화) 과정에서 민간컨소시움으로부터 1천5백만 달러를 받아챙긴 혐의로 고발당해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
하지만 소로스를 비롯해 룰라의 당선을 반기지 않는 국제투기자본의 움직임이 만만치 않아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5월초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일제히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낮추면서 시작됐다.
그렇지 않아도 아르헨티나 외환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데다 미국 달러화 가치의 하락으로 헤알화도 동반 하락하고 있는 브라질 경제가 투기자본의 움직임으로 인해 외환, 채권, 증권 등 트리플 약세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금융시장의 최근 상황과 관련된 주요인사들의 발언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브라질 금융시장에서 환율, 채권값, 증시가 일제히 급락한 것에 대해 “경제 문제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서 야기된 문제”라고 말했다. 스탠리 피셔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룰라가 10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그는 지금의 경제 정책과 반대노선을 밟을 것이고 투자자들은 이를 우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최근 두달 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룰라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4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룰라의 지지율은 5월의 40%에서 약간 줄어든 38%로 나타났으며 세라의 지지율은 13%에서 21%로 증가했다.
아직까지는 그리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지만 국제금융자본의 ‘룰라 흔들기’가 계속되면 룰라의 네번째 도전마저도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0월 6일 대선까지는 앞으로 3개월이 남아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에 눈이 쏠렸던 브라질의 유권자들이 앞으로 3개월 동안 어떤 판단을 할지 브라질 대선정국에 초국적 금융자본뿐 아니라 각국 좌파정당과 반세계화운동진영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94호] 7.1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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