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순의 그림이야기④]소년과 해골 그리고 죽음

박홍순/편집위원 ilovezorva@hanmail.net
오늘 그림이야기는 핀란드 화가 마구누스 엥켈(Magnus Enckell)의 19세기 말 작품인 <소년과 해골>이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무언가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이었다. 낯설음과 친근함, 두려움과 후련함, 가벼움과 무게감, 경외감 등이 동시에 다가왔다.

방인지 어딘지 모를 컴컴한 곳에서 어린 소년이 해골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고 생소한 무언가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탐구심의 느낌은 아니다. 이것이 해골이라는 것도, 죽음이라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는 표정이다. 아니, 무언가 해골과의 대화에 열중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게 우리들에게 그만큼 가깝고 친근하다는 점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말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죽음을, 특히 자신의 죽음을 가까운 그 무언가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죽음의 문제가 곧 삶의 문제라는 것을, 단 한순간의 차이이고 한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갈까….

이 그림을 볼 때면 노혁명가인 백기완 선생님의 질타가 다시 들린다. “이봐 박홍순, 운동가는 말이야 생사관(生死觀)이 분명해야 돼!” 요즘에야 그 뜻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듯하다. 죽어야 살 수 있고, 작아져야 커질 수 있고, 비워야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이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고 삶에 대한 애착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바로 죽음을 마주했을 때이리라. 진실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송두리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리라. 이 속에서 거듭날 때 진정 강해지고 또한 동시에 부드러워질 수 있으리라.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라고 했던가. 운동가, 아니 인간은 시련을 겪고 나서야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시련이라면 죽음일 것이다.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적어도 죽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고민할 때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나무로 설 수 있지 않을까?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꼭 해야할 일 중의 하나로 유서 쓰기 실천을 추가해야겠다.
[ 95호] 7.8 ~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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