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가 만난 사람]"설득하는 진보, 부드러운 개혁"

강기석 <경향신문> 편집국장, 월드컵 열풍 핵심은 ‘열정’과 ‘참여’...대선으로 이어가야

김태현/편집위원  kimth419@hanmail.net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참언론의 기치를 내걸고 투쟁하다 해직과 구속이라는 훈장을 단 경향신문 편집국장 강기석(48). 소문난 애주가에다가 초대 언론노련 편집국장을 역임한 이 투사를 10여년만에 만나는 날, 나는 어느새 듬성듬성해진 그의 머리숱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독재정권 시절 경향신문은 대표적인 정권의 계도지였고 타도의 대상이었다. 기자들도 관변언론을 자신의 운명으로 알며 포기반, 관례반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87년 6월 항쟁 때 서울역에서 시위대들에 의해 지방발송신문이 불타는 사건을 겪으면서 잠자던 기자혼이 깨어나게 된다. 그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참언론을 실현하기 위한 무기로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 부위원장 겸 자유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언론을 만들려던 그의 꿈은 한화라는 재벌이 경향을 인수하면서 강제해직이라는 철퇴를 맞고 만다. 그후 평화방송에서 또 노조파업에 참여했다가 구속까지 됐었다. 92년 해고무효소송에서 이겨 원직복직이 된후 뉴욕특파원, 국제부장, 체육부장, 논설위원, 경영기획실장 등을 역임해왔다.

양심과 상식이 '진보'

그는 지난 2월 편집국장 선거에서 “설득하는 진보, 부드러운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강 국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보와 신문편집의 기조를 이렇게 밝힌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사회가 너무나 몰상식하고 양심을 속이고 있기 때문에 양심과 상식대로 간다면 그게 진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다가 ‘설득하는 진보’라는 표현은 한겨레에서 아이디어를 받은 건데… 나는 한겨레는 ‘주장하는 진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난 기자들한테 ‘독자들한테 겸손해라, 어깨에 힘을 빼라, 그리고 가급적이면 재미있게 만들자’, 그런 요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경향신문은 이승만 정권시절 가톨릭 계열 신문으로 대표적 야당지였다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정권의 나팔수 노릇으로, 87년 이후는 한화라는 재벌의 신문으로, IMF 이후에는 사원주주회사로 거듭나는 엄청난 진통을 겪어왔다. 그야말로 신문사의 소유지배구조의 온갖 풍상을 몸으로 다 겪은 신문이다. 엄청난 진통 속에서 경향이 독립언론으로 재탄생하게 된 주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한화가 철수했어도 구체제는 잔존했고, 독립언론이 아니라 독립당한 언론이지 않느냐는 얘기도 있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직선제였던 것 같습니다. 참언론을 지향해 투쟁하던 세력들이 신문의 헤게모니, 리더십을 가질 때 이건 독립당한 언론이 아니라 진정한 독립언론이라고 나는 보고 있어요. 이번에 내가 확실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기준이 될 만한 구호를 내걸어서 당선됨으로써 이제 비로소 경향신문은 어떤 이념적 지향성과 원칙을 갖고서 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독립언론의 편집국장이지만 그에게도 신문의 생존은 중요한 문제이다. 한화가 철수했지만 여전히 거액의 부채를 담보로 잡고 있으며 기존의 거대한 조중동 족벌언론은 자전거다, 무료구독이다 하면서 공정한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안티조선'보다 제대로 된 신문을 키워야"

강 국장이 바라보는 언론개혁은 “안티조선 하지 말고 프로경향, 프로한겨레를 해라”는 것이다. 그는 “경향·한겨레·대한매일 많이 봐야 한다. 그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저는 진작부터 소유권 제한은 안 된다고 했어요. 한 사람이 소유한 형태도 있고, 콘소시움으로 하는 형태도 있고, 우리처럼 사원주주회사도 있고, 한겨레처럼 국민주주 회사도 있고…. 이 신문들이 공정한 시장에서 공정한 룰에 의해 경쟁을 하면서 판가름이 나야 하는데 소유권 제한한다고 해서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안 된다고 봐요. 편집권 독립, 그거 웃기는 얘기예요. 조선일보에서 편집국장 직선제를 한다고 합시다. 그 사람 1~2년 하고 나서 어디 갑니까. 계속 일해야 할 것 아니에요. 유일한 방법은 소유구조가 분명한, 제대로 된 신문을 키워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정부도 정신차려야 하고,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데가 제 역할을 해야 하고….”

최근에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에 맞서서 한경대(한겨레, 경향, 대한매일)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를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내가 사실 한겨레 주주예요. 우리 자식들 이름으로 한겨레 주식을 사 갖고 있어요. 일부에서는 서로를 자기 시장을 잠식하는 경쟁지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한겨레나 대한매일은 전략적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찌 보면 선의의 경쟁을 하지만 많은 부문은, 협조라고 해야 할까, 뭔가 서로 격려가 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이쯤에서 한겨레와 경향, 두 신문의 같고 다름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우리 진영을 공고하게 하고 이론적으로 무장시키고 하는 그런 것도 좋지만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수구에 주눅들고 급진에 휘둘리는’ 30~40대 양심적인 중산층을 겨냥하겠다는 거지요. 중산층이야말로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정보욕구가 제일 많은 계층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중심층이라는 거예요. 거길 겨냥하기 위해 가끔 심각한 의제도 던져야겠지만 또한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도 실어야 한다고 봐요. 경쾌하다고 할까.”

강 국장은 체육부장도 역임했다. 월드컵 열풍을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에서도 극찬과 국가주의, 파시즘의 등장으로 경계하는 양 극단의 다양한 시각이 나오고 있다. 그는 군중심리과 냄비 근성의 측면, 열정과 참여 등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난 붉은악마에 대해, 군중심리에다가 냄비근성이 플러스된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어요. 애국심,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은 굉장히 소중하다, 이 에너지가 굉장하구나, 그렇게 좀 상반되게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에너지를, 이 코드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있는데, 군중심리와 냄비근성이라고 내가 폄하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열정과 참여예요. 그래서 이 에너지를 사회 각 분야에 특히 대선 국면에 이런 열정을 갖고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강 국장은 개인적으로 언론이 대선에 지지후보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현재의 특정언론들처럼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은 불공정보도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특정후보 지지를 표방하는 것이 공정보도의 지름길이란다. 하지만 경향 내에서도 반대가 많기 때문에 실행에 옮길 수는 없을 것이라며 웃는다.

내가 민주노동당에 관심갖는 이유

이번 6.13선거 보도와 관련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한겨레에 실망하고 경향이 그나마 공정하게 보도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나마 기존 신문들 중에서 가장 친민주노동당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을까?

“우선 그렇게 평가해주시는 것만큼 우리가 잘 해주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걸 전제로 하고 말한다면, 그래도 역시 진보와 개혁을 순수한 의미로 정강정책에 내세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애정을 갖지 않을 수가 없죠.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지금 당장의 정권 대체세력이라고는 보지 않아요. 또 대언론정책에는 사람을 안다는 것, 몸으로 직접 부닥쳤다는 게 중요해요. 제가 권 대표와도 친분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더 관심을 갖게 되죠. 이문옥 감사관도 제가 전부터 존경했던 분이고….”

지난 선거에 대해 그는 “난 울산 송철호 후보는 꼭 될 줄 알았어요. 어쨌든 개인을 보고 뽑은 선거가 아니라 당을 보고 한 선거에서 얻은 제3당의 지위는 민주노동당도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고 봐요”라고 애정을 표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민주노동당이 분명한 자신의 기조와 입장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내가 싫어서 비판하는 데다 싶으면 단절을 하고 싸워야 한다고 봐요. 또 나를 이해하고 어찌보면 같이 가는 그런 곳이 있으면 힘을 키워서 같이 가야 해요.” 노무현의 성공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충고와 더불어 경향 광고를 슬쩍 끼워넣는다.
“민주노동당도 언론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경향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당원들이 20~30만부 정도 구독해주면 좋은 거 아니예요?”
[ 94호] 7.1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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