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 mulu@kdlpnews.org
'대~한민국'은 월드컵이 열리던 6월 내내 ‘붉은 물결’에 점령당했다. 한국 축구를 전세계 4강으로 끌어올린 12번째 선수라는 ‘붉은악마’는, 언론이 이름 붙인 ‘6월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까지 떠올랐다.
‘붉은악마’, 거리 응원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현상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태극기를 온 몸에 휘감고 눈물을 흘리며 목청껏 애국가를 부르는 ‘붉은악마’의 모습에서 쇼비니즘적 섬뜩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축제로 뿌리내린 ‘응원의 미학’ 앞에서 붉은악마 현상의 긍정성을 발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느 때 우리가 제대로 된 ‘축제’의 경험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붉은악마 현상의 긍정성을 보는 이들은 어디까지나 이 축제가 시민의 ‘자발성’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게다가 한국 축구팀의 선전과 함께 온 국민이 ‘응원으로’ 하나가 됐던 경험은 그간 우리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갈등과 분열에 대한 치유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주장이다.
제도권 매체에서는 이 폭발적 국민적 에너지의 분출에 대해 “우리가 경험한 억압에 대한 반발으로서의 ‘네거티브 에너지’가 아니라, 환희에 넘치는 자신감으로서의 ‘포지티브 에너지’”라면서 우리 국민들의 자신감과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한 차원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했다.
때문에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레드컴플렉스’의 극복과 함께 열린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월드컵 이전의 민족주의라고 하면 패배주의적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이번 응원에서는 오히려 우리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유연한 민족주의라고 할 만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이라는 행사의 한시적 성격만큼이나 뚜렷한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는 너무 성급한 주장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또한 이러한 열기 속에는 분명히 ‘잠재된’ 집단주의와 스포츠 애국주의가 넘실대고 있다는 지적도 타당한 것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거대한 붉은색 응원은 어쩔 수 없이 과거 전체주의 국가들의 집단주의적 매스게임을 연상시킨다”면서 이에 대한 “전 세계적 찬사의 바탕에서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인들이 느끼는 어떤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더 나아가 붉은악마 현상이 지니고 있는 파시즘적 성격을 읽어낸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최근 ‘붉은악마’를 부추기지 말라’는 논평을 통해 “붉은악마 현상에는 정의에 대한 열망이 아닌 승리에 대한 열광이 있을 뿐이며, 체제에 대한 순응과 정치적 무관심과 인간의 주체성을 죽이는 군중심리가 있을 뿐”이라면서 이는 “파시즘을 가능케 하는 병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정신의학적으로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신영철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이 열기의 배후에 “붉은악마를 통해 ‘억눌려 있던 자아’를 표출하려는 일종의 ‘집단 최면’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이 현상은 바로 승리의 열광에 사로잡힌 집단 최면이었다. 기자가 길거리 응원의 메카, 광화문을 취재하면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어찌됐든 월드컵이 끝나는 지금, 붉은악마 현상에 관한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할 때가 왔다. 그러나 더욱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온통 달궈놓았던 이 열기를 일상적 ‘진보’의 품안으로 끌어오는 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걸음 더 내딛어 이제 우리도 정치적 축제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붉은악마’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 94호] 7.1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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