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인 피해자 두 번 죽이는 행위

성폭력 역고소 무엇이 문제인가…피해 여성 되레 명예훼손ㆍ협박죄로 구속

이지안 mulu@kdlpnews.org
지난 6월 12일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 교수는 같은 학교 K 교수로부터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2년 전 K교수의 일본인 제자 M이 K교수로부터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동료교수에게 발설했다는 이유였다.

직장 상사 P씨에게 수년간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해 이를 청주지방노동사무소에 고발한 죽암휴게소 여성노동자 김매환 씨도 “피해자의 진술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된 후, 오히려 명예훼손 및 협박죄 등으로 지난달 28일 구속된 바 있다. 성폭력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가 역고소 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역고소 사건은 현재까지 7~8건 정도. 제주도지사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한 제주여민회와 KBS노동조합 K씨의 성폭력 사실을 공개한 100인위원회가 고소를 당했으며, 대구여성의전화 전 공동대표는 경산지역 K대학 K교수, 대구지역 K대학 L교수 등에게 고소를 당한 상황이다.

이처럼 최근 잇달아 성폭력 가해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들과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를 명예훼손 등의 명목으로 역고소 하는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가운데, 여성계·노동계 등이 본격적인 공동대응활동에 돌입해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여성의전화 이문자 공동대표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성폭력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 10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대책위 발족식(사진)을 갖고 25명의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해 성추행 피해자들의 역고소 사건에 대한 법률지원과 역고소 반대서명운동, 대책활동 기금마련, 역고소 실태 및 대응방안 토론회 등 사회여론화 작업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 한국여성협의회, 민주노동당 등 여성·노동관련 단체들도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희롱 가해자는 원직복직 시키고 피해자는 구속시키는 현실에 분노한다”며 “김매환 조합원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성폭력 역고소 사건은 성폭력 범죄를 인정하는 사법당국의 이중잣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성희롱 사건에서 그 입증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지우는 것은 ‘피해자 보호’가 아닌 가해자의 명예를 우선시하는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여성단체들의 입장.

또한 사법당국이 성폭력 범죄의 특성을 무시하고 일반 형사사건과 동일하게 취급해 목격자의 진술이나 물증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폭력 사건, 특히 강제추행 사건은 목격자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피해 상황에 대한 진술과 정황이 가장 유력한 증거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책위 이유정 변호사는 “형법 310조에 타인의 명예훼손 사실이 발생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정한 비판일 경우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한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과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비판은 형법의 처벌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변호사는 또 “성희롱 가해자의 인권은 보호하고, 성희롱 피해자의 인권은 외면하는 사법부의 처사에 대해 분명한 태도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96호] 7.15 ~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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