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아 dodani@kdlpnews.org
“이갑용 위원장은 노동자들과 사회약자를 위해 늘 희생하고 앞장서서 싸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선택해준 동구 주민들은 진짜 눈이 밝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동구 주민 여러분께 꼭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전태일이 엄마로서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2일 울산 동구청사에서 열린 구청장 취임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던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목이 메어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노동자들의 집회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나 죽기 전에 노동자 정치 좀 보여달라”던 이소선 어머니는 이날 취임식이 끝난 뒤 이갑용 동구청장의 손을 꼭 잡고서 “이제 태일이 만나면 할 이야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제 태일이 만나면 할 이야기가 생겼어"
당당했다. 그러나 겸손했다. 최초의 노동자 구청장이 된 이갑용(44) 울산 동구청장과 이상범(45) 북구청장의 모습이 그랬다.
이갑용과 이상범. 이 둘은 닮은 점이 참 많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울산을 대표하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서 노조위원장을 역임하고 구속과 해고를 당했던 이력도 비슷하지만 강한 추진력과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성격도 닮았다.
이들이 살아온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부산에서 태어난 이갑용은 8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87년 초대 노조 대의원을 맡았다. 그뒤 89년 1백28일 파업 비상대책위 상황실장, 90년 골리앗투쟁 비상대책위 의장, 93년 노조위원장, 94년 현총련 의장, 98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거쳤다. 그 사이 세번이나 구속됐고 지금도 해고자 신분이다.
이상범의 고향은 충북 보은이다.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던 이상범은 양장점, 식당, 정비공장 등을 전전하다 우연한 기회에 신문에서 현대자동차 채용 광고를 보고 입사지원서를 냈다가 합격했다.
당시 입사 조건은 중졸 이상이었는데 이상범은 중학교 ‘중퇴’를 ‘졸업’으로 속여 ‘위장취업’을 한 것이었는데 후에 인사담당자에게 사실을 밝히고 회사측의 용인으로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사내 독서모임을 통해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는 87년 노조결성을 주도, 2대 노조위원장, <현자노동자신문> 발행인, 98년 울산시의원 등을 거쳤다.
2000년 4.13총선은 이 둘에게 있어 중요한 경험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와 동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이갑용은 현대 자본을 대표하는 정몽준과 겨루면서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가슴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이상범에게 4.13총선은 “부끄럽고 아픈 얘기”이다. 현대자동차노조 경선에서 2차 투표까지 간 끝에 노조후보로 당선된 이상범은 예상치 못한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총선 당시 분열의 상처는 그가 노조위원장 시절 직권조인했던 경험과 더불어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4.13총선 패배가 분열의 결과였다면 이번 6.13지방선거 승리는 대동단결의 결과입니다. 두번의 선거를 통해 ‘분열은 죽음이고 단결만이 살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직접 체험한거죠.”
6.13지방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이갑용 후보가 주전 바닷가에서 주민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이갑용을 알아본 노동자 한명이 뛰어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위원장님이 구청장이 되면 꼭 해결해주셔야 할 일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족구장에 물이 안 빠져요. 그래서 비오고 나면 족구를 못해요. 구청장 되시면 족구장에 물길 좀 꼭 뚫어주세요.”
노동자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들은 헛된 공약(空約)을 믿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다. 이갑용은 그런 노동자들이 좋았다. “제가 구청장이 안 돼도 꼭 삽 들고와서 물길 파드리겠습니다.”
선거기간 동안 이상범 후보의 선거사무실은 언제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로 북적였다. 동료들은 월차·연차를 내면서까지 선거운동을 도왔고 그 부인들도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그의 사무실 한켠에는 “수고한다”며 동료들과 주민들이 가져다준 음료수 상자들이 늘 가득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뽑은 구청장 후보를 ‘당선’시켰다.
울산에서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작업복은 87년부터 이어져온 노동자투쟁의 ‘자존심’이자 대기업에 다니는 ‘혜택받은 노동자’를 상징한다. 사내하청 비율이 높아지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도 이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갑용, 이상범 구청장은 똑같이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센터 건립’을 핵심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이들이 제시하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방안.
"구청장 되면 족구장에 물길 좀 뚫어주세요"
“비정규직 지원센터 등을 통해 구청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노조에서도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추진중인데 구청에서 노조와 협의를 통해 회사가 이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요청할 계획이에요. 북구에 문화시설이나 생활체육시설, 복지시설 건립을 지원받게 되면 주민 누구나가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노조와 지역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이상범)
“비정규직 노동자 상담소나 노조설립을 구청에서 지원하고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철저하게 감시할 계획이에요. 같은 노동자라는 의식이 없으면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이 앞장서고 행정이 뒷받침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도록 할 생각입니다.”(이갑용)
민주노동당 출신의 이영순, 조승수 전 구청장들의 뒤를 이어 동구와 북구에서 또한번 진보행정·개혁행정의 조타수가 될 이갑용, 이상범 구청장. “노동자의 서민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구청장이 되겠다”는 이들의 첫 항해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 95호] 7.8 ~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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