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로 자금 유입...국내 자산시장 거품 부추길수도

달러가치 급락 원인과 전망

조준상/편집위원 sang21@hani.co.kr
‘강한 달러’의 한 시기가 막을 내리는가.

월드컵의 열풍이 전세계를 뒤덮은 와중에도 이 문제는 세계경제 지각변동의 진앙으로 떠올랐다. 잠재돼 있던 달러 폭락의 가능성이 점차 현실로 드러날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는 올들어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에 대해 10% 떨어져 28개월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99년 출범 초기 1.18달러로 시작했던 1유로의 가치는 2000년 말 84센트까지 폭락했으며 올 2월에도 87센트에 그치다 지난 6월 26일 한때 99.45센트로 치솟았다. 일본 엔에 대해서도 달러 가치는 일본 외환당국의 개입에도 1백20엔선까지 하락하는 등 올들어 8% 가까이 떨어져 9개월만에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달러 하락을 부추긴 직접적인 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6월 20일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1천1백25억달러로 국내총생산의 4.3%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 증가했다는 사실이 발표된 것이다. 이는 올 1분기 국내총생산 증가율이 전분기에 비해 5.6% 성장했다는 것에만 주목하던 분위기가 바꾸어 놓았다.

다른 하나는 지난 6월 26일 미국 제2의 통신업체 월드컴이 38억달러의 회계부정 사건을 저질렀다는 소식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엔론 사건에 버금가는 충격을 금융시장에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그동안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해 온 미국으로의 자본 유입이 감소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미국 주식·채권 매수금액은 올 1분기 6백66억달러로. 전분기 1천5억달러와 지난해 1분기 9백84억달러에 견줘 각각 33%, 32%나 급감했다.

영국의 보수적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6월 14일치에 따르면, “99년의 경우 외국인직접투자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91%를 보전했는데, 지난해 이 비율이 43%로 급감했다. 이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직접투자보다는 주식·채권투자자금 등 단기적인 외국자본 유입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들은 미국 재무부 채권의 3분의 2, 미국 회사채의 25%, 미국 주식의 13%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강한 달러’가 반전될 경우 미국 금융시장의 취약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이전보다 한층 높아졌다는 얘기다.

모든 관심은 지난해 8월 부시 행정부가 한때 시도했다가 포기했던 ‘강한 달러의 연착륙’ 정책이 성공할지에 쏠리고 있다. 현재 폴 오닐 미국 재무장관은 틈만 나면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경제기초여건)은 튼튼하다”는 말을 되뇌인다. 마치 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전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건강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던 때와 같다.

부시 대통령도 지난 6월 26일 “달러가치는 시장에 의해 적정수준을 찾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달러 하락을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오닐 재무장관이 “경상수지 적자는 의미없는 개념”이라며 “내가 경상수지 적자를 주목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에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축하던 때와는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문제는 달러 연착륙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79년 말부터 시작된 레이건 시대의 강한 달러 정책은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결국 85년 선진7개국(G7)의 플라자합의를 통해 인위적인 달러 약세 정책을 펴도록 강제했다. 그 인위적인 환율 조정의 결과는 87년 미국 증시 대폭락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계속된 강한 달러는 95년 초반 미국과 일본의 협조 개입을 통해 엔 약세를 차단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결과는 97~98년의 동아시아 외환·금융위기였다. 인위적인 환율 조정은 늘 위기를 동반한 셈이다.

98년에는 미국과 일본이 엔 약세 방지를 위해 개입했고, 2000년 말에는 유로의 폭락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협조 개입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개입의 성과는 2000년 3월 이후 시작된 미국 경제의 불황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불황에 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12차례에 걸쳐 1.75%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렸음에도, 달러는 약세를 보이기는커녕 계속 강세를 보였던 것이다. 금융자본들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그나마 안전하다고 평가한 미국을 ‘최후의 피난처’로 삼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전과 달리 변화한 조건들이 달러 연착륙의 가능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전세계의 25%에 이르고, 미국 기업과 가계는 세계경제의 ‘최후의 구매자’ 구실을 해 왔다. 달러 하락이 미국 기업들의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 적자 감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하나, 이는 다른 나라의 구매력이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서이다.

하지만 달러 하락에 따른 미국 가계의 소비수요 감소는 다른 나라의 수출 감소를 가져와 동반 침체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이를 완화할 수 있는 길은 유럽연합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이 적극적인 경기 진작 정책을 펴는 것이다. 지난 6월 27일 끝난 G8 회의의 최대 의제도 바로 이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달러 위기는 개발도상국 통화가치의 과대평가를 낳는다.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 금융위기로 중남미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로 급속한 자본 유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우리나라의 자산시장 거품을 부추기게 된다. 달러 위기 속에서 국내 진보진영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변덕스러운 자본 흐름이 전적으로 결정하는 현재 환율 체제의 취약성을 보완하고 자산시장의 거품을 막기 위한 제도적, 세제적 정비를 요구하는 것이다.
[ 94호] 7.1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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