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논평] 안타까운 연평도 교전
진중권, [시론]서해교전이 안타깝다고? (경향신문, 7. 3)
언뜻 읽어보면 꽤나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를 당대의 논객으로 대접받게 해준 그 문제의 ‘젓소부인’류의 영화가 생각나는 것일까? 진중권은 저질 비판한답시고 그런 영화를 너무 보고 만 것은 아닐까? 자주 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그저 젓소부인의 가슴에만 머무르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욕망(그것이 성욕이든 명예욕이든, 어떤 것이든)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드러내거나 감추면서 아닌 체 하거나 다른 것이라 말하는 경우다. 진중권의 서술에 따라 그가 말한 ‘문제투성이’를 나 역시 문제 삼아 보자.
이번 사태는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남북간의 서로 다른 주장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완전한 거짓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거짓말이다. 남북간에 설사 NLL에 대해 이견이 있다 하더라도 , 그 이견을 제시하는 방식이 무장을 하고 내려와 같은 민족에게 다짜고짜 총질을 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NLL에 대한 이견 때문에 무력도발이 일어났다는 민노당 부대변인의 논평은 분명 너무 성급한 단정이거나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진중권의 지적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그의 논리를 빌어 말하면 NLL을 북측이 인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휴전체제인 것을 인정하면, 그래서 정전위의 당사자가 우리가 아니라 북과 유엔사(실제로는 미국)인 이상, 남(아니면 유엔)과 북이 서로 합의한 사항이 아니라면 북이 클라크의 해상분계선(결과적으로 우리가 주장하는)을 북이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역설적인 주장 또한 받아 들여야 하는 곤란한 지경에 이른다. 이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서의 무력도발일 필요가 없듯이 북이 NLL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누구나 논리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동안 크게 문제 삼지 않았으니 NLL을 북이 인정한 것이라 말하는 것은 그렇게 주장해야 하는 ‘그들만의 논리’다. ‘다짜고짜 총질’을 동족에게 해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진중권의 지적이다. 아무리 우리의 헌법이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부득불 우겨도 반세기 이상 갈라져 살아온 ‘체제의 상이함’을 무시한 동족의 개념은 이번 사태를 올바르게 파악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총질해서 안 될 동족끼리 NLL은 뭐고 어로한계선은 무엇인가? 그 지고한 ‘동족’끼리 서로 월경하며 꽃게 좀 잡으면 대수겠는가? 아니 동족끼리 무슨 선은? 재주껏 많이 잡고 저장고 넘치면 북의 어선에도 좀 나눠주고 그러면 오죽 좋겠나?
무력도발이 있었다면 누가 선제 발포를 하였든 그것은 이제 상대적 적성국가간의 문제일 뿐이다. 남과 북은 적대국가로서 월경을 막았고 어느 한쪽의 적대행위로 발포가 있었고 그 때문에 우리의 젊은 목숨들이 서해의 고혼이 되거나 부상한 것이다. 동족이니 한핏줄이니 하는 개념들은 이제 진중권에게 아킬레스건일 뿐이다. 진중권은 바로 저들의 ‘윤리적 책임’을 물어 그들을 규탄하거나 응징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진중권은 책임을 묻지 않은 민노당이 비겁하다 말할 수 있을 뿐, (내 생각에)그가 인정할 수 없는 괴뢰 김정일을 ‘조준사격’하라고 말할 수 없다. 한나라의 매파나 망령든 JP처럼 무식하게 ‘적’이다 말하면 되는 그 단순한 사실을 그는 말하지 못한다.
공멸의 성찬이 될 전쟁을 부추길 수도, 그렇다고 붙잡고 있는 동족을 배신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체제의 상이함을 인정하자니 그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김정일 혹은 주사의 무리들이 북한의 실제적인 리더십임을 먼저 공인하고 마는 꼴이 되고 만다. 제법 진보를 표방하며 뱉어 놓은 많은 수작?들이 있기에 통일을 가로 막는 주적론을 대놓고 말할 수도 없다. 진보의 냄새도 풍겨야겠고 미운 김정일에게 따지기도 해야겠고 겨우 들고 나온 것이 민노당 논평이다. 김모 부대변인만 서해에서 뺨맞은 중권에게 경향에서 얻어터진 꼴이다.
그런데 그 논평은 마치 무력도발이 NLL의 책임인 양 호도하고 있다. 이런 논법에서 슬쩍 사라져 버리는 것이 다짜고짜 발포를 하여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윤리적 책임이다.
내가 진중권에게 말꼬리 잡고 늘어져 이런저런 쓴소리 씹어대며 그를 비난하면 그도 분명 언짢아 질 것이다. 조선일보식 비난이라 폄하하기도 할 것이다. 위 문단과 마찬가지로 ‘호도’ 운운하며 물고 늘어지는 것이 민노당 논평의 한 구절, “이번 사건은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남북간의 서로 다른 주장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다”이다. 물론 섣부른 단정을 논평으로 내놓은 부대변인의 불찰은 있겠지만 그가 서해교전을 호도하기 위해서 그런 논평을 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김모부대변인은 다시 “시각의 상이함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어느쪽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남북간의 화해와 단결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하며 예의 섣부른 단정을 반복하지만 그의 걱정이 이번 사건을 빌미 삼아 남북간의 정치 사회적으로 경색될까 우려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음을 밝혔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누구의 과실인가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화해와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자칫 냉전적 사고의 무리들에 의하여 오히려 ‘호도’될까 경계한 충심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제3당 운운하지만 사실 자민련의 헛소리만도 못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 진중권이 문제 삼는 자신의 당의 목소리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은 참으로 애당심 높은 사람이다. 덕분에 민노당 논평 부지런히 찾아 읽은 네티즌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윤리적 책임’을 말한다. 위에서 언급한 적성국 북한으로 가장 단순하게 규정하기 이전에 진중권은 윤리적 책임을 말하면 안 된다. 언제 전쟁(전투)에 ‘윤리적 책임’ 같은 것이 있었나? 설마 진중권이 남과북의 대립에서 저 삼별초의 항쟁 같은 대의를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매일 다른 주장 혹은 상황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선제무력도발을(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사실로 받아들인 진중권에게 나는 어떤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나의 시각을 애써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대로 ‘다짜고짜 발포한’ 그들이라면, 그런 인면수심의 무리들에게 무슨 윤리적 책임을 묻는단 말인가? 동족을 포기하던지 체제의 상이함을 인정하던지... 참 한심한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 자실폭탄테러를 감행하는 팔레스타인이나 그것을 구실 삼아 민간인까지 학살하는 이스라엘이나 누구에게 그 윤리적 책임이 있는지 내게 좀 알려 달라. 진중권이 윤리적 책임을 들먹이던 날에 40여명의 아프간인을 폭격으로 죽이고 70여명을 부상케 한(미국주장-현지 소식통은 100여명 사망에 300여명 중경상) 미국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으면 뭐라 답하겠는가? 테러를 근절하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란 ‘윤리’에 죽어 자빠진 아프간인의 ‘책임’만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죽은 사람은 있는데’ 왜 갑자기 책임자는 없다는 듯이 말하는 걸까
책임자를 적시하지 않았다 하여 북의 도발을 용인하거나 옹호한 듯이 말하는 진중권은 왜 책임자를 적시하지 않고 무력도발만을 문제 삼고 있는가? 북의 김정일이나 군부를 향하여 그 책임을 추궁하여야 당당하지 않겠나? 그 불온한 세력에 대한 정당한 응징으로 보복 공격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기회는 이 때다 설쳐대는 한나라당의 수고진골들과 무엇이 다른가? 김정일을 북한을 혹은 북을 지배하고 있는 주사의 무리들을 적이라 규정하면서 대통령 되면 김정일을 만날 것이라 공약하는 수구의 괴수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인가? 모순이면서 그들이 김정일을 만나야 하고 햇볕정책이니 뭐니 하는 긴장완화의 방편들이 필요한 것은 북이 동족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잠재적 위협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통일의 논의는 ‘동질성의 회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의 인정’ 위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박노자의 견해가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적대적 위협세력이니 통일의 논의 또는 화해와 평화공존의 분위기를 이루려는 노력들을 멈추어야 한다거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우리도 적대적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을 진중권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부의 붕괴에 의한 친남한적인 정권이 북에 들어서지 않는 한, 책임자 처벌 운운하는 진중권의 주장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체제의 반목 위에서 책임자 처벌은 공허한 주문일 뿐이다.
장갑차 사건의 책임자와 북을 등가로 보는 진중권은 대체 그가 어떻게 그 필명이라도 얻었나 의심스럽다. 서해교전의 책임자가 북이라는 진중권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그 책임자는 분명 북의 김정일이나 군부일 것이다. 이 말은 바로 우리의 안보위협세력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장갑차에 깔려죽은 어린 소녀들은 적성국의 장갑차에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겠다고 우리의 강토를 점령(?)하고 있는 미군의 장갑차에 죽은 것이다. 또 책임을 문제 삼는 것은 자신들의 범죄(과실치사라 하여도)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그들의 그릇된 문제해결방식에 대한 분노다. 미군의 책임자와 북이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 분단에 관한 다음의 지적을 그는 문제 삼을 수도 없다.
이번에는 범인이 ‘분단’이라는 놈이란다. 이제는 휴전선을 통째로 체포해야 할까보다. 동독과 서독은 분단이 되어 있어어도 서로 이런 식의 무력도발을 하지는 않았다. 분단이 곧바로 무력도발로 이어질 필연성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중권은 민노당의 거짓을 문제 삼으면서 거짓말을 서슴없이 한다. 누가 범인이 ‘분단’이라고 말했는가? 민노당의 논평은 “이번 사건은 분단에 기인한 가슴 아픈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범죄를 저지른 ‘범인(犯人)’이라는 의미와 그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 동기 혹은 원인이라는 ‘범인(犯因)’은 분명 다른 어휘다. 진중권은 스스로의 글에서 <‘분단’이라는 놈이란다>라며 전자의 범인이란 어휘를 사용하였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후자의 범인이란 내가 혹 우길지 몰라 미리 차용한 어휘지 실제 사용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민노당의 논평이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우리의 휴전선 이북에는 우리와 다른 적대적 세력이 존재하고 있게 된 것이며 우리 역시 국가보안법 등으로 그들을 찬양 고무 하는 것만으로도 중대한 범죄가 아니던가?
또 누가 무력도발의 필연성을 말했는가? 내가 읽은 민노당의 논평은 NLL 등 어떤 문제가 되었든 남과북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은 다시 벌어질지도 모를 ‘무력도발의 가능성’ ‘무력충돌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였다. 그 놈의 필연성을 억지로라도 주장해야 하는 진중권의 ‘필연성’은 뭘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혹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려야할 필연성이 생긴 것은 아닌가?
동 서독의 무력충돌이 없었다는 말에서 역시 독일 유학 출신자다운 냄새가 물씬 풍긴다. 독일의 역사적 상황과 우리의 상황이 똑같다는 말인가? 동독의 정권과 김일성 부자의 정권과 똑같아야할 역사의 당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이것도 물어보아야겠다. 또한 남한의 정권이 전후 서독만큼 인간의 존엄과 민족 민중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듬고 품어온 정권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북이나 남이나 다들 자신들의 정권욕에 사로잡혀 이데올로기라는 마약으로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중독시키며 통치하였을 뿐, 언제 얼마나 우리들의 삶을 존중하여 주었나? 동 서독과 닮아야할 ‘필연성’이 있다면 그것은 이번 교전의 책임유무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일편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그럼 분단이 종식될 때까지는 이런 일이 발생해도 꾹 참고 그것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가란 말인가
아무도 분단을 서해교전 같은 무력충돌을 운명으로 삼고 살아가라 말하지 않았다. 운명과도 같이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정해진 그 ‘분단’이란 것을 극복하기 위해 통일의 저해가 되는 반통일적 논의와 대선을 앞둔 수구보수의 정치적 악용을 경계하는 행간의 의미를 나는 읽었을 뿐이다. 진중권은 그가 경원시 하는 그 김정일 무리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적인 통일운동의 마당으로 나와야 할 것이 아닌가? 꾹 참고 살 것이 아니면 그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분은 민족, 통일 운운하면 모두가 친김정일 친북한 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북이 적대적이면 적대적일수록 통일 또는 화해를 향한 운동들이 가열차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말이다.
그가 말하듯이 서해에서 죽어간 숭고한 넋들을 침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면 실성한 사람이거나 시쳇말로 적화통일을 노리는 세력일 것이다. 민노당의 논평에서 경계하고자 하는 침소봉대는 상시적 전쟁의 긴장으로 몰고 가려는 보수우익의 준동이다. 냉전의 사고와 휴전선의 긴장이 흘러야만 정권찬탈의 음모가 무르익는 보수의 가면을 쓴 ‘괴생물체’의 번식을 우려하는 것을 진중권이야말로 침소봉대하고 있다.
진중권의 망언은 계속 이어진다.
“이번 일로 희생당한 분들과 그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민노당 논평)”. 지금 누구 놀리는 건가.
이제 시각이 다르고 논리가 다르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조의도 표하지 못하는 세상이 왔는가? 허점투성이의 그 잘난 논리에 맞지 않는 자들은 젊은 넋들에 대한 명복도 빌어서는 안 되는가? 안되는 이유가 계속 일어날 수도 있는 서해사태 때문이란다. 계속 일어날 서해교전 같은 사태는 온전히 민노당의 몫이 되어 버렸다.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언급하지 않은 죄, 교전의 원인이 NLL문제일거라고 주장한 섣부른 단정이 화를 부른 것이다. 치졸하기 없는 수작이다. 누누이 말했지만 그대가 속한 민노당의 논평은 분단 극복을 위한 충정에서 나왔을지언정 발포의 책임문제를 덮어버리고 말려는 주사의 주장에 편승한 것이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진중권은 북의 동포들, 생존을 위해 압록강을 넘고 대사관에 난입하는 북의 동포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극히 사랑하고 그들의 처지가 못내 불쌍할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이 더더욱 미울 것이다. 하물며 발포까지 하여 우리의 병사를 죽이기까지 했으니 그 분노를 어찌 참을 수 있을 것인가? 동족의 가슴에 총질을 해댄 그들, 죽어간 우리의 젊음들...
그런데, 싸우자니 공멸의 길이고 인정하자니 밉기만 하고 그는 그래서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북의 내부로부터의 붕괴,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진중권의 글을 실성한 넋두리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그러니 진중권이는 참고 기다려라. 화해고 통일이고 영원한 반목과 대립이고 간에 그가 사랑하는 ‘동족’ 서로가 이성을 회복하여 자연스레 화해와 통일의 그 날이 올 때까지, 주사의 지배로부터 북이 해방되고 수구의 지배로부터 남이 벗어나 동질성이 회복되어 민족이 하나 되는 날까지 계속 딴지 걸며 그대의 잘난 감성적 논리들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 세상이 언제 올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대의 미학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세상 어느 구석에선가 그대가 필요조건인지는 몰라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그대로 충분한 듯 말하지 말라. 내가 보기에 그대는 비판하며 어느새 젓소부인을 탐닉하고 있는 것 같다. 욕망이 아니라 미학의 대상으로서 말이다. 그 반대의 경우이던가. 가슴 크다고 다 이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성적이라 하여 본능적 육감적이지 않을 필요조건은 없다. 젓소부인을 보면서 흥분되면 충분한 것이지 그런류의 영화에 대하여 예술적 완성도니 구성의 난잡함을 논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좀 흥분했다 하여 민노당이 이성적으로 적을 자극하지 않은 것이 그리 심하게 지탄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분단을 인정할 수도 그렇다고 북의 실체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잘난 논평 한대목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대자보 논설위원 임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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