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인/영화평론가 proteur@empal.com
아이들은 어른들에겐 골칫덩이다. 이기심의 발로라고, 제 자식한테는 그럴 리 없겠지만 익명의, 집단화된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럴 경우가 많다. 집단화된 아이들이 공공연하고도 합법적으로 어른들로부터 통제와 훈육을 받게 되는 공간인 학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에서 지낸다는 것은 날마다 전투를 치르듯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전에 임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통제시스템이 가동되는 그곳에서 아이들은 대체 어떤 꿈을 꿀까? <배틀 로얄>은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품고 있는 아이들의 공포와 판타지를 보여준다.
미래의 일본, 날로 늘어가는 청소년 범죄와 실추된 어른들의 권위때문에 정부는 교육개혁법인 ‘배틀 로얄법’을 발효시킨다. 일년에 전국에서 한 학급을 무작위로 선발해 무인도에서 3일 동안 지내게 하며 최후의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게 하는 법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무인도에서 살아남아온 소녀가 클로즈업된다. 곰인형을 든 소녀의 피투성이 얼굴 위로 괴기스런 웃음이 잡힌다. 기성세대가 조장해가고 있는, 생존을 위해 지어보여야만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다.
신인작가 다카미 고쉰 원작과 만난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배틀 로얄>은 학교의, 더 나아가 국가가 행하는 권력의 극점을 자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일본 개봉 당시 논란을 불러올 만큼 지나친 폭력성과 스펙타클처럼 묘사된 살인장면이 문제되기도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겁먹고 볼 필요는 없다. 의도는 거창하지만 꽤 짓궂은 농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정치의식과 비판의식으로 무장한 어른의 눈으로 보자면 영화는 갑자기 유치해진다. 아이들은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짝사랑했던 상대에게 마지막 사랑고백을 하기에 바쁘고, 살육의 현장에서도 순정만화처럼 소년 소녀들의 로맨스는 완성된다.
‘배틀로얄법’을 지휘하는 교사로 나온 기타노 다케시는 무표정함 속에서 냉혹함을 건져내는 그 특유의 표정으로 기성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전장 속에서 교복을 입고 고군분투하게 되는 소년 소녀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터득해나간다. 더욱 극악해지거나 잔인무도해지거나.
그러나 잔인한 은유를 거둬내고 나면 <배틀 로얄>은 전형적인 하이틴물이다. 하이틴물은 아이들의 판타지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가는 <배틀 로얄>이 아이들의 판타지를 대변해준다는 것도 그런 이유다.
[ 95호] 7.8 ~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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